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명의 오디오매칭]①바쿤프리,파워+탄노이 스털링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4.03.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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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탄노이 스털링SE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요즘 '설국'의 이 첫 문장이 많이 떠오릅니다. 어둠컴컴한 터널을 지리하게 달려, 어느 순간 도달한 광명의 하얀 세상. 터널의 침묵이, 설국의 음악으로 확 바뀌는 대비.


오디오가 그런 것 같습니다. 천재들이 만든 턴테이블과 CDP, DAC, 프리, 파워에 스피커를 연결해 양질의 음악을 들을 때, 얼핏 아른거리는 설국의 풍경. 오디오 매칭과 업그레이드를 통해 이 설국의 풍경이 더 가깝게 다가올 때도 있지만, 금세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결국은 길고 긴 터널 안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오디오파일들은 그 설국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다시 맛보기 위해, 혹시 모를 더 눈부신 설국의 풍경을 접하기 위해 오늘도 긴 터널을 헤매는 것인지 모릅니다.

스타뉴스가 '김관명의 오디오매칭'이라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칭'(matching)이라는 말 그대로, 앰프와 스피커, CDP/턴테이블과 앰프, DAC과 앰프, 프리앰프와 파워앰프 등 예상 가능한 오디오기기간 조합과 그 결과를 살펴보는 내용입니다. 오디오 공력이 상당한 전문가들이 매칭해준 환상의 조합도 있고, 어설픈 스펙과 감과 브랜드만 믿고 연결했다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조합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최신 기기, 스테디셀러, 빈티지 등 '연식'이 다른 오디오기기간 매칭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리즈가 결국 '설국'을 향해 가는 길고긴 터널 안에서 쓰여지는 체험기라는 것이겠지요. 물론 이 매칭의 과정을 즐기는 취미성도 빼놓을 수 없지만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음악'(The only thing that really matters is the music)이라는 뼈아픈 격언을 되새기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①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 탄노이 스털링 SE


첫 번째 매칭은 일본 바쿤프로덕츠(Bakoon Products)의 콤팩트 프리앰프 PRE7610mk3, 콤팩트 파워앰프 SCA7511mk3-2 조합에 영국 탄노이(Tannoy)의 스피커 스털링SE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좀 언발란스한 매칭이긴 합니다. 덩치도 그렇고, 두 브랜드의 역사도 그렇고, 앰프의 출력(15W)도 그렇고.

앞서 이들 앰프+스피커를 움직여줄 음원과 음원플레이어를 소개합니다.

▷음원 = 디지털음원(24비트 aiff, CD에서 리핑한 16비트 aiff), CD

▷음원 플레이어 = 맥북프로(뮤직서버)+네임 DAC-V1(DAC), 크렐 KPS 28C(CDP)

▷뮤직서버 구성 = 아이튠즈+오디르바나 플러스(Audirvana Plus)

이 '앞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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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노이 스피커 스털링SE


영국 탄노이 스피커에 대한 설명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탄노이는 커다란 동축 유닛과 인클로저에서 쏟아져나오는 풍윤한 사운드, 특히 현악 연주 같은 클래식 음악재생에 강점을 보이는 스피커 브랜드로 유명합니다. 옥스퍼드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니 '탄노이(tannoy)'가 'A type of public address system'(일종의 공공음향재생시스템. PA)으로 나와있습니다.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죠. 'the news was tannoyed one afternoon'(어느날 오후 탄노이를 통해 뉴스가 흘러나왔다)처럼 동사로 쓰여진 예문까지 있습니다. 그만큼 이 '탄노이'라는 브랜드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이처럼 해당 브랜드와 그에 얽힌 음악, 녹음, 레이블, 연주자의 역사와 에피소드를 찬찬히 음미하는 것도 오디오의 한 취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탄노이는 G.R.파운틴이 1926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한 회사(Tulsemere Manufacturing Company)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회사가 1928년 만든 라디오용 정류기 재질이 탄탈럼-납 합금(tantalum-lead alloy)이었기 때문에 이 때부터 회사이름을 'Tannoy'로 바꿨다고 합니다. 어쨌든 탄노이는 1920~30년대 PA시스템의 독보적 존재로 성장했고, 그러다 1947년 R.H.래컴이 개발한 15인치 동축 스피커 유닛이 바로 그 유명한 '듀얼 콘센트릭(Dual Concentric)'입니다. 영국 KEF사 등에서도 채택, 개발해오고 있는 이 동축 유닛은 고역을 담당하는 트위터와 중저역을 담당하는 우퍼의 중심을 한 축에 놓음으로써 선명한 점음원을 재생키 위한 스피커 유닛입니다. 우퍼 안에 트위터를 집어넣어 마치 한 유닛처럼 보이죠. 그리고 이 탄노이 듀얼 콘센트릭의 두번째 개발 유닛(모니터 실버)을 채용한 스피커가 바로,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오토그래프'(1953년)입니다.

