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비 사전심의? 단추 몇개 풀어야 선정적인가요?②

[★리포트] 영등위 뮤비 사전등급 심의제, 가요계 반발

박영웅 기자 / 입력 : 2012.08.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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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NN에 소개된 싸이 뮤직비디오


가수 싸이가 강렬한 일렉트로닉 음악에 '말춤'을 춘 신곡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150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해외활동 한 번 없는 싸이에게 벌어진 이례적인 관심. 그가 외국 팬까지 사로잡은 데는 묘한 B급 정서가 한몫했다. '오빤 강남스타일~'이란 핵심문구가 외국인들에겐 '오픈 콘돔스타일~'로 들린다는 것. 동양인의 우스꽝스런 댄스와 중독적인 음악, 그리고 유머가 통한 결과다.

이제 이러한 뮤직비디오 열풍을 접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B급 정서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의 일부 저속한 표현에 대한 미학이 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을 비롯한 외국 팬들은 '오픈 콘돔스타일~'로 바꿔 부르는 등 국내문화의 B급 정서를 오히려 즐기고 있다.


지난 2월 개정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뮤직비디오에 대한 사전 등급 심의제도를 오는 18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인터넷에 제공될 모든 티저 및 뮤직비디오의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 청소년 보호를 목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다.

◆ "K팝 열풍 속 가요 제작현실 무시한 현실"

가요계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시행을 10여 일 앞두고 법 시행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음반기획사들도 부지기수인데다가 이는 음반 제작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표현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B급 정서로 표현되는 의도적인 저급의 문화와 솔직함 등이 갖고 있는 미학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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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E1 '아이 러브 유' 뮤직비디오


영등위는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뮤직비디오와 사전 홍보를 목적으로 한 티저 영상 등. 사전 심의를 받지 않고 뮤직비디오를 온라인에 올리는 기획사와 개인, 뮤직비디오를 유통시키는 온라인 음악서비스 사업자와 포털사이트는 이를 어길 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심의 소요기간인 2주 동안 뮤직비디오가 음반 발매일정에 맞추지 못하거나 적정한 등급을 받지 못할 경우 생긴다. 향후 가수의 프로모션에도 막대한 손해 및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이다.

한 음반기획사 관계자는 7일 스타뉴스에 "뮤직비디오가 수정작업으로 인해 변수가 잦은데, 심의에 최장 2주가 소요된다면 여러 모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더군다나 요즘 가수들의 활동 기간도 짧은데 뮤직비디오 심의 결과와 음반 발매 일에 맞추지 못해 프로모션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아이돌 가수 소속사 측은 "청소년 보호를 하겠단 취지는 좋지만, 영등위 측도 정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예술은 접하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른데 이를 영등위 측에서 기준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셔츠 단추를 몇 개를 풀어야 선정적이며, 몇 명이 다쳐야 폭력적인지 규정할 수 있는가. 기준 자체가 두루뭉술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대중문화 B급 정서 미학 이해 필요"

대중문화의 속성인 B급 정서를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도 있다. K팝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국내 가요가 세계인의 시선을 받고 있는 만큼, 문화에 대한 정서 공유가 중요하다는 것.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콘돔스타일'로 들려서 글로벌적인 인기를 얻고, 박현빈의 '샤방샤방' 속 가사인 '아주 그냥 죽여줘요~' 등 대중문화의 친숙하면서도 저급적인 표현이 갖는 미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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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J 김준수 뮤직비디오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 씨는 "K팝의 세계화가 가속화된 현실에서 뮤직비디오가 주요 마케팅인 요즘 오히려 역행하는 제도일 수 있다"면서 "영상 속에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만한 폐륜적인 내용을 담지 않는 이상, 그 외 모든 뮤직비디오를 검열한다는 것 자체가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대중문화가 갖는 정서를 인정해야 업계가 발전할 수 있다. 이해 자체를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중문화는 순수 예술이 아니라 소위 말해 B급 정서가 가득 담겨 있는 예술이다.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 문화를 대하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호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자율적인 판단에 맡긴다. 청소년 유해 여부를 판단하고 문제가 있을 시 CD앞에 스티커를 붙인다. 물론 강제성도 아닌, 경고 차원이다. 특히 디지털 환경을 통한 K팝의 세계화 속에서 해외 프로모션이 제약받을 수도 있단 지적도 있다.

가수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매달 '월간 윤종신' 음원을 발매하고 있는 윤종신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전 심의가 시작된다면 '월간 윤종신'은 폐간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월간 윤종신'처럼 홍보 없이 발매되는 음원들은 온라인 상의 티저 영상이나 뮤직비디오 홍보가 불가능하다면 사장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 표현 및 프로모션도 제한을 받게 되는 경우다.

영등위 측은 현실을 반영하는 범위 안에서 심의를 시행하겠다고 계획을 밝혔지만 가요계의 반발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다. 사전 심의로 청소년을 보호하고 질 높은 K팝의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겠다는 영등위와 현실을 외면하는 구시대적인 족쇄라고 반발하는 가요계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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