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명의 오디오매칭]②KEF LS50+바쿤 프리,파워

김관명 기자 / 입력 : 2014.03.13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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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F LS50


얼마전 매지코 M6라는 '어마무시'한 스피커를 잠깐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300W짜리 모노블럭 파워앰프에 물린 상태였는데 그야말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자주 듣는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사계', 반 클라이번과 RCA심포니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리고 여성보컬곡 몇 곡을 들었습니다. '사계'의 무시무시한 저역,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광활한 공간감이 가관이었습니다.

청음공간은 20평 정도 됐었고 천정은 다소 낮았는데 이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스테이징이 스피커 양쪽은 물론 뒷벽까지 뚫어버렸습니다. 여성보컬 곡에서는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2, 3초 전 숨을 살짝 들이마시는 소리, 횡경막이 올라가는 움직임까지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녀가 약간 거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대목에서는 위압감을, 이 광폭에 가까운 음장감 앞에서는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졌습니다. 하긴, 한쪽 무게 300kg에 가격이 2억4000만원에 달하는 스피커이니 이 정도는 들려줘야죠.


이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명심했습니다. 앞으로 오디오를 하면서 '없는 것 달라고 보채지 않기'로요. '저역이 안나와' '구동력이 약해' '음장형은 역시 아니야' 등등 이리 불평, 저리 불만하면서 오디오 흠잡지 않기로요. 이 철딱서니야말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고생고생하시는 어머니한테 뭐 사달라고 떼쓴 바로 그 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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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②KEF LS50+바쿤 프리,파워 PRE7610mk3, SCA7511mk3-2


[김관명의 오디오매칭] 두번째 편은 영국 KEF사의 동축유닛 스피커 LS50과 일본 바쿤프로덕츠의 컴팩트 프리앰프 PRE7610mk3, 컴팩트 파워앰프 SCA7511mk3-2 조합입니다. 첫 편 조합에서 스피커만 탄노이 스털링SE에서 KEF LS50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앰프가 고정된 상태에서 스피커만 바꾸니 더욱 집중이 잘 됩니다. 음악 듣는 게 더 즐거워집니다. 아무래도 신경 쓰고 체크하고 꼼꼼히 따져야할 '변수'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겠죠. '앞단' 역시 똑같습니다. 다만 CD플레이어였던 크렐 KPS 28C가 빠지고, 맥북프로+네임 DAC-V1이 음원플레이어로서 독무대를 차지했습니다. 음원은 CD에서 무손실 aiff 파일로 리핑한 16비트 음원, 영국 린레코드나 네이버뮤직, 멜론 등에서 다운로드 받은 24비트 음원(flac파일을 aiff 혹은 alac 파일로 변환) 2종류로 한정했습니다.

바쿤 앰프의 예상치못했던 똘망똘망한 구동력과 투명한 음악신호 전달능력에 약간은 '고무'돼 물려본 스피커가 KEF LS50입니다. 지난해 미국 유명 오디오잡지인 스테레오파일이 '2013 올해의 오디오'로 선정한 바로 그 스피커입니다.

KEF사는 탄노이, B&W, 린, 하베스, 스펜더, 바이타복스, PMC, 에포스, 윌슨베네쉬, 쿼드 그리고 방송사 BBC와 함께 오늘의 '브리티쉬 사운드'(British Sound)를 있게 한 주역입니다. 특히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거느린 BBC 모니터 스피커 LS3/5A 개발역사의 중심축을 차지한 제작사로 유명합니다. KEF는 BBC 기술연구소 엔지니어였던 레이몬드 쿠크(1925~95)가 1961년 영국 켄트의 한 철강공장(Kent Engineering & Foundry)에 조그만 제작사를 차린 데서 출발했습니다. 회사이름도 여기서 나왔죠.

