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는 날씨도 바꾸고, 유승준은 웁니다

[칸에서 쓴 편지]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5.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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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프랑스 칸 레드카펫에 오른 브래드 피트가 환호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장면이 전광판으로 중계되고 있다.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칸은 춥습니다. 이상기후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절실하게 느낍니다. 하늘색과 바다색이 같은 남프랑스의 화창한 날씨는 온데간데없습니다.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질투라도 한 듯 외투가 절실할 만큼 찬바람이 불더니 급기야 20일부턴 얼음장 같은 비가 내리더군요.

그 덕에 아우디가 후원하는 행사는 아예 취소되고, 영국 영화연구소가 열려고 했던 행사는 실내로 부랴부랴 장소를 옮겼습니다. 레드카펫은 비에 푹 젖었고, 배우들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크로와제 거리를 메우던 관광객도, 해변에 누워있던 비키니 여인들도 사라졌습니다.


우산장수만 신이 났습니다. 5유로도 안되던 우산을 15~30유로에 팔았습니다. 기네스 맥주 500cc 한 캔이 2.6유로니 얼마나 바가지를 씌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영화제의 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타인가 봅니다. 22일 브래드 피트가 칸 레드카펫에 섰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의 '킬링 뎀 소프틀리'가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올해도 어김없이 칸을 찾았습니다.

빅스타는 날씨도 바꾸나 봅니다.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이더니 브래드 피트가 레드카펫을 밟을 무렵이 되자 예년의 화창한 날씨로 돌아왔습니다. 한산했던 크로와제 거리가 인파로 몰리고, 레드카펫 행사가 열리는 뤼미에르 극장 앞에는 취재진과 사람들이 엉켜 발 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팬서비스를 아는 배우입니다. 레드카펫 오른쪽 끝까지 가서 손을 한 번 흔들고, 다시 왼쪽 끝까지 가서 한 번 웃어주더군요. 까치발로 브래드 피트를 보던 사람들이 그 때마다 꽥꽥 소리를 지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한 가지 예년과 다른 점은 브래드 피트는 안젤리나 졸리와 같이 레드카펫에 오르곤 했는데 올해는 동료들과 같이 올랐다는 점입니다.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은 상당한 미남에 금발 머리로 헤어스타일도 같아 얼핏 보면 브래드 피트와 닮았습니다. 그가 브래드 피트인 줄 알고 달려드는 팬들도 제법 있더군요. 사진을 찍은 사람들도 있구요.

고백하자면 저도 그들 중 한 명입니다. 어쩐지 사진 찍기가 쉽더군요. 브래드 피트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카메라로 담기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브래드 피트는 칸에서 호텔에 묵지 않습니다. 칸 앞바다에 크루즈를 띄우고 그곳에 머뭅니다. 한 가지 더 여담이지만 미국 영화사 중에 칸에 크루즈를 띄우고 영화를 판매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2008년이었죠. 그 회사 지금은 쫄딱 망해서 올해 칸필름마켓에는 제대로 된 부스조차 없더군요.

칸에서 유승준을 만났습니다. 그 유승준 맞습니다. 성룡 영화 '12 차이니즈 조디악 헤즈' 홍보를 위해 칸에 왔습니다. 유승준은 해병대에 간다고 했다가 미국 시민권을 따고 한국국적을 포기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2003년에 유승준이 예비 장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입국했던 적이 있습니다. 법무부에서 유승준의 입국을 막았다가 그 때만 잠시 체류를 허락했었죠. 당시 공항에 갔었습니다. 예비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계란을 던졌습니다. 알고 보니 인터넷 방송 진행자였습니다. 잔인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런 기억이 있었기에 유승준을 만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한국어로 연기하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었습니다. 그 말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 다시 욕을 먹는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진심은 진심이니깐요.

유승준을 받아들이는 건 대중의 몫입니다. 하지만 입국조차 막는 건 유승준 한 명조차 품을 수 없을 만큼 한국이 좁나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사회 고위층에 병역 면제자가 수두룩한 나라에서 연예인 한 명을 희생양으로 만든 게 아닐까요?

올해 칸에는 권상우도 그렇고, 허진호 감독도 그렇고 중국영화로 찾았습니다. 권상우는 '12차이니즈 조디악 헤즈'로, 허진호 감독은 '위험한 관계' 리메이크가 감독주간에 초청됐습니다. 중국을 품은 한국인지, 한국을 품은 중국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국 영화인들이 세계 2위 영화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에 활발하게 진출하는 건 명확합니다. 중국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중국 영화의 밤 행사, 화이브라더스의 밤 행사, 모두 상당한 돈을 써가며 세계 영화인들을 초청했습니다.

세를 과시하고 있는데 명예까지 갖기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2010년이죠. 이창동 감독의 '시'가 시나리오상을 탔던 때였습니다. 결산기자회견에서 한 중국기자가 심사위원들에게 왜 한국영화만 상주고, 중국영화는 안주냐고 따지더군요. 올해 한국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와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이 경쟁부문에 초청됐습니다. 중국영화는 경쟁부문에 없습니다.

홍상수 감독과 윤여정, 유준상, 그리고 문소리가 칸에 왔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윤여정(편의상 존칭을 생략하겠습니다)은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찍었고,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 출연했습니다. 올해는 경쟁부문에 초청된 한국영화 두 편 모두 출연했죠.

예순여섯에 칸영화제 경쟁작 두 편에 나란히 출연한 배우, 한국엔 없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드물죠. 그런 윤여정이지만 "나이 오십이 돼야 철이 들고, 육십이 넘어서야 과거에 몰랐던 걸 알게 되더라"고 하더군요.

고 김기영 감독은 연출 뿐 아니라 음악,미술,촬영까지 모든 걸 직접 다룬 천재였습니다. 그런 김기영 감독 영화에 세 편 출연해 주연을 맡았던 배우도 윤여정 밖에 없습니다. 윤여정은 당시에는 김기영 감독이 너무 지독스러워서 싫었는데 육십이 넘으니 고마움과 미안함을 알겠더라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반성하고 되돌아 볼 수 있는 멋진 사람, 윤여정이란 배우는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올해 윤여정이 칸에서 한국영화가 상을 타는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을까요? 일단 '다른나라에서'는 반응이 좋습니다. 비록 스크린 평점은 2점이지만 미국쪽 언론보단 유럽과 남미 언론이 호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브라질 일간지 볼 노티씨아스는 "'다른나라에서'가 올해 심사위원장인 난니 모레티 영화와 닮았다"며 "시상식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썼습니다. 동감입니다.

홍상수와 임상수, 180도 다른 두 영화가 칸 경쟁부문에 온다는 게 바로 한국영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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