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P, 댄서블힙합 아이돌 정규1집의 좋은예

[김관명칼럼]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4.02.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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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P '1004' 뮤직비디오 /사진출처=TS엔터 공식 유튜브 채널


아이돌이 위기라고 한다. 2008년부터 광풍처럼 불었던 아이돌 열풍이 싸늘히 식었다고도 한다. 이들은 음악사이트 멜론이 집계한 2013년 연간차트 상위권을 그 증좌로 든다. 프라이머리(1, 5위), 리쌍(2위), 배치기(4위), 허각(8위), 이승철(9위), 범키(11위), 다비치(13위), 싸이(14위), 로이킴(16위), t윤미래(17위), 산이(18위), 에일리(19위), 다이나믹 듀오(20위) 등. 힙합과 솔로, 보컬그룹의 초강세에 에이핑크(3위), 씨스타(6위), 포미닛(7위), 엑소(12위)의 선전이 명백히 가렸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이다. 2008년 원더걸스(1위), 2009년 소녀시대(1위) 2NE1(2위), 2010년 미쓰에이(1위), 2011년 티아라(1위)를 마지막으로 아이돌 위세가 예전만 못한 여러 정황이 포착되는 것도 맞다. 봇물 터지듯 한 해 수십 팀이 쏟아진 아이돌 공급 과다가 수요를 앞지른 측면도 있고, 몇몇 아이돌의 경우 졸속 데뷔로 인한 콘텐츠 품질 저하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나마 올해 1월 월간차트에서 걸스데이(3위)가 거의 유일하게 상위권에 안착한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어쨌든 2월 중 컴백할 SM 소녀시대와 YG 위너의 성적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런 와중에 3일 나온 B.A.P(젤로 힘찬 대현 영재 종업 방용국)의 정규 1집은 여러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역시 갑은 '노래'이고 '콘텐츠'다

단언컨대, 아이돌은 댄싱 머신이 아니다. 댄스만이 부각된 아이돌, 댄스만을 되레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운 몰지각한 제작자도 일부 있었지만, 팩트는 아이돌은 가수이고 아티스트라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노래에 '댄서블'(dancible)이 붙을 뿐이다. 원더걸스의 'Nobody'의 핵심이 섹시 엉덩이 춤이라고? 잘못 짚으셨다.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60년대 복고코드에 감각적으로 올라탄 멜로디와 적당한 후크가 핵심이었다. 소녀시대 'Gee', 티아라의 'Roly-Poly' 마찬가지다. 빅뱅이 여전히 잘 나가는 이유는 지드래곤의 천재적인 곡 메이킹 능력과 이를 무대에서 극적으로 소화해내는 멤버들의 탁월한 싱 & 댄싱 & 스테이징 능력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B.A.P의 정규 1집 'First Sensibility'는 평범한 진리 하나를 팬들에 던져줬다. 그건 바로 양질의 노래와 콘텐츠는 '듣자마자 꽂힌다'는 것. 노래야말로 가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것. 굳이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아도 귀가 먼저, 심장이 우선 반응하는 이 간만의 감동. 송라이터 박진영의 감각이 절정에 달한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이 그랬고, 효린의 가창력이 거의 요즘의 'Let It Go' 급이었던 씨스타의 '나혼자'가 그랬다. 그리고 이번 1집에서 이런 즉각적 반응을 일으킨 노래와 콘텐츠를 꼽자면, (비록 B.A.P는 타이틀곡으로 2번트랙 '1004(Angel)'을 내세웠지만), 3번트랙 '쉽죠', 4번트랙 'SPY', 5번트랙 'Check On', 7번트랙 'Lovesick', 8번트랙 'Bang X2'다.

'쉽죠'는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이번 곡 작곡에 공동참여한 힙합듀오 언터쳐블의 슬리피 감성이 돋보이는 곡. 물론 바비킴처럼 편안하게 그루브를 타며 노래를 하는 멤버들의 싱잉 능력도 수준급이다. 한마디로 요즘 찾기 힘든 본격 감상용 힙합곡이라 할 만하다. 'SPY'는 아웃캐스트, 에미넴, 제이지가 떠오를 정도로 흥겹고 세련된 댄서블 힙합곡. 비트를 살짝살짝 올라타는 멜로디 감각은 다분히 팝적이며, 이에 맞춰 귀에 쏙쏙 들어오는 디제잉과 입에 착착 맞게 조련한 비음섞인 라임은 이번 1집의 더블 타이틀곡으로 내세워도 좋을 뻔했다. 파워풀한 일렉 기타가 주도하는 'Bang X2'는 최소 15인치 이상의 대형 우퍼가 꽝꽝 울려대는 클럽에서 온 몸을 맡길 만한 록 필 충만한 곡. 록적인 창법과 연주, 스피릿이 의외로 B.A.P과 제대로 궁합을 맞췄다. 지난해 무게감이 남달랐던 EP 타이틀곡 'Badman'의 직계 혈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2. 대세는 힙합이다

B.A.P는 데뷔연도인 2012년부터 힙합을 내세웠다. 그렇다고 그때 유행했던 일렉트로닉 힙합은 아니었고 오히려 위험수위를 간신히 넘지않는 정통힙합에 가까왔다. 이들의 화려하고 절도있는 군무는 오히려 이들의 숨은 얼굴을 가려준 의도된 포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데뷔싱글에 들어갔던 'Warrior'가 그랬고 첫번째 EP 'No Mercy'가 그랬으며, 지난해 'Hurricane'과 'Badman'이 그랬다. 맞다. 이들은 아이돌로 포장된 진골 힙합전사였지, 힙합전사를 흉내낸 함량 미달의 아이돌이 아니었던 게다.