그리고 BBC는 1960년대초 LS시리즈의 원조라 할(여기서 LS는 Loudspeaker의 약자) 모니터용 2웨이 스피커 LS3/1(야외용), LS5/1(스튜디오용)을 개발했는데, KEF는 1964년 BBC로부터 이 LS5/1A(A는 수정버전) 독점생산업체로 지정됐습니다. KEF는 여세를 몰아 1966년 5인치 새 중저역 유닛 B110, 고역 트위터 T27을 개발, 이듬해 Cresta 모델부터 이 유닛들을 채용했습니다. BBC가 이들 B110, T27을 바탕으로 새 LS3 모델 LS3/5A의 라이센스 생산업체로 로저스 등을 지정한 게 1974년이니까 KEF가 무려 8년이나 앞서간 셈입니다. 어쨌든 훗날 스펜더, 하베스, 스털링 등이 생산한 LS3/5A 스피커는 1998년 단종될 때까지 전세계적으로 무려 10만 페어가 팔릴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KEF 역시 1975년 LS3/5A, 1994년 레퍼런스 LS3/5A를 생산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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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F LS50


그런데 이 LS3/5A를 애지중지한 것은 비단 오디오파일들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KEF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2012년 딱 하나의 기념모델을 출시했는데 그게 바로 LS50입니다. KEF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 LS50이 '전설적인' LS3/5A의 당당한 후계자임을 밝히고 있고, 뮤온(Muon. 2007년 출시), 블레이드(Blade. 2011년 출시)와 함께 자사 3대 플래그십 스피커로 이 LS50을 포함시켰습니다. 여느 제작사처럼 위풍당당한 플로어스탠딩 타입도 아닌, 상대적으로 '쬐그만' 북쉘프 스피커를 '역사적인' 50주년 모델로 내세운 것이죠. 속물적이긴 하지만, 가격으로 보면 20배 이상 비싼 블레이드와 동급 취급을 받고 있는 셈이죠.

LS50의 첫인상은 '이게 50주년 모델이야?'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소박'합니다. 높이는 30.2cm, 폭은 20cm, 안길이는 27.8cm에 불과합니다. 무게는 7.2kg으로 두 손으로 들면 약간 무겁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검은색 하이글로스 피아노 마감이라 지문도 잘 묻고(잘 닦이긴 합니다) 묻은 먼지도 잘 보입니다. 중저역을 담당하는 우퍼 유닛도 직경이 5.25인치에 불과하고(전에 탄노이 스털링SE는 10인치), 주파수응답은 79Hz~28kHz로 어디 대놓고 내세울 정도는 아닙니다. 감도도 8옴에 85dB로 고능률이 아닌데다 최저 임피던스는 3.2옴까지 떨어져 내구성이 약한 앰프를 섣불리 물렸다가는 질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무엇이 이 LS50을 KEF 50주년 모델로 내세우게 만들었고, 어떤 면이 스테레오파일이 '2013년 올해의 오디오'로 선정케 했을까요. 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와 매칭해 아래 음악을 집중적으로 들어봤습니다. KEF LS50도 궁금하지만, 덩치 큰 스털링SE(감도 91dB)를 살랑살랑 흔들어줬던 바쿤 앰프들이 감도 85dB짜리 소형 스피커는 어떻게 울릴지도 몹시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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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①박주원 'Captain'(2013)

②제니퍼 원스 'The Hunter'(1992. Private Music)

③페터 막 지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 '스코틀랜드 교향곡'(1960. 데카)

④줄리아노 카르미뇰라 '비발디 사계'(1994. Divox)

