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 이유진 대표 "배우가 ★되는 순간 행복"②

[여성영화인 릴레이 인터뷰] 2012韓영화, 우먼파워 빛났다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2.12.0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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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대표 ⓒ구혜정 기자


2012년 한국영화는 1억 관객을 돌파하고, 천만 영화가 두 편 나왔으며,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등 눈부신 성과를 냈다. 이런 한국영화 약진에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큰 몫을 차지했다. 제작자부터 감독, 배우까지 올해 여성 영화인들은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이 관객과 행복하게 만나도록 했다.

스타뉴스는 2012년 한국영화 결산으로 올해를 빛낸 여성영화인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연재한다. '도둑들'로 한국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한 케이퍼필름의 안수현 대표, 첫사랑 열풍을 일으킨 '건축학개론' 제작자 명필름 심재명 대표,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20대에서 30대로 끌어올린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만든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 환상멜로를 국내에 안착시킨 '늑대소년' 김수진 비단길 대표, 여성을 통해 시대적 아픔을 은유한 '화차'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 상반기와 하반기 관객을 사로잡은 배우 배수지와 박보영이 그 주인공들이다.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는 한국 영화계의 가장 신뢰받는 제작자 중 하나다. '정사'의 마케팅 담당으로 시작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4인용 식탁', '달콤한 인생'의 프로듀서를 거쳤고, '너는 내 운명'을 공동 제작했다. 2005년 말 영화사집을 창립한 이후에는 '그놈 목소리'를 시작으로 '행복',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전우치', '내 사랑 내 곁에', '초능력자' 등을 꾸준히 내놨다.

여성 제작자들이 두각을 나타낸 올해도 그녀의 활약은 계속됐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459만 관객을 모으며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내 아내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누구나 성공을 점쳤던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청순미 화신 임수정이 까탈스런 아내가 됐고, 전형적 미남이 아닌 류승룡이 카사노바로 분했다. 그러나 30대를 타깃으로 내세운 로맨틱코미디는 신선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카사노바가 여심을 자극했다.

"나도 보고 싶은 걸 영화로 만든다"는 이유진 대표는 성공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와 이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연기 잘 하는 배우가 스타로 거듭나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유독 그녀와 만난 배우들이 반짝였던 것은 물론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기획부터가 20대를 목표로 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 어떻게 기획했나.

▶로맨틱 코미디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잘 안되더라. 연애 이야기지만 공감대 있고 사회적 코드가 있는 걸 하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원작 영화가 있었지만 보고 딱 이거다, 너무 재밌다 하지는 않았다. 아르헨티나 영화라 우리나라 상황이랑 다르기도 하고 밋밋하게 느껴진 부부도 있었다. 하지만 부부생활을 통해서 남녀간 소통을 말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타깃과 좀 다르구나. 에이지가 높네'라고 생각한 건 그 다음이었다. 보통 20대 초반을 타깃으로 하는데 결혼한 부부 이야기가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됐다. 새로운 포지셔닝을 하겠다는 거창한 생각보다는 지금까지와는 다르지만 시도하면 재밌는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도 제가 보고싶어 하고 재미있어 하는 영화를 하는 쪽이다. 다만 캐스팅이 좀 고민됐다. 원래는 더 나이가 높은 배우들을 떠올렸는데, 여러 사람 공감대를 얻으려면 에이지를 좀 낮추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여성영화일까? 본인이 생각하는 여성 영화란?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다만 여성들이 좋아할 영화냐, 남성들이 좋아할 영화냐고 묻는다면 '내 아내의 모든 것'이 여성들이 더 좋아할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철저하게 남편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영화다. 그래서 남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촬영 때 주변에서나 남자 스태프가 '내 와이프가 이래'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남자들의 공감을 얻는 로맨틱 코미디라면 통할 수 있겠다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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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대표 ⓒ구혜정 기자


-여성 제작자이기에 불편하거나 혹은 유리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

▶여자라서 힘들거나 다르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다. 영화계에 입문하기 전 광고를 할 때도. 다만 '여자라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분위기는 있었다. '이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져야 해'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만 해도 강박관념이 세지 않았다. 다만 작업하는 사람들이 다 남자니까 따로 만나고 동고동락하면서 작업하는 게 불편하긴 하다. 오히려 여자니까 더 세심하게 배려하는 건 장점인 것 같다.

-2005년 이후 영화계가 산업화되고 더 투명해지면서 여성 제작자들이 두각을 나타냈다는 생각도 든다.

