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한효주 "비비크림만 바른 생얼 중전"(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09.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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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 ⓒ임성균 기자 tjdrbs23@


볕이 쏟아지는 어느 삼청동 카페의 꼭대기. 한효주(25)의 생기발랄한 미소가 유독 반가웠던 건 순전히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 이하 '광해') 탓이다. 폭군과 개혁군주,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선의 왕 광해군을 대신해 닮은 꼴 대역 하선이 보름간 왕좌를 지켰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한효주는 중전으로 분해 이병헌, 류승룡 등 연기파들과 호흡을 맞췄다.

극중 하선 이병헌이 첫눈에 반한 미모에는 관객도 수긍할 듯 싶다. 한효주는 등장만 하면 스크린마저 밝아지는 듯 고운 자태로 극의 다른 중심을 잡는다. 그러나 중전은 왕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 채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온 가족을 내 준 비극의 여인이다. 동화 속 웃지 않는 공주님이 이러할까. 곳곳에 웃을 거리를 숨긴 '광해'지만, 중전 한번 웃겨보고자 하는 이병헌의 애타는 노력에도 한효주는 허튼 미소 하나를 허락지 않는다.


'같이 웃기고 싶어 근질근질하지 않았냐' 떠 봤더니 한효주는 대뜸 "나름 하이 개그를 구사했다"고 나섰다. 그녀의 "웃기옵니다"가 웃겼는지 안 웃겼는지를 논하는 동안 몇 번이나 '큭큭' 웃음이 터졌다. 유난히 싱그러운 웃음을 지닌 이 여배우는 강력한 주무기를 버린 작품에서도 충분한 매력을 발산한다. 비록 적은 비중이지만 한효주는 단아하고 강인하며 충분히 아름답다. 우리나이로 스물여섯, 여배우의 성숙이 보인다.

◆"비중 적다?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광해'에서 한효주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다. 등장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더 짧다. 주연의 무게감을 지닌 배우에겐 쉽지 않은 선택이다. 심지어 한효주가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당시 다른 영화 촬영이 맞물려 있었다. 그래도 '광해'를 놓치기가 싫었다.


"하지만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정말 좋은 영화를 한 편 했구나 하는 뿌듯함, 내가 선택을 잘 했구나 하는 즐거움이랄까. 시나리오를 읽고서는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중과 상관없이 좋은 영화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요, 무엇보다 놓치기 싫었어요. 욕심부린 부분이 있죠."

건강한 캔디 캐릭터를 도맡다시피 했던 한효주에게 중전 역할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웃음기를 싹 거두고 절제, 또 절제하는 연기를 펼쳐야 했다. 쫀쫀한 상황 코미디를 펼치며 웃는 다른 배우들이 내심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개그욕심을 부리면 영화가 뭐가 되겠나"는 그는 "사람들이 진짜 중전인 줄 알고 말도 안 걸더라. 덕분에 더 역할에 집중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촬영이 겹쳤던 다른 영화 '반창꼬'의 조감독이 '광해' 현장에 놀러왔다 확 달라진 중전 한효주에 놀라 당황한 적도 있다. '반창꼬'에선 거침없이 욕설도 내뱉는 이기적인 의사 역이라니, 대비 없이 만난 중전마마 앞에서 스태프가 황망했을 법도 하다. 한효주는 "조감독께서 '멘붕'이 오셨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반창꼬'에선 '광해'랑은 달리 현장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막 하는데 다들 '캐릭터겠거니' 하고 받아주셨어요. 현실에서 못 하는 걸 푸니 재미있더라고요. 심지어 막 편하고, 그게 저인 것 같고.(웃음) 거꾸로 '광해' 스태프가 그 모습을 보셨으면 '뭐 저런 게 다 있어' 그러셨을 거예요.(웃음)"

"절제된 연기, 자연스럽게 풀어진 연기, 어떤 연기가 더 쉽다 어렵다 구분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내 성격을 역에 투영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맡고 보면 자연스레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일에 맞춰 같이 어우러진 느낌. 생각해보면 늘 그렇게 흘러 흘러 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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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 ⓒ임성균 기자 tjdrbs23@


◆"맨얼굴로 카메라 앞에..스태프 믿었죠"

'광해'의 중전 한효주는 비주얼부터가 여느 중전과는 다르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과 반짝이는 금박 장식은 찾아볼수 조차 없다. 머리 장식도 배제했다. 대신 섬세한 색감의 파스텔톤 의상을 겹겹이 입었다.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과 어우러져 빛이 났다.