먼저 골라본 앨범은 집시기타리스트로 불리는 박주원의 정규 3집 'Captain'입니다. 지난해 12월에 나온 앨범인데 수록곡 10곡 모두 어디 빠질 곡이 없습니다. 박주원 팬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박주원은 축구선수 박지성의 골수팬이고 앨범 제목 'Captain'도 그의 애칭에서 따온 겁니다. 더블타이틀곡인 3번 트랙은 아예 박지성의 국가대표 시절 백넘버를 제목으로 한 '캡틴 NO.7', 4번 트랙은 FC바르셀로나의 주된 경기운영 스타일인 짧은 패스를 찬미한 '승리의 티키타카'입니다. 레코딩 엔지니어 유형석, 믹싱 엔지니어 이청무, 마스터링 엔지니어 남상욱 등 엔지니어들의 이름도 화려하고, 베이스 구본암, 퍼커션 조재범, 키보드 이효석, 트럼펫 유승철, 드럼 이정훈, 바이올린 콘, 피처링 정엽 신보라 등 참여 세션도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심지어 지난 2001년 프로그레시브 메탈밴드 시리우스 멤버였던 박주원의 일렉 기타 소리까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캡틴 NO.7'이 바쿤을 통해 KEL LS50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단박에 알아채버렸습니다. 아, 스피드구나.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파워앰프를 통해 증폭된 천변만변의 음악신호를 지체없이 처리해내는 능력, 이게 LS50의 제일 가는 마성이었던 겁니다. 제 경험상, 앰프와 스피커의 스피드감 혹은 민첩성은 기타 특히 속주기타 앨범을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예전 소출력 EL34 진공관앰프에서는 박주원이나 캐나다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제시 쿡 등의 음반은 아예 틀지를 않았습니다. 빠른 템포를 힘들게 따라가는 앰프의 몸짓이 몹시 속상했으니까요. 스털링SE 역시 이 스피드감에서는 조금 위태위태했는데 아무래도 10인치 우퍼에, 그것도 펄프재질이니 미세하게나마 콘의 중심과 주변 움직임의 시간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겠죠.

'승리의 티키타카'에서는 저절로 몸이 흥겹게 반응합니다. 앰프와 스피커가 기막히게 리듬을 타니 듣는 사람도 절로 들썩이네요. 참으로 소중한, 오디오의 위대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재생음의 즉각적인 응답성과 민첩성은 돌덩이처럼 단단한 인클로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일등공신은 LS50의 핵심이라 할 '유니 큐'(Uni-Q)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KEF도 탄노이처럼 중저역 유닛 한가운데에 고역을 담당하는 트위터를 집어넣은 동축유닛으로 유명한 제작사인데, KEF는 자사 개발 동축유닛을 '유니 큐'라고 부릅니다. KEF에 따르면 유니 큐는 1988년 개발됐고 이를 처음 채택한 모델이 1989년 나온 레퍼런스 모델 105/3이었습니다. 2011년 플래그십 모델로 발표한 블레이드와 LS50에도 이 유니 큐가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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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F LS50


아무래도 동축유닛의 태생적 장점인 점음원 재생능력에 비교적 작은 우퍼 크기(5.25인치),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우퍼)과 벤티드 알루미늄(트위터)이라는 재질의 우수한 응답성에 '스피드'의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펄프콘 특유의 착색(따뜻하고 포근하고 인간적이라는 미덕이 있긴 하지만) 없이 알루미늄 우퍼와 트위터가 일절의 보탬없이 깔끔하고 명료하고 깨끗하게 재생음을 던져주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제가 받아들인 점음원의 매력은 맛있는 햄을 얇게 슬라이스해서 접시에 내놓는 그런 모양입니다. 이에 비해 트위터와 우퍼가 떨어져있는 다른 스피커들은 맛있는 만두를 잘 빚어 걸쭉한 육수에 담은 그런 느낌입니다.

다음 앨범은 '바쿤+탄노이 스털링SE' 매칭에서도 감상했던 제니퍼 원스의 'The Hunter'입니다. 과연 여성보컬과 이 앨범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묵직한 저역의 사운드를 이번 '바쿤+KEF LS50'이 어떻게 표현해줄까요.

첫곡 'Rock You Gently'를 부르는 제니퍼 원스의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목소리는 촉촉하고 약간의 고음 부분에선 그녀가 양 손을 얼굴쪽으로 올리는 모습까지 연상이 됩니다. 출발이 좋습니다. 'Somewhere, Somebody'에서는 제니퍼 원스 뿐만 아니라 피처링한 남성보컬 맥스 칼, 색소폰, 일렉기타, 트라이앵글 등 보컬과 악기의 개별 사운드가 제 자리를 확실히 틀어잡은 상태에서 또렷이 들립니다. 이러한 느낌은 9번트랙 'The Hunter', 마지막 트랙 'I Can't Hide'까지 계속됩니다. 해상도, 디테일, 포커스, 투명도 등이 어느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겠죠. 바쿤 프리앰프가 음원소스에 담긴 여러 음들을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이를 KEF LS50이 가지런히 그릇에 담아 그것도 지체없이 내놓는 느낌입니다.

