김지호 "박중훈 때문에 망했다?..에이~!"(인터뷰)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1.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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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나 인턴기자


김지호는 90년대 중반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톰보이' 같은 김지호의 등장은 전형적인 미인들이 득세했던 과거와 선을 그었고, 이른바 'X세대' 기수로 각광받았다.

그랬던 김지호지만 영화와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95년 '꼬리치는 남자'와 97년 '인연' 외에는 영화와 담을 쌓다시피 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박중훈과 호흡을 맞췄다. 그렇다보니 인터넷에는 잘나가던 김지호를 몰락시킨 건 박중훈 때문이란 글까지 올라와 있다.


박중훈 때문일 리는 없지만 당시 영화 기억이 김지호를 충무로에서 멀어지게 했던 것만은 맞다. 김지호는 "두 번 다시 영화는 안하겠다고 맹세했었다"고 말했다.

그런 김지호지만 18일 개봉하는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은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다. 고사 당일, 그것도 오전에 시나리오 읽고 바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큰 역할도 아니다.

'부러진 화살'은 '남부군' '하얀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1998년 '까' 이후 13년만에 내놓은 작품. 대학교수가 항소심 부장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로 실형 4년을 선고받은 이른 바 '석궁사건'을 소재로 했다.


김지호는 사법부 문제점을 지적하는 열혈 기자 역을 맡았다. 안성기 박원상, 두 주인공에 비하면 비중은 작다. 무엇이 김지호를 움직였을까?

-처음엔 법정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기자 역할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비중은 작지만 제법 울림이 있던데.

▶주변에서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네가 가진 포스가 드러나더라', '네가 나올 땐 네가 보이더라' 라고들 해주신다. 처음부터 주위 사람들한테 나는 작은 역할인데 영화가 너무 좋다고 이야기 했었다.

-사실 이런 영화에서 기자는 전형적이기 마련인데. '돌싱'에다 여러모로 다른 느낌을 주던데.

▶전형적인 기자 모습이 아니길 바랐고, 그렇게 하기도 했다. 예전에 20대 시절 어릴 적 꿈인 사회부 기자 체험을 해봤다. 경찰서를 돌기도 했고.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거칠고 또 뜨거웠다. 그래서 극중 기자 역할이 아직은 가슴이 뜨거운 여자로 보이도록 노력했다.

-10년이 넘도록 영화를 안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에는 박중훈이 망쳤다는 농담 섞인 글도 올라와있던데.

▶에이 그럴리가. 내가 부족했으니깐 그랬지.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영화는 절대로 안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든 촬영장에서 벗기려고 했으니깐. 그땐 치마도 안 입고 다녔을 때였으니깐. 시스템이 뒷받침됐던 때도 아니고 여배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그냥 벗기려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뭐 노출도 싫어서 안했다기보다 벗어서 아름다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나.(웃음) 당시는 대본도 없고, 엔딩도 3~4개를 찍는 식이었다. 그 때 영화에 매력을 느꼈다면 또 달랐겠지만 너무 큰 상처를 받았었다.

-한 때 드라마나 광고에 틀면 김지호가 나오다시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웃음) 글쎄 솔직히 말하면 그 때는 연기가 그렇게 절실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자꾸 도망치고 싶었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는 핑계를 되기도 했다. 사실은 이 만큼 잘하고 싶은데 실제는 저만큼도 안되니 더욱 도망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은 그렇게 영화를 외면하더니 불쑥 결정을 했는데.

▶그 뒤로 '공동경비구역 JSA'나 '봄날은 간다' 같은 영화들을 보고 감독님이 좋고 작품이 좋으면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영화도 주인공 아니잖나. 그래도 느낌이 왔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또 박원상이 한다고 소리에 냉큼 오케이했다. '슬픈연극'이라고 박원상이 하는 연극을 봤는데 정말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나란 생각을 했다. 좋은 감독, 좋은 대본, 좋은 배우들 속에 함께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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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나 인턴기자


-정지영 감독은 어땠나.

▶머리 속에 그림이 완전히 있으신 분이다. 배우들이 오히려 더 찍어야 하지 않나라고 묻기도 했다. 영화를 보니 그 때 왜 카메라가 그렇게 들어가고 감정을 그렇게 끌어갔는지 알겠더라. 이제야 영화를 절실히 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

-너무 늦었단 생각은 않나.

▶지금부터가 배우로서 훨씬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시각도 사고도 닫혀있었다. 그런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니, 캐릭터를 이해하는 폭이 훨씬 좋아진 것 같다. 어릴 때는 많이 했어도 지금 같은 감정을 못 느꼈을 것 같다.

-실제로 최근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오가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쉬기 시작했고.

▶아이가 이번에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데 내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래서 1년은 일을 쉬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참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시점에 일이 재밌어서 곁에 없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할머니한테 "내가 태어날 때 우리 엄마가 연예인인 줄 몰랐잖아"라고 했다더라. 정말 충격이었다.

처음엔 1년 쉬면서 아이랑 빨리 친해져야지란 생각에 마음만 앞서서 충돌이 많았다. 그러다가 차츰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서 참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 작품 속에서도 누군가의 엄마 역할을 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아쉬웠다. 왜 여배우는 나이가 먹으면 누구 엄마로 소비돼야 할까란 생각도 많았다. 그러다 어느순간 엄마 역할이라도 잘해야지란 생각을 하게 됐다. 한 때는 내가 자판기 같단 생각도 했다. 이렇게 연기하라고 하면 그냥 해야하는. 지금은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도 '화양연화' 같은 작품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부러진 화살'도 '완득이'나 '도가니' 같은 사회파 영화 계열로 볼 수 있는데.

▶예전엔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내 일과 내 가족에만 관심이 있었고. 8학군을 나와서 대학 시절 바로 연예인이 됐기도 했고. 그러다 이 영화를 하면서 시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 '태백산맥'을 읽는다. 우습게도 정지영 감독님이 '남부군'이 아닌 '태백산맥'을 연출한 줄 알고 책을 접했다. 영화를 통해서 다른 걸 알게 됐고. 정말 이제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만 거꾸로 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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