이번 앨범에서 이들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로서 '힙합'을 고집한 것은 그래서 꽤 괜찮은 착점이다. 감성 보컬이 묻어나는 힙합풍의 댄스곡 '1004(Angel)'와 YG풍의 일렉트로닉 기운이 피어나는 'Check On'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전곡이 힙합 변주곡(Variations)이다. 그리고 이러한 힙합 고집은 묘하게 대중적 흥행성마저 가져갈 공산이 크다. 왜? 익숙한 팝적 멜로디와 친숙한 발라드식 기승전결, 더 예측가능한 댄스 후크에 몸을 맡기기에는 세상은 이미 만만찮게 돼버렸으니까. 느닷없이 세상에 욕설을 해대고 싶고, 삐딱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싶고, 그래서 음악은 더더욱 직설적으로 배설하고픈 그 욕망을 담을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남은 장르가 바로 힙합이니까. 동의하지 못하시겠다고? 마르코 작사작곡의 숨은 비기 9번트랙 'S.N.S'를 들어보시라.

3. 유행은 스스로 만드는 것

지난해 4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차트 역주행을 하며 1년만에 다시 차트 상위권에 오르자 우려했던 일이 또 벌어졌다.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걸쳐 '시즌송'이 봇물을 이룬 것.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너도나도 '겨울' '크리스마스' '첫눈'을 테마로 한 노래들을 솔로곡, 듀엣곡 그것도 아니면 소속사 단체 프로젝트곡으로 불을 뿜듯이 내놓았다. 최근에는 걸그룹의 섹시 경쟁이 주 테마다. 이제는 '19금'이 문제가 아니다. '23금'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요즘 컴백하는 걸그룹은 섹시코드에 목숨을 걸었다.

문제는 시즌송이나 섹시코드, 아니면 한때 유행했던 복고코드, 엽기코드 모두 그 수혜주는 언제나 선발주자 몇 팀뿐이라는 것. 그리고 지난해 가요신을 뒤덮다시피 한 힙합(혹은 힙합코드) 역시 유행코드로 접근하면 절대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 '아차' 싶어 한발 늦게 뛰어든 당신, 피해는 고스란히 당신 몫이지만 치명적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엇비슷한 코드와 유행의 포화야말로 어김없이 팬들의 대탈주와 전체 가요신의 자멸을 부루는 주범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아이돌 위기론이 등장한 것, 어느 정도 이 주장에 설득력이 생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런 시한부적인 유행에 곁눈질하지 않고, 우직할 정도로 댄서블 힙합의 세계를 파고드는 B.A.P의 행보는 전체 가요신을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타이틀곡 '1004(Angel)' 역시 멤버들의 힙합감이 제대로 물오른 B.A.P표 댄스곡이다. 이러한 아티스트로서 고집과 세계관은 '돈 안되는' 지방 소규모 공연장에서조차 백댄서들 전원을 전부 동원해 무대에 설 정도로 콘텐츠('Badman') 품질관리에 심혈을 다했던 이들 캐릭터와 꽤나 정확히 맞닿아있다. 앨범 재킷에 고집스레 토끼를 집어넣는 고집도 그렇고. '히든싱어'에서 휘성이 후배 작곡가들에 당부한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돌고도는 유행을 좇지 마시라. 자기 우물을 파며 때를 기다리시라."

4. 가수를 가수답게 하는 것, 정규앨범

최근 5, 6년 가요신을 보면 치고빠지는 게 꼭 복싱이나 태권도선수만은 아닌 것 같다. 팬들의 수요를 실시간으로 채워준다는 미명하에 '치고' 나왔다 빛도 못보고 '빠진' 싱글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미니앨범, 혹은 정규앨범이라고 해도 기존 싱글들을 반 이상 채우고, 정규앨범 리패키지라고 해도 기존 정규앨범에 신곡 단 한 곡만을 추가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것들은 '앨범'이 아니다. 그냥 팬시용 '음반'일 뿐이다.

B.A.P의 정규 1집은 무려 13곡의 펄펄 끓는 신곡이 담겼다. 인트로인 1번트랙 'B.A.P'부터 강지원 김기범 콤비가 합을 맞춘 13번트랙 'With You'까지 앨범이 그야말로 꽉 찼다. 그렇다고 기존 싱글과 EP의 확대버전도 아니다. 데뷔 이후 단단히 다진 내공을 한 데 똘똘 뭉쳐 보란듯이 45분 동안 펼쳐놓는 신곡들의 값비싼 뷔페이자 향연이다. 사운드적으로도, 녹음면에서도, 오디오적인 쾌감에서도 모자란 점이 없다. 버스커버스커의 1집 '버스커버스커', 조용필의 19집 'Hello', 이승철의 11집 'My Love', 그리고 B.A.P의 1집 'First Sensibility', 이 정도급의 음반이어야 가요사는 비로소 '정규앨범'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런 정규앨범을 내놓을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비로소(당연히!) 가수다.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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