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은 /사진=김창현 기자 |
"(점) 봐 드릴까요? 하하하."
"보살 연기가 인상 깊었다"고 하자 배우 이정은(45)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이 말부터 했다.
이정은은 흔히 말하는 '신스틸러'다. 그녀는 최근 종영한 tvN '오 나의 귀신님'(이하 오나귀)에서 '서빙고 보살' 역을 맡아 코믹 연기로 드라마의 인기에 한몫했다. 진짜 '보살' 마냥 자연스러운 이정은의 연기에, 그 '과거'가 의심스러울 정도. 아직은 시청자에게 낯선 이정은 탐구시간.
이정은은 인기 얘기에 "드라마에 업혀갔을 뿐"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저야 뭐, 드라마에 업혀간 거죠(웃음). 얼마 전에 편찮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간호사 분이 절 보고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 '보살'님? 뭐 이렇게 알아보시더라고요. 몰랐는데, '오나귀'를 보시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한 번은 마트에 갔는데, 제가 시식하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만두를 시식하고 있었는데 여사님이 그 '보살'? 하시며 반가워 하시 길래 만두를 두 봉지나 샀어요. 시식하고 그냥 가기 뭐해서요. 호호."
극중 '서빙고 보살'은 '생활형 점쟁이'다. 돈도 없고 신(神)과의 통신도 가끔씩 끊기는, 어딘가 모르게 불쌍한 캐릭터다.
"드라마 들어가기 전 감독님(유제원PD)이 많이 준비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점 보는 연습 좀 해야겠구나 했더니 달리기를 준비하래요. 또 그래서 아 체력 관리하라고 하나보다 했죠. 그랬더니 한 여름에 정말 많이 달리게 했어요(웃음).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액션 연기 도전해보려고요. '닌자 거북이' 비슷한 '닌자 할아버지' 같은 거 나오면 출연해보고 싶어요. 하하."
이정은은 21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대학(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시절 연극 '한 여름 밤의 꿈'에 요정 '퍽'으로 출연한 게 연기의 시작점이다. 그녀는 "요정으로 데뷔했는데, 요정 치고는 덩치가 컸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후에 좀 일이 안 풀려 3년 정도 연출부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고(故) 박광정 선배님의 '저 별이 위험하다'에 출연했는데 그게 이슈가 되면서 연기 생활이 풀리기 시작했죠."
하지만 '배우 이정은'을 알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개성 있는 조연 연기자가 많지만 당시에는 안 그랬어요. 딱 배우 같은 모습을 가진 친구들만이 연기자로서 활동했죠. 저 같은 경우에도 '넌 상업영화는 안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아예 다른 쪽으로는 생각하지도 않고 비상업 영화에 집중했어요. '난 공연이 맞아'하면서 연기 생활을 계속 해왔는데 좀 부러운 게 있었나 봐요.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있었는데 설경구, 안내상 같은 분들이 방송 쪽으로 나가던 시기였거든요. 자극이 많이 됐어요. 그러고도 꿈만 꿨는데 어느새 본색이 나온 거죠. 저, 이런 것 하고 싶습니다. 하고 영화와 드라마 쪽을 노크하기 시작했죠."
이정은은 이후 '와니와 준하', '변호인', '전국노래자랑' 등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 폭을 넓혔다. 중·단편 영화도 30편 이상 출연했다. 그러다 tvN '고교처세왕'에 출연하며 유제원PD-양희승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됐다.
"'오 나의 귀신님'도 '고교처세왕' 때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어요. '고교처세왕' 때는 이하나씨 엄마로 출연했죠. 장면, 장면이 참 좋았어요. 정말 정제된 장면만 하는데, 작업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어요. 끝나고 '아, 다음에도 만났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올 초에 연락이 온 거예요. 저와 하고 싶다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저한테 제일 먼저 캐스팅 연락을 했대요. 하하하. 아, 나를 염두에 두셨구나,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정은은 '서빙고 보살'을 제의 받았을 때 설렜다고 했다.