'스털링'(Stirling)은 탄노이가 1983년 역시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채택해 내놓은 플로어스탠딩형 스피커입니다. 우퍼 지름이 10인치, 감도가 90dB, 인클로저 높이가 70cm였던 이 스털링은 이후 여러 버전을 내놓으며 진화했는데, 탄노이의 최고 베스트셀러 모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스털링 버전은 오리지널(1983), 스털링HW(1987. 하드와이어링 채택), 스털링TW(1992. 튤립웨이브가이드 및 바이와이어링 채택), 스털링TWW(1998. 월넛 마감), 스털링HE(1999. 패널을 기존 코르크에서 나무로 변경. 인클로저 용적이 처음으로 기존 68리터에서 85리터로 증가), 스털링SE(2005. 80주년 기념모델. 부품고급화) 순으로 변경됐습니다. 2013년에는 8년만에 스털링GR(Gold Reference)이라는 모델이 또 나왔습니다(가격도 많이 올랐습니다). 탄노이 프리스티지 라인의 막내(웨스트민스터 로얄, 켄터베리, 캔싱턴, 턴베리, 스털링 순)인 스털링은 역대 7가지 버전 모두 10인치 우퍼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채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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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노이 스피커 스털링SE


멀리 돌아온 느낌이지만, 이번에 바쿤 앰프와 짝을 이룰 탄노이 스피커는 2005년 첫 선을 보인 스털링SE입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클래식 가구 디자인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높이 85cm, 폭 39.7cm, 안길이 36.8cm, 무게 23kg. 특히 전면 그릴은 탄노이 특유의 거친 모직 소재라 (개인취향이겠지만) 상당히 따뜻한 인상을 던져줍니다. 또한 덕트(우퍼 후면의 진동에너지가 빠져나오는 구멍)가 양 모서리에 길게 늘어선 형태도 특이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모서리에 2개의 긴 막대형 덕트가 뚫려있습니다. 인클로저 마감은 월넛 합판(두께 1.8cm)과 원목, 용적은 역시 85리터입니다. 후면 밑에는 바이와이어링 단자가 있는데 접지용으로 별도의 단자를 둔 점이 특이합니다. 듀얼 콘센트릭 유닛은 10인치 콘형 페이퍼 펄프 우퍼에 튤립형 웨이브가드가 달린 1인치 돔형 알루미늄 합금 트위터로 구성돼 있습니다. 고역과 중저역을 나누는 크로스오버는 1.8kHz에서 이뤄지며, 감도는 상당히 높은 편인 91dB, 공칭 임피던스는 8옴입니다. 주파수응답특성은 35Hz~25kHz. (이러한 스펙 이야기 역시 나중에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 묵직한 느낌의 스털링SE에 바쿤 앰프들을 매칭해봤습니다. 스털링SE가 아무리 감도가 8옴에 91dB로 울리기 쉬울 것 같아 보이지만, 파워앰프 출력이 '고작' 15W인 바쿤이 제대로 궁합을 이룰 수 있을까요. 2.9kg의 파워앰프가 23kg의 스피커로부터 듣고자 하는 음악을 쏙쏙 빼올 수 있을까요. 더욱이 탄노이 홈페이지나 매뉴얼에 따르면 스털링SE의 추천 앰프출력(recommended amplifier power)이 30~150W인 상태에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10W짜리 진공관앰프를 1년 넘게 사용해오면서 '출력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해왔고, 제작사와 바쿤 마니아들도 '구동력이 출중하다'고 하지만, 과연 이 '쬐그만' 파워앰프가 10인치 우퍼에 85리터짜리 용적을 자랑하는 탄노이를 울릴 수 있을까요. 하여간 의구심이 끊이지 않습니다.