'True Emotion'과 'Pretending To Care', 'The Whole Of The Moon'에서는 지금까지 잘 알아챌 수 없었던 KEF LS50의 숨은 덕목이 드러납니다. 바로 사이좋게 자리잡은 고역, 중역, 저역간 밸런스입니다. 제니퍼 원스와 색소폰, 트럼펫, 키보드의 고역은 따뜻하고 꽉 찬 느낌이며, 피아노가 주도하는 중역대는 이 악기의 텍스처(texture)가 잘 살아있어 식욕이 당길 정도로 아주 달콤하게 들립니다. 드럼 사운드는 자칫 도드라지거나 과장되기 쉬운데 이 역시 적절한 선에서 중고역을 잘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역 재생능력이 안돼 은근슬쩍 포기한 게 아니라 '훗날'(?)을 대비해, 아니면 전체 음조의 조화를 위해 자제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왜 다 아시지 않습니까. 베이스가 경망스럽게 나댈 때 느껴지는 그 천박함 말입니다. 역시 저역은 양보다 질인 것 같습니다.

바쿤 파워앰프의 한방과 KEF LS50 유닛의 히든 카드는 역시 'Way Down Deep'에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하자마자 들리는 묵직한 베이스 드럼 사운드에 처음 놀랐고, 이 곡에서만 들리는 특유의 방울뱀 꼬리 떠는 소리에 두번 놀랐습니다. '없는 것 내놓으라고 떼쓰지 않기'로 작정한 탓일까요. 15W 출력과 5.25인치 우퍼 조합에서 들리는 저역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샴페인골드 색깔의 유니 큐 우퍼가 성큼성큼 활달하게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은 또다른 쾌감까지 던져줍니다. 이번 조합에서 처음으로 양 스피커를 뚫고 무대가 확 확장되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욕심을 내서 바쿤 프리앰프의 게인을 기존 '5'(12시방향)에서 '7'(2시방향)로 올리니 실제 드럼이 무대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게인노브를 이렇게 올려도 어디 음 하나 뭉개지지 않는 모습 또한 대견합니다. 바쿤의 황갈색 베이클라이트 노브와 KEF LS50의 샴페인골드 유니 큐가 서로 눈웃음 치며 수신호를 나누는 환영, 이건 너무 과장이겠지요?

그렇다고 이들 조합이 저역 재생에 관한 한 무슨 전가의 보도쯤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샤를 뮌쉬가 지휘하고 보스톤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생상스의 '오르간 교향곡'(1959, RCA) 2악장에서 들리는 오르간의 저역은 딱 고만고만한 수준입니다. 주체할 수 없이 풍윤하거나 오르간의 배음이 청음공간을 확 채우는 그런 수준? 절대 아닙니다. '없는 것 내놓으라고 떼쓰지 않기', 이게 참 오디오를 즐기는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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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프리앰프 PRE7610mk3, 파워앰프 SCA7511mk3-2


