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올해의음반 20선⑭강백수 '서툰말'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3.12.26 09:38 / 조회 : 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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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의 시 '향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돗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런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겠지만, 이 시를 읊조리다 보면 금세 운율이 '저절로' 입에 붙는다. 바로 이동원 박인수가 함께 부르고 김희갑씨가 작곡한 1989년 버전 '향수'다. 이 노래로 인해 시인의 1927년 '향수'는 더욱 울림이 커졌다. 리듬과 박자를 갖춘 시와, 멜로디와 화성을 갖춘 노래의 만남. 이게 어쩌면 요즘 터무니없이 잊고 사는 노랫말의 원초적 매력인지도 모른다. 마그마가 부른 박두진의 '해야'가 그랬고, 송창식이 부른 김현수의 '토함산'이 그랬으며, 이동원이 부른 고은의 '가을편지'가 그랬다.

지난 8월 나온 강백수(강민구)의 정규 1집 '서툰말'은 간만에 토씨 하나하나 신경써서 가사를 음미할 만한 앨범이다. 2번트랙이자 타이틀곡인 '타임머신'이 그 선명한 증좌다.

'..어느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9년으로 날아가/ 아직 건강하던 30대의 우리 엄마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 엄마 우리 걱정만 하고 살지말고 엄마도 몸 좀 챙기면서 살아요/ 병원도 좀 자주 가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이 말만은 전할거야/ 2004년도에 엄마를 떠나 보낸 우리들은 엄마가 너무 그리워요/ 엄마가 좋아하던 오뎅이나 쫄면을 먹을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져요/ 제발 저를 너무 믿고 살지 말아요 학교 때 공부는 좀 잘하겠지만/ 전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는 딴따라가 될거에요 못난 아들 용서하세요/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엄마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거실에서 웅크린 채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께 잘 해야지'

망자로서 어머니를 대하는 강백수의 섬세한 촉수와 흡판이 눈에 보인다. '오뎅' '쫄면' 같은 평이하고 일상적인 단어들은 갑자기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준다. 그리고, 타임머신이라는 허구를 간단히 뒤집으며 현실성을 교묘하게 체득하는 가사 말미의 재치. 맞다. 이것은 그냥 시다. 2008년 계간 '시와 세계'로 등단한 시인 강백수가 은근슬쩍 가요 팬들에게 털어놓은 이야기와 이미지의 세계, 시인의 감수성과 단어로 조탁한 노래 모음집이 바로 '서툰 말'인 것이다.

"웃음과 울음이 공존하는 작품은 흔하지 않다. 강백수 1집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노랫말로 가득 차 있다. 그는 2008년 ‘시와 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중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음악의 노랫말을 곱씹으면 왠지 더 맛깔난 노랫말로 들린다. 그리고 더 이해가 잘 된다. 나같은 속물에게는 그의 이력이 공신력으로 보여서 그런가 보다. 첫 곡부터 친구의 실명을 거론하고 타이틀곡 '타임머신'에서는 실제 자신의 부모님을 등장시킨다. 특정한 소재(남부순환로, 감자탕, 왕십리)를 부각시켜 청자로 하여금 곡에 동화되도록 한다. 그의 음악 안에서 나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을 종종 보게 된다. 적절한 비유와 통쾌한 돌직구가 살아있고 음악을 듣다보면 웃으면서 울고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미러볼뮤직 이창희 대표)

'서툰말'을 배급한 이창희 대표의 이 지적은 그래서 온전히 옳다. 시인의 주특기는, 최소한 이번 앨범에서는, '통쾌한 돌직구'인 것이다. 4번트랙 '벽'이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네가 날 떠나갈 때/ 난 다짐했지 너보다는 잘 살 거라고../ 몇 해가 지나고 우연히 찾은 옛 동네/ 네가 다니던 여고 앞을 지나가는데/ 교문에 플래카드 낯익은 이름/ 사법고시 합격을 축하합니다/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 내가 장기하를 이겨도 내가 이승기를 이겨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걸'.

3번트랙 '나쁜 노래'는 교내폭력 피해자로서 시인이 겪은 학창시절의 솔직하지만 힘없는 독백. '..빵을 사다 주어도 시험지를 보여줘도 잔인한 일상은 끝나지 않았어..' 심지어 9번트랙 '아이해브어드림'에서는 연예인에 대통령 실명까지 등장시킨다. '..내가 만약 김태희랑 사귄다면 김태희 데리고 술 사먹을 거야../ 내가 만약 박근혜랑 사귄다면 박근혜 데리고 술 사먹을 거야'

누구나 솔직할 수는 있지만(그러면서 교묘히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자신의 '힘없음' '나약함' '한계' '욕심' '망상'까지 폭로하는 것은 시인이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이 청자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은, 선량하게 살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은 대다수 우리가 절대적으로 늘 약자이기 때문이다. 계급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적으로든.

편하고 빈티지한 목소리와 세련됐다고는 할 수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던 이 가수는, 예의 시인다운 통찰력을 대놓고 번뜩이니 마지막트랙 '왕십리'다. 통찰력 혹은 귀납의 미덕이 없는, 일상의 나열이란 그저 분풀이 낙서 밖에 안되니까. '왕십리 골목에 자주 가던 술집이 또 하나 문을 닫았구나/ 스무살 우리가 떠들던 그 거리를 낯선 간판들이 채우는 구나../ 똑같은 야구잠바 입은 저네들도 그때의 우리가 그랬듯이/ 아무런 겁없이 사랑을 하겠지 이별에 눈물 흘리겠지/ 졸업한 선배들 말끔한 양복입고 가끔 술 사주러 올 때면/ 왜 그리 외로운 한숨을 쉬었는지 이제야 나도 알겠구나..'

"타이틀곡인 '타임머신'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공연장에서 들을 때도 난 항상 눈시울이 빨개진다. 내가 감동 받으며 웃으면서 울 수 있는 그의 음악을 미러볼뮤직이 유통할 수 있어 참 좋다. 난 강백수 밴드의 팬이 되었다. 그에게 느껴지는 힘찬 진정성이 나를 뭉클하게 한다. 이번 앨범 9번트랙 '아이해브어드림'의 노랫말처럼 그와 술 한 잔 해야겠다."(이창희 대표)

mp3에 싸구려 이어폰 조합이 됐든, CD에 값비싼 진공관앰프에 북쉘프스피커 조합이 됐든, '서툰 말'이라는 앨범은 이처럼 간만에 아티스트와 직접 대면케 해준다. 음질, 음색, 음장감, 공간감, 색채감, 혹은 폭발적 가창력, 이런 것들 따위가 도대체 다 뭐야? 이런 식. 그리고나서야 비로소, 바로 내 앞에서 때로는 웅크리고 때로는 서성이며 자신과 세상과 결국은 우리 이야기를 노래하는 시인 강백수가 어른거린다.

cf. [대놓고인디]2013 올해의 음반 20선 = ①로맨틱펀치 2집 'Glam Slam' ②옥상달빛 2집 'Where' ③민채 EP 'Heart of Gold' ④프롬 1집 'Arrival' ⑤장미여관 1집 '산전수전 공중전' ⑥불독맨션 EP 'Re-Building' ⑦비둘기우유 2집 'Officially Pronounced Alive ⑧어느새 1집 '이상한 말 하지 말아요' ⑨김바다 EP 'N.Surf Part.1' ⑩야야 2집 '잔혹영화' ⑪라벤타나 3집 'Orquesta Ventana' ⑫서상준 EP 'Wannabe' ⑬10cm EP 'The 2nd EP' ⑭강백수 1집 '서툰말'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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