바쿤은 마란츠, 맥킨토시, 마크 레빈슨, 야마하, B&W 같은 세계적 유명브랜드가 결코 아닙니다. 오디오파일들이 한번쯤은 써봤거나 써보길 원하는 명망있는 앰프 제작사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이프릴뮤직, 메타뮤직사운드, 서병익오디오, 인티머스, 크렐, 네임, 쿼드, 사이러스, 뮤지컬 피델리티, 록산, 레가, 브라이스턴, 서그덴, 덴센, 크릭, 메리디안, 프라이메어, B.M.C, 골든문트, 가토오디오, 드비알레, 볼더, 버메스터, 오디오리서치, 옥타브, 린, 오디오아날로그, BAT, 누포스, 트라이곤, 클라세, 다니엘 헤르츠, 에어, 패스, TAD, ATC, 골드문트, 댄 다고스티노, 제프 롤랜드, 퍼스트 와트, 아인슈타인, 심오디오, 유니슨리서치, 자디스, 아캄, 케인, 테너, 린, 소울루션, 에어, dCS, 컨스털레이션, MBL, 헤겔, CH프리시전, 나그라, FM어쿠스틱스, 코드, 티악, 레벤, 페이즈메이션, 에소테릭, 어큐페이즈, 우에스기, 럭스만, 데논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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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바쿤은 몇년 전부터 국내외 마니아 중심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 팬들이 거의 자발적으로 생겨난 일본의 작은 제작사입니다. 제작사에 따르면 '사트리(SATRI)'라는 회로를 통한 독특한 증폭방식으로 음악신호의 왜곡을 최소화해 정밀한 음악 재생을 가능케 했다고 합니다. 바쿤 설립자인 아키라 나가이는 이 사트리회로를 집적회로에 담은 SATRI-IC를 1998년 완성시킨 후 개발을 거듭해 2012년 SATRI-IC-EX, SATRI-IC-UL을 탄생시켰고, 이 IC 최신 버전을 담아 내놓은 두 콤팩트 프리, 파워앰프가 바로 RPE7610mk3, SCA7511mk3-2입니다. 모델명에 '7'이 붙은 이들 콤팩트 프리, 파워앰프의 윗급으로는 '5'로 시작하는 프리앰프 PRE5410mk3, 파워앰프 AMP5513mk3, 모노럴 파워앰프 SHP5516M이 있습니다. 바쿤의 프리, 앰프간 연결을 기존 전압전송 방식(RCA→RCA)이 아닌, 전류전송 방식(BNC→BNC) 인터케이블로 연결하는 점도 독특합니다.

어쨌든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외양에 대한 첫 인상은 '작고 예쁘다'는 겁니다. 두 앰프 모두 높이가 78mm, 폭이 235mm, 깊이가 295mm에 불과하고 무게는 '고작' 2.9kg입니다. 그냥 한 손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외양만 작은 게 아닙니다. 파워앰프 출력의 경우 트리플 푸시풀 회로를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각 채널당 스피커 입력임피던스 8옴 기준에 '고작' 15W입니다.

RPE7610mk3, SCA7511mk3-2 모두 알루미늄 커버 표면에 검은색 크리스털 도장을 입혔고, 게인 노브, 인풋 선택 노브 모두 특이하게 황갈색 베이클라이트 재질로 돼 있습니다. 역시 취향의 문제겠지만, 시각적으로 그리고 촉감적으로 매우 만족스럽니다. 프리앰프 입력은 전압입력(RCA) 3계통, 전류입력(사트리링크. BNC) 2계통, 출력은 전류출력(사트리링크. BNC) 1계통, 전압출력(RCA) 1계통, 헤드폰출력 1계통입니다. 파워앰프 입력은 전압입력(RCA) 2계통, 전류입력(사트리링크. BNC) 1계통, 출력은 15W, 헤드폰출력 1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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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바쿤 파워앰프에서 특이한 점 하나는 자체로 게인조정이 가능해 프리앰프 없이도 음악신호를 직접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인티앰프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프리앰프에도 게인 노브와 함께 입력 선택 노브가 있습니다. 그리고 '게인'(Gain)이라는 말은,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입력단의 신호 조절을 통해 음량을 제어하는 장치로 여기시면 됩니다. 보통의 '볼륨'(Volume)이 앰프 출력단의 신호를 조절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죠. 이 역시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음악을 들어봅니다. 작정하고 음반을 '딱' 4개만 추려 들어봤습니다.

