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소장' 최규성 "가요LP 가이드북, 꿈 하나 이뤘다"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4.02.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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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 인터뷰


"여기 리리시스터즈의 김성아씨가 은지원 어머니이고, 저기 '댄서의 순정'을 부른 박신자씨가 주현미의 큰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이 싱글앨범이 1966년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던 길옥윤-패티김 결혼식 때 하객에게만 돌렸던 기념음반이죠. 김종필씨가 주례를 섰던 그 결혼식 말입니다."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카페. 한쪽 벽면에 걸린 100여장의 희귀 오리지널 가요 LP 재킷들을 가리키며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53)씨의 설명이 끊이지 않는다. 이 재킷들은 닉네임 '절판소장'으로 유명한 최씨가 15년여 동안 모은 2만여장의 LP에서 고르고 고른 음반들. 600만원이 넘는 LP,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는 LP까지 한 장 한 장 모두가 우리 대중음악사의 소중한 '유산'들이다. 최근 이들 음반을 포함, 대중음악사적으로 중요한 500여장의 LP 정보를 담은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안나푸르나 발행)을 낸 최씨와 차 한 잔 나눴다.


-책도 그렇고 여기 재킷들도 그렇고, 참 대단합니다.

▶1999년 처음 품었던 꿈, '한국대중음악 음반에 대한 가이드북을 내보자'는 꿈이 이뤄진 듯합니다. 내 인생에서 환희를 느끼게 해줬던 LP들을 대중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그 꿈 말이죠. 내 인생의 책이 생겼습니다.

-닉네임 '절판소장'이 뜻하듯, 구하기 힘든 절판 LP를 많이 수집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LP로만 2만장 정도 되고, 이 중 90%가 가요입니다. 1966년 이금희가 '키다리 미스터김'으로 MBC 최고가수상을 받았는데, 당시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이를 기념해 한국 최초의 골든디스크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실재 여부가 확인 안된 디스크였는데 우연히 인터넷 경매에서 발견, 160만원에 낙찰 받아 제가 소장하게 됐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김민기 앨범, 1954년 국내 최초 LP인 'KBS레코드' 등 지금 갖고 있는 모든 LP가 이처럼 다 내 자식 같은 존재들입니다.

-컬렉터 기질과 열정이 거의 '넘사벽' 수준이십니다.

▶CD도 2만장, 카세트테이프도 몇천장, 유성기도 몇 개 있습니다. '울릉도 트위스트'를 부른 이씨스터즈의 반짝이 무대의상, 가수가 출연한 영화 오리지널 포스터 등 지금까지 모은 아이템들이 10만종은 됩니다. LP는 이 중 일부죠.

-LP는 평소 어떻게 감상하시나요?

▶영국 레가사 것을 비롯해 턴테이블 3개로 번갈아 듣습니다. 프리는 맥킨토시 진공관앰프, 파워는 다이나코, 스피커는 탄노이 것을 씁니다. 하이엔드는 아니죠.

-이처럼 LP를 방대하게 모으신 사연과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1968년 강릉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강릉KBS어린이합창단에 입단하면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73년 겨울, 친구 집에서 처음 들었던 LP 사운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딥퍼플의 '하이웨이 스타'였죠. 이후 중학교 때부터 LP를 사모으기 시작해 대학 들어가기 전 4000장 정도의 LP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가요는 당시 라디오에서 포크가 많이 흘러나와 포크 음반을 많이 샀습니다. 당시 매달 공무원 한달치 월급을 쏟아부었는데 다행히 집이 유복한 편이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한때 레이저디스크도 3000장 정도 모으기도 했었는데, 본격적으로 작심하고 가요 LP를 수집한 것은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LP로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1999년부터입니다. 제대로 된 LP 소리를 들으면서 LP를 다시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마침 그때는 교보문고 매장을 둘러보며 "왜 우리나라에는 대중음악 가이드북이 없을까" 하는 좌절감이 들었던 때였서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자 2006년 직장(한국일보 사진부)을 그만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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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 인터뷰


(이런 컬렉터 기질과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열정은 이번 가이드북에 고스란히 담겼다. '설'과 '감상'만 난잡하게 가득한 에세이류가 아니다. 505쪽에 가득한 LP 재킷 앞뒷면 사진(수록곡 제목 포함), 속지 내용, 초반 재반 발매사연, 해당 아티스트 정보, 거래가를 기준으로 한 LP 등급 등 모든 게 '팩트'(Fact)다. 한국에는 이런 책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몇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①명쾌한 정의 = 최초의 포크앨범 아리랑 브라더스, 최초 여성 창작 포그앨범 방의경, 최초 발매 밴드앨범 키보이스 1집, 최초 어린이독집 하춘화 가요앨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최초 수록 앨범 차중락, '사노라면' 원곡 수록앨범 쟈니리, 조영남 데뷔음반 '노래의 성좌', 조용필 첫 독집 '스테레오 히트앨범' 등등.

