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칼럼]오디오와 인생⑭

이광수 / 입력 : 2014.01.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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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직원으로 있었던 몇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2A3 출력관을 가지고 만들었던 3WA라는 모델이 생산 되고 있을 때다.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여직원이 있었는데 이 직원은 내가 세 번째 맞은 사무원이었다. 새로 출시될 제품의 기초 설계를 해서 이 직원에게 주면 며칠 동안 드래프트에 매달려 설계를 꼼꼼하게 그려서 완성 시켜준다. 그러면 나는 그 도면을 가지고 업체에 다니며 섀시를 완성 시킨다. 회로를 자주 그리다 보니 회로의 기호, 부품, 진공관의 구조와 각 엘레멘트들의 역할까지도 잘 알고 있다.


또 제품에 대한 문의 전화가 손님들에게서 오면 앰프의 특성과 소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잘 해주고, 제품이 완성되어 나오면 몇 시간씩 시험 테스트 하는 것도 그녀가 맡아서 했다. 그때는 주 소스가 레코드였는데, 카트리지의 중요성과 특징을 잘 이해하고 턴테이블 다루는 것도 능숙하고 조심성 있었다. 그 직원이 그만 둘 때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이 없어 조금 아쉬웠다.

1986년에 부산 YMCA에서 시청회를 할 때다. 시청회를 한다고 광고를 하고 시청회 전날 1톤 차를 준비해 JBL 대형 스피커와 모든 장비들을 싣고, 다음날 새벽 4시에 출발키로 했다. 직원 2명은 집에 가면 그 시간에 올 수가 없으니 회사에서 자고 떠나기로 했다. 다음날 새벽 회사에 와보니 회사에서 자고 있던 두 명은 벌써 트럭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출발하고, 나와 직원 한 명은 회사 뒷정리를 한 뒤 내 승용차에 타고 부산을 향해 떠났다.

고속도로를 달려 천안쯤 갔을 때였다. 내가 1차선으로 가고 있었는데, 200미터 앞에서 헤드라이트가 나를 향해서 비치고 있는 것이었다. 얼른 차선을 바꿔 그 자리를 피해 지나갔다. 그런데 옆에 탄 직원이 저 차가 우리 회사 차라는 것이다. 나는 차를 얼른 옆에 세우고 뛰어가 보니 당황스럽게도 우리 차였다. 직원 둘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 되어 눈만 껌뻑이고 있고, 차는 엔진 켜진 채로 중앙분리대와 붙어 있었다.


급히 사람을 내리게 하고 나는 라이트를 상하로 움직여 앞에서 달려오는 차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차를 갓길에 돌려 세우고 어떻게 된 것이냐며 물었다. 둘은 아무 말이 없다. 도로에서 한 시간 가량을 지체한 후 우리는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YMCA에 도착해서 30분 늦게 시청회를 가졌다. 시청회를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상해 있었고 우리끼리의 분위기도 매우 얼어붙어 있었다. 술을 먹고 핸들을 잡는 사람이나, 그렇게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아래 사람과 같이 밤을 새워 술을 먹은 과장이라는 자의 행태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리고 잠도 자지 못한 직원이 또 서울까지 운전을 하고 올라가야할 일을 생각하니 속이 더 상했다.

이런 가운데 시청회를 마치고 운전석 앞부분이 다 망가진 자동차에 짐을 싣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를 쉬고 월요일에 출근을 했다. 아침에 회의를 할 때 부산에서의 일을 말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기들의 잘못을 사과했고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로 인해서 큰 사고가 없었으며 또 무사히 돌아오게 되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어느 날인가는 거래 업체에 볼 업무가 있어 직원에게 버스를 타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는 차를 가지고 다녀오면 안 되냐며 차를 가지고 갔다 오겠다고 한다. 나는 좀 못 마땅했지만 키를 내주며 다녀오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에게서 차 사고가 났다고 하는 전화가 왔다. 상대방 운전자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직원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 일 때문에 회사 일은 접은 채 며칠 동안 곤혹스런 날들을 보내야 했고, 차는 공장에 입고돼 보름씩이나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참 마음이 묘했다. 사고 때 몸이 다치지 않은 것도 천만다행인데,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직원에게 밉살스런 생각이 드는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내 심보도 어지간히 못 돼먹은 것 같다.

차 이야기가 나왔으니 회사 차리고 처음 차를 구입할 때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83년에 대우 자동차에서 르망 승용차가 출시되어 나도 르망 차를 사기로 하고 20만원을 주고 계약을 했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는 채 모 사장에게 르망 차를 계약했다고 전화를 했다. 내 말을 들은 채 사장은 르망차를 취소하고 지프를 사라고 하며 야단이다. 나는 계약금을 돌려받기가 힘들 텐데 그냥 사겠다고 말하자, 계약금은 내가 물어줄 테니 지프로 바꾸라고 하며 쌍용차 직원을 데리고 와서 미리 준비해온 자기 돈으로 계약을 해서 나는 졸지에 900만원에서 2000만원이 넘는 비싼 차를 타게 되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은 매우 기분 좋은 식사 시간을 가졌었다. 물론 그가 내었던 계약금도 그에게 다시 돌아갔다.

반월 공단에서 사업을 하시는 채 사장님은 나와는 40년 지기로 음악과 오디오 그리고 서로의 사업과 가정사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많이 하는 분으로 지금까지 매우 가까이 지낸다. 얼마 전 압구정동에 있는 본인 소유 빌딩에 커피점을 차리시고 성업 중이시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낸 직원은 내 사촌동생이었는데 후에 그는 목사가 되어 지금은 교회를 담임하고 목회를 하고 있다. 또 더 진전된 음질을 갖춘 새 모델도 몇 종 나오고 그쪽 마니아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시청회 장소가 해결되면 잘 준비해서 부산에 가서 다시 시청회를 가져볼 계획이다.

/이광수 메타뮤직사운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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