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표 "'호랑이선생님'의 반장, 기억하세요?"(인터뷰)

SBS 드라마 '신의'의 양사..배우 조인표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08.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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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photoguy@


화제 속에 방송중인 SBS '신의'에 유독 눈길을 끄는 얼굴 하나가 있다. 악의 무리 기철(유오성 분)의 책사이자 독을 쓰는 전문가 양사 역을 맡은 배우 조인표(37)다. '대조영'의 거란족 왕 손만영, '광개토태왕' 후연의 왕자 모용희에 이은 3연속 사극. 그러나 캐릭터며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무게잡고 전형적 사극톤 대사를 내뱉던 조인표는 '신의'에 이르러 V자로 앞머리를 내리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감초 악당이 됐다.

"같은 사극인데도 완전히 다르네요. 처음엔 고생도 했어요. 김종학 감독님이 시켜놓고는 '너는 '광개토태왕' 찍냐' 그러시더라고요. '광개토태왕' 보고 캐스팅하셔놓고는.(웃음) 이젠 감을 알겠어요. 신인의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1980년 데뷔..출연작만 수십편

겸손하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사실 조인표의 연기 데뷔는 무려 30여년 전. 그는 흑백TV가 컬러TV로 바뀌는 순간을 연기자로서 목격한 33년차 배우다.

1980년 장미희 주연의 영화 '색깔있는 여자'가 조인표의 데뷔작. 여섯살 조인표는 충무로에서 가게를 하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 카메라 앞에 섰고, 선생님 영정을 들고 엉엉 울던 꼬마의 남다른 감을 눈여겨 본 관계자들이 앞다퉈 작품에 그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12살 시절엔 시대를 풍미했던 학원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에서는 반장을 맡았다.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이어진 겹치기 출연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못 나갈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옛 이야기를 자꾸 캐묻자 조인표는 손사래부터 쳤다.


"데뷔만 일찍 한 거죠. 도중에 연기를 쉬기도 했고요. 어디 가서 창피해서 이야기를 못 해요. 경력으로 따지면 제가 제일 선배가 되는데 이거 참…. 그런거 안 따지고 형 동생으로 친하게들 지내요. 그게 재밌지요."

그토록 하고 싶었던 보이스카우트 활동도 하지 못했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낸 조인표가 아역배우 생활을 접은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돈으로 출연료 100만원에 이르렀던 CF 제안까지 접고 "공부를 해야겠다"며 연기를 관뒀다. 고등학교 시절엔 전교 회장을 했고, 전교 석차 2위를 할 만큼 공부에도 소질이 있었다. 그러나 연기의 꿈만은 여전했다. 1993년 중앙대 연극학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역 탤런트로서의 경험과 경력이 조인표의 발목을 잡았다.

"아역들이 성인으로 넘어갈 때 어려움을 겪는다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나이를 먹어도 모든 감독님들이 저를 아이로 보고, 시청자들도 '애가 저런 역할을 하네' 하는 반응이었죠. 제가 틀에 갇혀 있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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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photoguy@


◆장혁 다음으로 액션 잘하는 배우

그래서 떠난 것이 영국 유학이었다. 그는 런던대학에서 '퍼포먼스'로 석사를 땄고, 영국 3대 드라마 스쿨로 꼽히는 람다(LAMDA, London Academy Music and Dramatic Arts)에서 수학했다. '스테이지 컴뱃'을 배운 것도 람다에서였다. 대역 자체가 불가능한 연극 무대에서의 무기 사용, 액션 연기를 기본으로 한 과정이다. 조인표는 바스타드, 소드와 방패, 쌍칼, 봉, 맨손싸움, 망토 등 무기를 바꿔가며 6개 부문 액션 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최상급 과정을 수료했다.

"실제 칼이 닿지 않게 하면서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까요. 마지막 시험을 보기 전날 파트너였던 흑인 친구가 긴장해서 너무 세게 칼을 내리치는 바람에 코가 부러졌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더는 못 하겠다는 거예요. '아 더는 못하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심판들이 전날 했던 모습을 보고 기회를 주셨죠. 심판 선생님께서 '아름다운 동작이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고 수준 자격증'이라시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런 무술 실력은 '광개토태왕'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다. 연의 황제 역할이라 선보일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추노'에도 참여했던 무술감독이 "본 배우 중에 2번째로 액션을 잘한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그 첫번째가 누구냐는 조인표의 질문에 돌아온 답은 다름아닌 장혁. 조인표는 "아유, 인정해야죠. 감사해야죠. 기분 좋던데요"라며 웃음지었다.