▶전반적으로 그런 부분이 있다. 형,동생 하면서 정산을 '퉁'치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산업화가 되어가면서 투자자들도 점점 합리적이고 깨끗하고 치밀한 정산을 요구한다. 여자들은 워낙 꼼꼼하고 투명하게 그런 부분을 챙기려는 성향이 있다보니 맞아 떨어지는 시점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또 여자가 소수이기 때문에 더 두드러져 보일 수도 있다.

-여성제작자라는 점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차이를 가져오나. 액션보다 감정선을 중시한다든지.

▶여자에 대해 잘 알고 잘 그리는 감독, 제작자가 있지만 대부분 보통 남자들은 잘 모른다. 아무래도 여자 제작자들이 여자 캐릭터가 너무 대상화되지 않도록, 혹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감정선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다. 액션을 보는 데도 차이가 있다. 남자들은 멋지다고 하는데, 여자들은 '동선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누가 누구랑 싸우는지 알 수 있어야 액션이 재밌다.

-다수의 여성 제작자들이 마케팅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는 점도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남자들은 대게 제작부나 연출부를 거치지 않나.

▶마케터 출신이 많다보니 이 영화가 어떻게 관객과 만날 것이냐, 어떤 지점을 셀링 포인트로 삼을 것이냐, 만약 그런 게 없다면 어떻게 커버할 것이냐를 보다 구체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의 경우는 어땠나.

▶권태기를 겪던 부부가 카사노바를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이야기다. 카사노바가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차별화는 될 수 있어도 공감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있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 캐스팅, 캐릭터의 외모 등 여러가지 부분을 생각했다.

제비족 하면 남자들은 잘생기고 육체미가 뛰어난 사람을 생각한다. 그런 남자를 여자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하지만 보통 여자들은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게 남녀 생각에 차이가 있는 거다. 여자 생각에서라면 카사노바는 여주인공 정인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끄집어내 주고 여자를 아름답게 해주는 부분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임수정,류승룡도 그렇고, '너는 내 운명' 황정민도 그렇고, 배우가 스타로 탄생하는 순간을 함께 해왔는데.

▶저희가 좋아하는 것은 스타의 다른 면을 보고 캐스팅하는 방식이다. 배우가 다른 영화에서 성공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다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렇게 하고 싶다. '스캔들'의 배용준도 당시엔 리스크가 있다고 했다. '그놈 목소리'의 강동원도 물론이고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임수정도 지금껏 해온 것과 다르다. 다른 지점에서 시너지를 일으킬 때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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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대표 ⓒ구혜정 기자


-올해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자 캐릭터가 있다면.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정인(임수정)이다. 확신이 있었다. 친한 여배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여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가 정말 없다. 경찰 이야기, 범죄 이야기 많은데 다 남자니까 여자들이 할 만한 게 더 없다.

-제작자로서 그런 부채의식이 있나.

▶물론이다. 마음이 무겁다. 내가 여자고 여자들이 멋있게 나오는 영화를 해야한다는 부채의식. 그런 점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짐을 던 부분이 있다. 임수정에게도 '이런 캐릭터 나오기 쉽지 않다'고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진심이었다.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공감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나오지 않을 거라고.

-임수정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도 탔다.

▶만년 후보였는데 진짜 상 하나 받았으면 했다. 개인적으로 로맨틱코미디가 시상식에서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배우가 로맨틱코미디로 주연상을 타고 조연상을 받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연기를 잘 평가해주지 않는 풍토에서 상을 탔다는 게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임수정을 비롯해 여자 캐릭터를 들러리가 아니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데.

▶아무래도 여자 캐릭터가 의미 없이 등장하는 걸 싫어하니깐. 임수정은 이미 스타였는데 또 재발견이 됐다고 할까. 그 순간을 함께했다는 게 큰 행운이다. 처음에는 마음을 졸이다가 배우의 재능과 작품이 맞아 확 꽃을 피우면서 연기 잘 하는 배우가 스타가 되는 순간을 같이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차기작은 설경구 정우성 한효주 주연의 '감시'인데.

▶여자 형사의 성장담이다. 그렇기에 선택했다. 여자 형사와 반장, 범인 세 사람의 앙상블이 커진 부분은 있다. 범죄수사액션물이 많지만 기본적으로 드라마에 가까우니까 다른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우치'로 100억대 영화도 제작해봤는데, 또 해볼 생각도 있나.

▶100억 영화는 너무 힘들더라. 그래도 할 만하면 해야지. 준비 중인 건 있다. 올해 부산영화제 PPP에 나갔던 '먼로'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에 왔던 마릴린 먼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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