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상을 지나치게 기대하는 건 바보"(인터뷰)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5.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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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해변에 위치한 칼튼호텔에서 홍상수 감독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칸(프랑스)=전형화 기자


홍상수 감독은 어느 때와 변함없었다. 칸영화제에 8번째 초청됐고, 21일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다른나라에서'가 현지 상영된 뒤 호평이 쏟아졌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느긋했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해변에 위치한 칼튼호텔에서 만난 그는 맨발에 샌들 차림이었다. 전날 옆방에서 밤새 외국 남자 3명이 술에 취해 떠들어서 잠을 통 못 잤다고 했다. 그 중에 한 명은 갑자기 울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홍상수 감독의 다음 영화는 술 취한 세 명의 남자 이야기가 되지 않으려나란 생각이 불연 듯 들었다.

홍상수 감독은 '다른나라에서'를 세계적인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했다. 이자벨 위페르는 칸영화제에서만 여우주연상을 두 번 석권한 배우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장까지 역임했으니 진정한 칸의 여왕이라 부를만하다. 그런 위페르지만 홍상수 감독과 작업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자벨 위페르는 22일 스타뉴스와 현지 인터뷰에서 "이번엔 여름에 바다를 배경으로 찍었으니 다음번에는 겨울에 도시배경으로 한 번 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홍상수 감독은 "글쎄요. 오늘 아침에 위페르를 만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라면서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고 느긋하게 말했다. 언제나 그런 것처럼 담배를 손에 들고 안경을 이마에 올린 채 말을 이어갔다.


-'다른나라에서'는 세 명의 안느가 전북 부안의 모항에서 벌이는 일을 그린 영화다. 그동안 영화와는 구조가 다른데.

▶이자벨 위페르가 하기로 했으니 외국인이 나와야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을 만났을 때 특징을 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모습 역시 일상 중 하나고. 외국인과 만나는 모습이 표피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깊게 파고 들어가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반복적인 구조를 계속 보여주면 우리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나라에서'란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 일단 위페르가 다른 나라에 온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확장되면 결국 우리 모두가 각기 섬처럼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력은 하지만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한 다른 나라.

-세 명의 안느가 각기 다르지만 겹쳐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로 완성되는데.

▶ 굳이 이유를 찾으면 안느를 세 명으로 만들면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 독립된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영화 속에서 장면으로 연결된다. 첫 장면에서 깨진 소주병이 굴러다니는데 마지막 이야기 속 안느가 해변에서 소주를 먹고 버리지 않나. 우산으로도 연결되고. 그런 것들이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장치기도 하다.

-올해로 56살인 이자벨 위페르가 영화 속에서 어느 순간 소녀처럼 예뻐지는 순간들이 무척 인상적인데.

▶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각 인물들에 맞게 행동이나 대사를 줄 뿐이다. 서로가 신뢰가 중요하고. 이자벨 위페르와는 서로가 신뢰가 있었고 또 서로가 도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보는 방식이나 제작, 개봉 방법을 쓰지 않는데. 그러다보니 영화가 불친절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 영화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동기가 있기 마련인데 그게 다른 것 같다. 소통하고 공감을 하기 위해 흔히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 만들기를 통해 내 스스로 뭔가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찍기 전까지 몰랐던 어떤 것들을 과정을 통해 발견해야 한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따라 올 수는 없는 노릇인 것 같다.

-이자벨 위페르에 이어 영국 가수 겸 배우 제인 버킨이 다음 작품에 잠시 출연했는데. 또 다른 외국배우와 같이 할 계획은 있는지.

▶ 내 기질이 그런데 뭘 어떻게 누구랑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게 들어오는 우연들이 잘 만들어져 영화가 된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우연을 통해 본질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는데 완성된 결과물이 언제나 만족스러울 만큼 뭔가를 발견하도록 해줬나.

▶ 내가 영화를 완성했다고 보여주는 건 이미 그 과정을 충실하게 했다는 걸 뜻한다. 예컨대 갱스터영화는 효과와 반응을 생각하고 그걸 목표로 만든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는 걸 과정을 통해 발견한다. 때문에 어떤 장면이 어떤 효과를 내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모른다. 그래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반응하는 것을 지켜봐야 막연하게 내 안에서 그림이 그려진다.

-매번 칸에 오는 게 다음 영화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었다. 그럼 경쟁부문에서 수상을 한다면 어떨 것 같나.

▶ 글쎄 받아봐야 아는 게 아니겠나. 남들이 좋다고 하는 떡도 내가 먹다가 체할 수도 있는 것이고. 상이란 게 심사위원 의견 따라 달라지는 건데 지나치게 기대하는 것도 바보 아니겠나.

다만 난 모든 사람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영화와 맞는 관객이란 짝을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칸을 통해서 관객을 찾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외신에서 좋은 평들이 쏟아지는데 그 관객들과 어떤 소통을 했다고 생각하나.

▶ 영화를 잘 읽어준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어떤 글은 잘 기억나지 않고 다만 표현이 기억나긴 한다. 영화를 보고 각각 전혀 다른 두 명이 극장 안에 있는데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유준상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윤여정 같은 배우들은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하나.

▶ 전작을 아예 생각 안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만나서 그 사람에게 받은 인상을 갖고 캐스팅힌다. 내 안에 보드랍게 있는 인상들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든다. 그걸 말로 옮기면 어떤 정의가 돼버리기에 왜 라고 하면 그저 매력적인 인물이라서라고만 답할 수밖에 없다.

-각 작품마다 얻어지는 것들 중 특별히 더 큰 통찰이 있었나.

▶ 글쎄 예전엔 내 영화 중 어떤 게 제일 좋냐는 질문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런 소리는 안 하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떤 고지를 향해 올라가는 게 아니다. 만드는 그 순간이 충실하게 담겨 있으면 되는 것 같다. 35살의 내가 충실했으면 그 때 영화는 충실해지는 것이다. 그게 인생과 예술의 차이다. 나이는 적어도 그 순간 빛나는 예술이 나올 수 있다. 걸작을 만들고 몇 해 뒤 자살해서 인생에는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예술은 천년을 갈수도 있고.

-'다른나라에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다. 전혀 노출이나 폭력성이 없는데도.

▶ 그렇게 신청을 했다. 청소년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경험들을 해야 뭔가를 읽어낼 수 있지 않겠나. 그건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섹스와 폭력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나이가 돼야 이 영화를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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