2006년 '대조영'은 영국에서 돌아온 조인표가 처음으로 한 TV 드라마다. 그는 거란의 2대 왕 손만영 역을 맡았다. 고구려 멸망에 한 몫을 했으며 대조영과 손을 잡고 발해 건국에도 기여한 인물이다. 조인표는 분장팀에 이색 주문을 했다.

"최대한 제 얼굴을 가려달라고 했어요. 돌아와 신인의 마음으로 도전을 하는데 아역 때 그 얼굴이 나오면 안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직도 첫 눈에 '아역 출신 아니냐' 물어보는 분들이 있어요. '대조영' 당시 사진을 보면 이마에 띠를 두르고 머리를 양 옆으로 땋아 내리고 턱부터 코밑까지 수염이 가득 있어요. 답답할 정도로 가렸죠."

'저 사람이 그 아역 탤런트 출신이구나' 대신 '저 사람이 누군데 연기를 저렇게 잘 하나' 하는 반응을 먼저 얻고 싶었다. 경력을 다 지우고 지금의 연기로만 평가받겠다는 게 조인표의 욕심이었다. 실제로 아역출신임을 알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신 '대조영' 당시의 활약으로 조인표는 다른 대하사극 '광개토태왕'에 캐스팅됐고, SBS '신의' 캐스팅까지 이어졌다.

◆조인표 그리고 '신의'.."맨손 바퀴벌레신, 대역 아니에요"

조인표에게 '신의'는 더욱 각별하다. 송지나 작가는 신인 시절 '호랑이 선생님'을 집필하며 조인표와 이미 인연을 맺은 사이고, 김종학 PD 역시 '수사반장' 연출 시절 아역 배우로 수차례 만났다. 20년 가까이가 흘러 만난 두 사람은 첫 눈에 조인표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아역 이미지가 아닌 배우로 인정받고 싶다던 조인표의 바람이 이뤄진 셈이다.

"제가 원했던 거죠. 아역 출신 조인표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 캐스팅하고 보니 '걔가 얘였구나' 하는 것. 처음 컴백했을 때 세웠던 목표를 달성한 거죠. 물론 감회가 새로워요. 김종학 감독, 송지나 선생님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니까요.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한 열연은 '신의'의 남달랐던 첫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조인표는 우글거리는 바퀴벌레를 직접 손으로 만져가며 영험한 약을 만드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실험실에서 자란 무균 바퀴벌레를 준비했다지만,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맨손으로 만지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말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바글거리는데 '나는 연기자야' 하고 마음을 다지면서 찍었어요. 스태프가 '그래도 균이 없는 애들이니까…'라고 저를 위로하고는 자기는 '어우 바퀴벌레' 하면서 손을 막 씻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자세히 보니까 바퀴벌레가 귀엽더라고요. 애들이 보통 바퀴벌레랑은 다르게 마디마디가 너무 깨끗해서 그냥 곤충 한마리 같았어요. 다만 아쉬운 건 손이 따로 찍히고 얼굴은 따로 찍히고 해서 방송에 나갔더라고요. 사람들이 제가 직접 했다고 믿지도 않고. 그건 좀 억울하달까. 한마리 딱 잡아서 얼굴 옆에 놓고 찍었어야 했는데, 걔네가 제 말들을 잘 안듣더라고요.(웃음)"

충청대학 전임 강사로 후임을 지도하고 있기도 한 조인표는 비장한 악역에 이어 코믹한 캐릭터로, 그 다음엔 또 다른 캐릭터로 멈추지 않고 변화해갈 계획이다.

"'신의'에서는 진지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을 해보려고 해요. 옛 얼굴이 아직 남아 있고 또 선하게 생긴 마스크이기도 하지만 여러 역할을 두루 해보고 싶고요. 요새는 반전 캐스팅을 하시니까 이 얼굴이 싸이코같은 악역의 전형적인 얼굴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연기경력 33년차 이런 말, 민망해요. 신인의 마음이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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