"말은 멋있었어요. '사랑과 영혼'에 나오는 우피 골드버그 같은 역할이래요. '정은 선배에게는 그런 게 있다'고 하는 데 부담이 좀 되기는 했는데 내가 우피 골드버그라니, 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죠. 호호. 근데 분량이 많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전 솔직히 많이 나올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제작진은 '서빙고 보살' 캐릭터가 어떻게 하면 사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예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장면에만 등장했던 거죠. 저는 무조건 많이 나오면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드라마에서 중요한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하는 게 효과적이었던 거죠."
이정은은 "제작진의 깊은 뜻을 알고 나니 전 즐겁게만 찍으면 되겠더라"며 "캐릭터에 대해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제일 처음 신이 달리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머리를 내려놓은 계기가 됐다"고 했다.
"달리다 보니 생각이 없어지는 거예요. 저걸(신순애, 김슬기 분) 잡아야 한다는 생각 밖에 안 났어요. 쟤를 잡아야 한다. 이거요. 쟤 때문에 내가 빈곤하고 신(神) 발도 안 산다, 뭐 이런 생각이 드니까 캐릭터가 명확해지는 거예요. 초반 노동에 감사하죠."
그녀가 잡으려고 했던 김슬기는 '오나귀'에서 가장 많이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다. '오나귀'에서 둘의 관계는 '톰과 제리' 같았다.
"김슬기씨는 워낙 즉흥성이 좋아요. 준비를 정말 많이 해 와요. 함께 연기하면서 '케미 산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제 꿈이 아이돌과 어울려 연기하는 건데, 공연을 하다 영상 쪽에 오면서 흡수가 빠른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젊은 사람들의 신선한 감각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신선한 감각이 여기에 있었던 거죠. 김슬기씨요. 제가 육체적으로 힘들게 해도 거뜬하더라고요. 한번은 제가 머리를 심하게 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NG없이 갔어요. 그만큼 김슬기씨가 강한 거죠."
김슬기는 앞서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정은을 "정은 언니'라 불렀다. 김슬기는 1991년생으로 이정은과 21살 나이차가 난다.
"김슬기씨, 아니 슬기가 처음에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그냥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죠. 연극 쪽에서는 주로 제 나이 때 불리는 게 선생님, 선배님이거든요. 전 작업 할 때는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유롭게 연기를 펼치려면 호칭을 강요하지 않아야 된다고 봐요. 그런데 슬기가 언니라고 하는 걸 보고 21살 스태프가 제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언니~! 하더라고요. 언니는 괜찮은데 어깨에 손 올리는 건 좀 아니잖아요(웃음). 그래서 그 스태프에게 '넌 언니라고 하지 말라'고 했죠. 하하하."
배우 이정은 /사진=김창현 기자 |
'오나귀'에서 김슬기 만큼이나 이정은과 연기호흡을 맞춘 게 신은경이다. 신은경과 이정은은 극이 흐를수록 찰떡처럼 붙어 다녔다. 신은경은 '오나귀'에서 조정석의 엄마 역할로 출연했다.
"정말 재밌었어요. 만만치 않아요. 같이 냉면 먹는 장면에서 제가 냉면을 들이키면 은경이는 냉면을 뱉어내요. 빵 터졌죠. 은경이가 그러더라고요. 이 역할을 맡으면서 자기는 즐길 수 있게 됐다고요. 이번 연기를 하면서 마음이 참 편했대요. 제가 드라마 촬영 초반에 어머니가 편찮으셨거든요. 저 잘되라고 불공드리러 가셨다가 낙상하셔서 다치셨어요. 마음이 불안하니까 연기가 흔들렸는데 신은경씨가 저를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이정은은 모친의 낙상으로 초반에 힘들었지만 제작진이 '서빙고 보살' 캐릭터를 잘 살려주면서 마음의 위안을 크게 얻었다고 했다.
"'서빙고 보살' 연기 정말 재미있었어요. 대본에 보면 '서빙고 보살 주문을 외운다' 이런 식으로 돼 있었거든요. 그러면 저 혼자 '님령신 님령신' 막이래요. 신령님 거꾸로 한 거죠. 하하. 근데 제작진이 좋대요. 나중에는 작가님이 아예 대본에 주문을 적어 보내더라고요. '사발타 아발타'도 있었고, 악령 잡을 때 '아미타불' 이런 것도 나왔어요. 내가 '서유기'를 찍나,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이상하지 않대요. 좋대요. 그러니 저도 즐겁게 연기했죠. 하하하."
(인터뷰②)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