①줄리아노 카르미뇰라 '비발디 사계'(1994. Divox)

②제니퍼 원스 'The Hunter'(1992. Private Music)

③반 클라이번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1958. RCA)

④B.A.P 'First Sensibility'(2014)

우선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가 '유쾌한 마르카 합주단'(Sonatori De La Gioiosa Marca)과 협연한 비발디의 '사계'입니다. 오디오파일들 사이에서는 스피커의 저역 재생능력과 오디오의 대역 밸런스, 리듬감, 활기 등의 테스트로 자주 듣는, 아주 녹음이 잘 된, 그리고 연주도 훌륭한 CD입니다. '사계' 말고도 '3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F단조'(RV551), '현을 위한 협주곡 D단조'(RV128) 등 비발디의 다른 곡 2곡도 함께 실렸습니다. 소위 '탄노이 사운드'의 핵심을 이루는 바이올린 현 소리가 이 스털링SE에서는 어떻게 울릴지 워낙 궁금했습니다.

'사계' 봄의 3개 악장을 바쿤+스털링SE 조합으로 들으면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역시 대역 밸런스입니다. 고역과 중역, 저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이올린의 현소리가 어디 치우지지 않고 거의 완벽히 균형을 맞춘 모습입니다. 고역은 약하거나 흐리거나 얇지 않고 보드랍고 촉촉합니다. 따로 놀거나 쏘는 느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표현인 '실키(silky)'한 느낌까지 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역대에서는 때론 약간 거칠고 뻑뻑하고, 때론 가냘프고 보드라운 바이올린 현 특유의 음색(timbre)이 골고루 살아납니다. 유리창으로 들어와 현에 부딪힌 햇볕이 느껴질 정도라면 너무 과장일까요.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일궈내는 저역 역시 10인치 우퍼에서 풍윤한 사운드가 쏟아져나옵니다. 저역이 받쳐주니 음악 전체의 리듬감까지 살아납니다. 바쿤의 구동능력은 합격점을 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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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노이 스피커 스털링SE


그런데 약간 욕심을 내보면, 역시 무릎을 때리는 거센 저역 사운드 '한방'이 아쉽습니다. 바쿤 파워앰프가 스털링SE의 우퍼를 완벽히 뒤흔들어주지 못한 탓일까요. 많은 '사계' 음반 중 카르미뇰라의 디복스 CD를 즐겨 듣는 이유가 봄 1악장에서 들리는 비올라와 첼로의 무시무시한 저음때문인데, 이 현이 끊어질 듯한 저역에 대한 개인적인 감동이 좀 약합니다. 며칠 전 국내 진공관앰프 제작사인 메타뮤직사운드의 50W짜리 모노럴 파워앰프와 15인치 탄노이 K3808 모델 조합이 던져준 가공할 저역에는 역시 많이 모자랍니다. 뒤에 또 언급하겠지만 제니퍼 원스의 'Way Down Deep'에서 나오는, 바닥에 확 깔리는 베이스와 킥드럼의 저역 사운드도 그래서 많이 아쉽습니다.

바쿤의 장점은 트랜지스터 앰프임에도 불구하고 EL34나 300B 같은 섬세하고 유연하며 야들야들한 진공관의 음색을 전해준다는 점입니다. 이는 미국의 팝&컨트리 보컬리스트 제니퍼 원스의 1992년 앨범 'The Hunte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음반은 제니퍼 원스라는 여성보컬의 감칠맛과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애청 음반입니다. 보컬 말고도 색소폰, 일렉 기타, 드럼 하이햇, 트럼펫, 트라이앵글 등 다양한 악기들의 음색이 과연 오디오에서 얼마나 제대로 표현되는지, 그리고 킥드럼의 초저역을 얼마나 감동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지 등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음원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분석'을 떠나서도 10곡 46분 내내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어쩌면 이게 더 중요하겠죠).