페터 막 지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 연주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이번 매칭을 위해 작정하고 신중히 고르고 골라 선택한 음반입니다. 그 유명한 '데카 사운드'를,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런던 킹스웨이홀의 공간감을, 수많은 오케스트라 악기들의 개별 텍스처를 과연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요. 참고로 이 음반은 1960년 4월21,22일 킹스웨이홀에서 녹음됐으며, 아르헨타-LSO의 '에스파냐'(1958), 몽퇴-LSO의 '다프니스와 클로에'(1966), 케르테츠-LSO의 '바르톡 피아노협주곡 3번'(1966), 정경화-로얄필하모닉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1972) 등 레이블 데카의 역사적 명연과 명녹음이 이뤄진 킹스웨이홀은 1998년 사라지고 2000년 그 자리에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1악장이 시작되자 쫑긋했던 귀, 메모하려고 했던 손이 무안해지고 뻘쭘해집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스코틀랜드 교향곡' 1악장 특유의 선율미가 이상하게 한민족 고유의 한의 정서를 건드린다는 느낌이 이번에 더욱 도드라집니다. 13분20초짜리 교향곡 1악장을 들으며 고개와 어깨를 조금씩 흔들어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바쿤과 KEF LS50이 빚어내는 사운드스테이징 역시 흠잡을 데 없이 뭉개뭉개 부풀어 오릅니다. 마지막 격렬한 코다에서는 5.25인치 동심원 안에서 어떻게 그 수많은 악기들이 질서정연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뿜어내는지, 그러면서 전체적인 임팩트를 이리 모질게 남길 수 있는지 기특할 따름입니다. 물론 전에 들었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반 클라이번-RCA심포니오케스트라)의 RCA 시카고홀 녹음보다 이번 데카 킹스웨이홀 녹음 수준이 월등한 이유도 크겠지만요. 음장감, 심도, 공간감 모두 만족스럽습니다.

짧고 소박한 2악장, 우아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의 아다지오 3악장을 지나 4악장입니다. 서로 어깨가 닿을 듯 밀착한 상태에서 분주히 녹음에 임하고 있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침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이크와 어지러운 전선줄 사이로 이를 지켜보고 있을 데카의 명 엔지니어 케네스 E. 윌킨슨의 모습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이 순간이 54년 후에도 전세계 곳곳의 수많은 '데카마니아들'을 흥분케 할 그런 순간임을 알고 있을까요. 어쨌든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Allegro vivacissimo(아주 빠르게)와 Allegro maestoso assai(빠르고 매우 장중하게) 그 느낌 그대로 진행되다 장대한 코다를 거쳐 피날레를 맞이합니다. 다이내믹 레인지와 순간적 임팩트,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현대적 외모의 영국산 KEF LS50이 이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왕년의 스코틀랜드는 좀 알지.." 이 곡 후유증이 며칠 갈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카르미뇰라의 '사계'입니다. 딱히 계절 가리고 듣는 것은 아니지만 살랑살랑 훈풍 불어오는 요즘 듣기에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봄 1악장의 우루룽 거리는 저역 현의 울림이 제법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유쾌한 마르카 합주단이 뿜어내는 원전악기들의 음색이 생생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비올로네(콘트라베이스의 전신), 클라비쳄발로(하프시코드의 일종), 아첼루토(만돌린 비슷하게 생긴 악기) 등등. 제가 감히 구분할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카르미뇰라가 사용한 1773년산 피에트로 과르네리 바이올린의 모습도 보입니다(유튜브에 여름 1악장 동영상이 있긴 합니다만..). 세상사, 가는 겨울 그 누가 잡을 수 있을까요. 겨울 1,2,3악장의 스산한 풍경이 애처로우면서도 정감이 가기만 합니다. 이 느낌, 이게 바로 오디오가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덕목, 음악성(musicality) 아닐까요.

내친 김에 지난 겨울 대한민국 곳곳에 울려퍼졌던 'Let It Go'와 벌써 음원차트 상위권에 포진한 '벚꽃엔딩'을 연이어 들어봅니다. 버림받은 엘사가 설산에 올라가 후련하게 성을 지으면서 부르는 장면이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이디나 멘젤이 대놓고 내지르는 고음 하이라이트 대목에서 돋는 이 소름, 어쩝니까. 어느새 익숙해진 멜로디와 장범준의 목소리를 통해 새록새록 쌓여가는 3년 전 봄날 어스름 저녁에 대한 이 그리움은 또 어쩔 건가요. 바쿤의 개방성과 유연함, 속을 알 수없는 구동력, 그리고 KEF LS50의 민첩함과 명민함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즐거워야 오디오인 것이지요.

글·사진=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

청음협조=원형사운드(www.whsound.com)

[김관명의 오디오매칭]

①바쿤 컴팩트프리,파워+탄노이 스털링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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