②희귀 에피소드와 아는 사람만 아는 계보의 마력 = 고 김광석이 불렀던 '저 하늘의 구름따라'는 90년대 이후 양희은의 음악감독이었던 김의철의 '불행아'가 원곡이다, 사랑과 평화의 이남이가 히트시켰던 '울고 싶어라'를 먼저 녹음했던 여자가수는 김세화였다.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를 처음 취입 제의를 받은 가수는 패티김이지만 녹음날 리사이틀 무대에 서는 바람에 신중현이 김추자를 추천했다, 등등.

③90년대 이후 LP까지, 현재진행형의 가치 = 신승훈 1집 '미소속에 비친 그대',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 김광석 4집 '서른 즈음에', 전람회 1집 '기억의 습작', 이상은 6집 '공무도하가', 김두수 4집 '자유혼', 장기하와 얼굴들 1집 '별일없이 산다', 브라운아이드소울 3집, 싸이 싱글 픽처디스크 '강남스타일', 조용필 19집 'Hello' 등등.

④가이드북이면 가이드북답게. LP입문자들을 위한 추천음반까지 = 구입가능한 LP 127장 리스트다. 공일오비 3집, 김세환 김세환노래모음, 김수희 애모, 김수철 2집, 남성듀엣 민들레 1집, 박광현 3집, 듀스 2집, 노고지리 2집, 양희은 양희은 1991, 산울림 3집, 소방차 1집, 신촌블루스 2집, 이수미 오리지널 힛송 총결산, 이미영 지금은 늦었어, 조규찬 1집, 조덕배 3집, 혜은이 혜은이 1983..그렇다고 제목만 무성의하게 단 것이 아니다. '이 음반은 혜은이가 작곡가 길옥윤이 아닌 이범희와 작업하며 길옥윤의 그늘을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독백'이 1983년 2월 '가요톱10'에서 정상을 차지, 이 앨범은 발매 4개월만에 1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녀의 건재를 확인시켰다. 이 앨범의 히트에 힘입어 혜은이의 노래는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1983년 가장 많은 방송 횟수(조용필 1339회, 혜은이 1150회)를 기록했다..'(혜은이 1983/독백/1982년/태양음향)

⑤책에서 딱 하나만 골라봤다. 148쪽 한대수 1집 '멀고 먼 길' = 레이블 신세계레코드 S가8012, 연도 1974, 가격 2등급(엽전4개짜리. 거래가 50만~100만원). '세가지 버전이 혼재하는 한대수 1집을 선택할 때 꼼꼼하게 챙겨봐야 할 팁 한 가지. 인서트로 수록곡들의 악보와 가사가 들어있는 속지의 유무다. 남아있는 양이 현격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악보와 가사가 수록된 속지 유무에 다라 이 음반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1974년 계약금 50만원을 받고 신세계레코드에서 첫 독집 '멀고 먼 길'을 발표했다. 오리지널 초반은 셀프 촬영한 거친 입자의 흑백사진 속에 표출된 삐딱한 자화상으로 앨범재킷이 꾸며져있다. 초반 음반은 아이보리 라벨과 레드 라벨 두가지가 있다. 아이보리 라벨은 아주 귀하고 대부분 레드 라벨이다. 아이보리 라벨은 제작일자 문구만 있고 레드 라벨은 제작일자 문구가 없는 것과 1974년 10월20일로 명기된 두가지가 있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녹음시간은 딱 8시간. 포크가수 방의경의 기타를 빌려 드럼 권용남, 베이스 조경수, 첼로 최동휘, 피아노와 플루트 정성조와 4트랙 동시 녹음을 했다...이후 음성적으로 애청된 8곡은 소홀히 넘길 노래가 단 한 곡도 없다. 불협화음의 연속인 '물 좀 주소'는 절규하는 목소리로 강력한 충격파를 날렸다. 격조 있는 플루트 선율과 투박한 경상도 억양이 앙상블을 이룬 '옥이의 슬픔'도 뺄 수 없다. 17세 때 만든 '행복의 나라'는 한국 포크송을 대표하는 명곡이다'...

이쯤되면, 대중문화 종사자나 일반 가요팬들에게는 일종의 '가정상비약' 쯤 된다. 한대수, 최이철, 최백호, 김두수, 주현미, 강인봉, 김도균, 하세가와 요헤이 등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이 너도나도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가이드북은 이미 이 방면에 일가를 이룬 '절판소장'이 척박한 한국 기록문화에 던진 회심의 한 방이다.)

-소장 LP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적, 구체적 단면들을 담은 저장매체라는 점에서, 이번 가이드북은 국내 대중음악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에 소개한 LP가 320장 정도, 부록에 소개한 LP가 120 정도이고 각 LP마다 초반, 재반 등이 포함됐으니 총 500장은 넘을 겁니다. 앨범 재킷도 일일이 사진으로 2000장 정도 찍었습니다. 영화는 영상자료원이 있는데, 왜 대중음악은 그런 곳이 없을까, 이게 평소 불만이었습니다. 한국대중음악아카이브 건립이 이제 남은 또 하나의 꿈입니다.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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