첫곡 'Rock You Gently'에서 들려오는 제니퍼 원스의 목소리는 그녀가 푹 자고 일어나 해양심층수를 몇 잔 마시고 부르는 듯합니다. 그만큼 촉촉하고 윤기가 졸졸 흐릅니다. 어디 아픈 기색도 전혀 없습니다. 이게 바로 '중역의 순도'라 칭하는 것이겠죠.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이지만, 소름끼칠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보컬의 재생음 모델은 싱글 구동의 제대로 만든 300B 진공관앰프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처럼 보드랍고 달콤한 여성보컬의 재현능력은 음악신호의 정밀한 재생에 중점을 둔 바쿤 프리앰프의 성과라 할 만합니다. 또한 이를 듀얼 콘센트릭이라는 점음원 재생 유닛을 통해 제대로 들려준 스털링SE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전에 같은 곡을 출력관으로 채널당 EL34 진공관 1개씩 쓴 유니슨리서치의 심플리투에 스털링SE를 물려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런 감흥이 이 바쿤 앰프를 통해서 그대로 전해집니다. 해상력, 디테일, 포커스, 투명도 모두 만족스럽니다.

제니퍼 원스의 노래를 들으면서 확연히 느낀 것은 바쿤+스털링SE 조합이 선사한 생생한 '사운드스테이징(soundstaging)'입니다. 'Rock You Gently'가 시작하고 제니퍼 원스가 처음 목소리를 내는 순간, 양 스피커(좌우 스피커 거리는 2.5미터) 정가운데에 그녀가 서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Somewhere Somebody'에선 초반 트라이앵글 소리가 오른쪽 스피커 뒷쪽에서, 베이스기타 소리가 제니퍼 원스 왼쪽 뒷편에서 들립니다. 그러더니 남성보컬 맥스 칼이 슬쩍 그녀 뒤에서 걸어 들어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보입니다'. 한마디로 이 음반 녹음이 이뤄진 공간, 제니퍼 원스가 노래를 부르는 무대가 '지금 이 곳에서' 느껴집니다. 단 2개의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매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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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다음은 지난해 2월27일 79세를 일기로 사망한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CD입니다. 반 클라이번은 1958년 러시아 모스코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 미국에서 카퍼레이드까지 펼쳐졌던 역사적인 연주가입니다. CD(2012년 RCA리빙스테레오 박스세트)에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담겼는데, 차이코프스키 곡은 반 클라이번이 러시아 콩쿠르에서 실제 연주했던 곡이고 지휘자까지 키릴 콘드라신으로 똑같습니다. 협연은 RCA심포니오케스트라. 라흐마니노프 곡은 프리츠 라이너 지휘,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입니다. 자, 이제 탄노이에서 이 역사적인 베스트셀러 협주곡의 피아노 타건음이 어떻게 들리는지가 관건입니다. 또한 소출력 바쿤 앰프가 오케스트라와 협연 부분을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피아노 음색은 한마디로 뷔페 스타일입니다. 반 클라이번 특유의 강력한 타건을 동반할 때는 피아노 줄의 웅 웅 대는 강한 진동이 느껴지고, 보드라운 터치를 동반할 때는 한없이 낭랑하고 영롱한 기운마저 풍깁니다. 오디오가 피아노 음색을 제대로 내줄 때 입에 군침이 도는 그런 경험, 해보셨겠지요? 이 음반이 그렇습니다. 악기 소리가 메마르지 않고 약간 촉촉한 느낌까지 던져줍니다. 이에 대한 공은 역시 바쿤 프리앰프쪽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다만 오케스트라와 협주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운 감이 듭니다. 대편성곡의 총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두 피아노 협주곡 모두 오케스트라와 끊임없이 그리고 친숙한 멜로디로 대화를 나누는데, 살짝 엉키는 듯합니다. 아주 투명하지가 않습니다. 무대 앞뒤 길이는 제법 두텁게 펼쳐지지만 양 스피커를 뚫고 옆으로 확 넓어지는 느낌은 아닙니다. 바쿤 앰프를 전에 하베스 30.1에 물렸을 때, 스털링SE를 유니슨리서치 심플리 투에 물렸을 때 느꼈던 사운드스테이징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팅과 공간의 문제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예전 진공관 12AX7A를 6발이나 쓴 맥킨토시 프리앰프 C2300에 출력 125W의 마크레빈슨 모노럴 파워앰프 No.434, 여기에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채용한 B&W 802다이아몬드 조합이 터트려준 환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음장감이 자꾸 떠오릅니다. 하긴 두 매칭 가격 차이를 감안하면 이는 터무니없는 욕심이지만요.

