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인디]이루리프로젝트, 봄날의 힐링은 이런것

이루리프로젝트 '노래를 불러줄게요' 앨범재킷

이젠 그 지독한 편견 혹은 쓸데없는 관용은 버려도 될 것 같다. 인디 앨범의 사운드는 설사 조악하더라도 참을 만하다는(혹은 참아야 한다는). 신선한 노랫말과 실험적 사운드, 개성강한 작곡과 편곡이 당위적으로 우선시돼야 한다는 그런. 그래서 오디오적 쾌감이나 음악 듣는 즐거움마저 조금은 휘발된 그런. 이젠 다시 즐거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이 앨범을 들으면.

③이루리프로젝트 EP '노래를 불러 줄게요'


이루리프로젝트는 이루리(피아노), 김정민(베이스), 허세과(기타), 표경화(드럼) 등 4명으로 구성된 혼성 어쿠스틱 밴드. 지난 2010년 결성, 2012년 정규1집 '내 마음속에 노란빛이 들어오면'으로 데뷔했다. 이번 '노래를 불러줄게요'는 지난 13일 나온 따끈따끈한 신곡 6곡이 담긴 미니앨범이다.

동명타이틀곡 '노래를 불러 줄게요'부터. 맑고 투명하게 뛰쳐나오는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드럼 사운드가 일순간에 귀를 잡아맨다. 연주실력과 녹음 엔지니어링에서 상당한 공력이 느껴진다. 세상에, 어떻게 단 5초만에 이리 귀와 가슴이 쫑긋거리는 일이 가능할까. 곧바로 살짝 치고 들어오는 이루리의 보컬은 소위 '홍대 여신들'의 전형적 이미지보다 더 깨끗하다. 고음에서 들리는 치찰음마저 달콤하다. 피아노와 기타가 주도하는 리듬감과 베이스기타가 받쳐주는 박자감이 지극히 쾌락적이다.

하지만 더 큰 쾌락은 노랫말에서 터져나온다. '..노래를 불러줄게요 당신을 위해 만든 노래를/ 맘에 들지 사실은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느끼는 외로움이라도 오늘밤 당신만은 피해갈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줄게요 당신을 향한 나의 노래를..' 속삭이듯 진심이 느껴지는 이 가사에 누구처럼 미친성대를 자랑하지 않는 이루리의 보컬이 섞이니 힐링도 이런 힐링이 없다. '당신'이 바로 나인 듯한 그런 착각 혹은 설렘. 이제 막 봄꽃이 피려는 요즘, 이 노래를 듣는 '당신'은 행운아다.


해서, '당신'이 이 앨범의 타이틀곡(3번트랙)부터 듣는 편법을 썼다면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행운아의 올바른 자세다. 앨범은 창작자들이 수백, 수천번 고심끝에 결정했을 트랙 순으로 듣는 게 도리이고 자연스럽다. 어쨌든, 드럼의 풍윤하고 호방한 사운드로 문을 연 첫곡 '오빠'는 20대 바로 그 나이들에 걸맞은 감수성과 공감가사가 돋보인다. '..오빠는 더위 때문에 여름을 힘들어 했는데/ 이젠 혼자 여름의 비를 피하고 나 혼자 버스를 기다려/ 오빠 땜에 마시던 커피를 이제 내가 더 좋아해..'

여름 햇살, 소나기, 흙먼지, 그늘, 캔커피 등과 함께 했지만, 어느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그 예민했던 20대 시절. '오빠'라는 노래에는 결국 그 공감의 폭을 30대, 40대, 50대로 넓히는 묘한 매력이 있다. 조금은 자제한 듯한 일렉 기타와 짧게짧게 내뱉는 이루리의 보컬이 빚어내는 조화와 화음도 재미있다.

2번트랙 '집에 오는 길'은 '오빠'에서 두고두고 아쉬었던 여성보컬로서 이루리만의 존재감이 그 기력을 회복한 곡(이에 대한 더욱 호쾌한 증거는 4번트랙 '별것도 아닌데'와 5번트랙 '그럴 날이 있지'다). 특히 '..오늘 정말 날씨 좋은데'라는 대목에서 술술 힘 안들이고 올라가는 고역대는 이루리가 일부러 숨긴 발톱 같기만 하다. 남녀보컬과 각 악기의 사운드가 서로간의 밸런스를 잘 맞춘 것도 이 트랙의 빛나는 장점. 맞다. '힐링'이란 결국, 한 파트가 제 목소리만 높여서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 극상품인 것이다.

이어 듣는 타이틀곡은 아까와는 결이 확실히 다르다. 제자리를 확실히 찾았다. 이루리의 보컬에는 더욱 윤기와 물기가 스며들었고, 드럼의 하이햇 사운드에는 더욱 영롱함이 깃들었다. 피아노 타건음도 훨씬 사뿐하고 뽀송뽀송해졌다. '노래를 불러 줄게요'는 이들이 작정하고 만든, 이 봄의 힐링송임이 분명하다. 그것도 눈부신 봄 볕 아래 슬슬 따뜻해지려는 풀밭에서 누워 듣는 그런.

김관명 기자 minji2002@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