"선녀 같았다"는 기자의 칭찬에 한효주는 "그 모든 게 조명팀과 촬영팀의 덕택"이라며 공을 돌렸다.

"저의 말이나 행동, 보여주는 것보다 비주얼 자체로 중전을 보여드리고자 했던 노력이 컸어요. 촬영감독, 조명감독님들이 정말 많이 애쓰셨고요, '중전은 예뻐야 된다'고 하시면서 공들여서 찍어 주셨어요. 저만 나가면 못 보던 조명 장비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공을 들이신다는 게 피부로 와 닿았으니까 너무 감사하죠. 생긴 것보다 더 예쁘게 만들려고 애써주시는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영화 내내 빛나는 말갛고 고운 얼굴은 온전히 한효주의 것. 비비크림 하나 바르는 정도면 피부 분장 마무리였다니 장편 영화 카메라 앞에 맨얼굴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섰던 셈이다. 피부 미녀라고 불안감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스태프를 믿고 무방비 맨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여배우들은 화장기 없는 얼굴이라고 해도 화장을 하잖아요.(웃음) 첫 촬영 날 화장을 조금 했어요. 마스카라 약간 바르고 정말 조금만. 그런데 감독님이 딱 보시더니 '그것도 하지 말자'고, '그냥 카메라 앞에 서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조명감독님도 촬영감독님도 '날 믿으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어요. 처음엔 너무 힘이 없어 보일까봐 걱정이었죠. 그런데 할수록 그게 어떤 강인함처럼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감독님들께서 믿으라고 이야기해주신 게 어떤 거였는지 알았죠."

◆ "이병헌은 정말 최고의 배우"

이병헌과의 첫 호흡도 한효주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효주는 이병헌 이야기가 오자 두말없이 "정말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고의 배우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보신 분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실 것 같고요. 그런 배우와 함께 연기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죠. 확실히 에너지가 상승하는 느낌이 있어요. 앞에서 연기하실 때 보고 놀랐거든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해서.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정말 배울 점이 많았고, 작품이 끝났을 때 '아 정말 최고야' 했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한효주는 선배 이병헌을 극찬했지만 '광해'는 주인공인 이병헌은 물론이거니와 한효주, 류승룡, 장광, 김인권, 심은경까지 배우들이 두루 제 캐릭터를 제대로 살린 작품이다. 한효주 또한 그것이 뿌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주어진 역할보다 더 많은 걸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요. 허투루 있는 신이나 컷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모든 것이 꽉 차 있고. 그래서 더 뿌듯한 작품이에요."

2005년 시트콤 '논스톱'으로 데뷔 이후 7년. 이제 20대의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한효주는 '광해'를 통해 부쩍 성숙해진 느낌이다.

"하루하루가 다른 것 같아요. 순식간에 느낌이 달라진다고 할까. 스스로도 제 얼굴이, 느낌이 미묘하게 변화해가는 게 보이고 그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달라지는 걸 느껴요. 멋지게 나이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요. 결혼요? 아직은 그런 걸 생각하기엔 나이를 떠나 제가 미성숙한 것 같아요. 뭔가 더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고 강인해졌을 때, 그때야 준비가 될 것 같아요.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죠.(웃음)"

아직은 연기하고 싶은 욕심만이 많다는 한효주. '광해' 개봉 즈음 '반창꼬'의 촬영을 마무리한 한효주는 곧바로 스릴러 영화 '감시' 촬영에 들어간다. 숨가쁜 행보다. 하지만 한효주는 쉬지 않는 이유가 딱 하나밖에 없단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 놓치기가 아까워요. 아 쉬어야지 하다가도 '하고싶어 하고싶어' 이렇게 돼요. 올해가 토끼의 해래요. 제가 토끼띠거든요. '그래, 올해는 그냥 막 뛰어다니라는 이야기구나' 싶어요. 저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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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주 ⓒ임성균 기자 tjdrbs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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