그건 그렇고, 이 음반을 들으면서 과한 욕심이 하나 생겼습니다. 두 곡을 녹음한 뉴욕 카네기홀(차이코프스키, 1958년 5월30일)과 시카고 오케스트라홀(라흐마니노프, 1962년 4월2일) 안으로 직접 들어가 연주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가. 더 욕심을 내면, 두 홀의 크기와 음향학적 차이까지도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런 마니아적인 취미성 말입니다. 카네기홀의 경우 홈페이지에 들어가 메인홀인 아이작스턴오디토리움의 엄청 높은 천장과 으리으리한 실내장식을 감상하면서 차이코프스키곡을 들어봅니다. 레코딩 순간이니 관객은 없고 무대에 반 클라이번과 오케스트라 단원들만이 앉아 숨죽여 연주하는 1958년 풍경을 상상해봅니다. 시카고 오케스트라홀은 객석이 가파르고 무대는 다소 밑에 위치해 있으니까 과연 제가 어느 위치, 어느 자리에 앉아 이들의 연주를 '내려다보며' 듣고 있는지 상상해봅니다.

라흐마니노프곡까지 듣고나니 차이가 느껴집니다. 제가 앉은 위치는 시카고홀이 카네기홀보다 훨씬 앞이었습니다. 카네기홀 연주는 약간 밑에서 들리고, 시카고홀 연주는 약간 위에서 그러니까 제가 연주자들을 올려다보며 듣는 느낌입니다. 연주공간의 앞뒤와 옆 길이는 시카코홀이 훨씬 긴 듯합니다. 성당이나 콘서트홀에서 녹음된 클래식 음악은 늘 이런 상상을 하면서 듣곤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오디오 성능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하는 미덕면에서 바쿤+스털링SE 조합은 아주 괜찮을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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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노이 스피커 스털링SE


마지막으로는 탄노이 스털링SE와 바쿤 콤팩트 프리,파워 앰프가 요즘 국내 댄서블 힙합곡은 어떻게 재생하는지 알고 싶어 아이돌그룹 B.A.P의 정규 1집 'First Sensibility'를 골랐습니다.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이나 여성보컬곡에서는 느끼기 힘든, 리듬감과 속도감, 활기, 반응속도, 임팩트 등을 체크해볼 수 있었습니다. 타이틀곡 '1004'에서 스털링SE의 숨겨진 면목이 단번에 보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돌 댄스곡은 팬들의 청취환경(mp3, 이어폰, 헤드폰)을 감안, 킥드럼 위주의 강한 저역을 시종 터뜨려주는데 이를 스털링SE가 똘망똘망하게 소화합니다. 프리앰프의 게인을 조금 더 열어도 고역이 시끄러워지지 않습니다. 마치 클럽에 온 것 같습니다. 탄노이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입니다. 물론 5.25인치 소형 북쉘프 동축유닛 스피커인 KEF LS50 같은 민첩함까지는 아닙니다. 또한 만약 출력이 더 강한 앰프에 물렸으면 저역의 박자가 좀더 업비트로 다가올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댄서블 멜로딕 힙합이라 할 5번째 트랙 'Check On'에서는 다시 흥겨운 리듬감을 선사합니다. 이 리듬과 속도감이라는 것, 그래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는 것, 이게 어쩌면 음악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 '쬐그만' 소출력 바쿤 앰프들이 '한덩치' 하는 탄노이 스털링SE를 드라이브하는 풍경 역시 오디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멋진 쾌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그림·사진=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청음협조=원형사운드(www.wh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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