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코리언 빅보이' 이대호 빅홈런의 여파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 입력 : 2016.04.15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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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로 나서 끝내기 투런포를 때려낸 이대호. /AFPBBNews=뉴스1


2014년 4월23일(현지시간)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

시애틀 매리너스는 또 한 번의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해 시즌 개막 3연전에서 LA 에인절스를 적지에서 싹쓸이하며 산뜻하게 출발했지만 4월15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8연패를 당하면서 순위가 바닥으로 수직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성적은 8승13패. 아직 초반이었지만 이대로 간다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시즌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깃들고 있었다.


하지만 시애틀은 23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경기에서 9연패 위기에 몰렸다가 한 선수의 ‘영웅적인 활약’에 편승, 기사회생하며 연패행진을 끊었다. 그 영웅은 3루수 카일 시거였다. 시거는 시애틀이 휴스턴에 7회초까지 0-3으로 끌려가 패색이 짙었던 상황에서 7회말 투런홈런을 터뜨려 추격의 희망을 살려낸데 이어 9회말 끝내기 스리런홈런을 뿜어 기적같은 역전승으로 팀을 연패의 늪에서 건져냈다. 풀타임 빅리거 3년차였던 시거의 생애 첫 빅리그 끝내기 홈런이었다.

그리고 그 승리로 시애틀은 마침내 시즌의 돌파구를 찾는데 성공했다. 이날부터 다음 12게임에서 10승2패를 기록하며 시즌의 방향을 180도 돌리는데 성공한 시애틀은 이후 시즌 마지막 날까지 플레이오프 도전을 이어갔고 시즌 87승(75패)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으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1게임차로 뒤지며 플레이오프 진출엔 실패했다.

한편 이날 홈런 두 방으로 5타점을 올리며 팀을 수렁에서 건져낸 시거는 그 여세를 몰아 시즌 내내 맹타를 이어간 끝에 생애 첫 올스타로 뽑혔고 그해 시즌을 타율 0.268, 25홈런, 96타점으로 마친 뒤 오프시즌 시애틀과 7년간 1억달러라는 빅딜을 얻는데 성공했다. 시즌 162경기 중에 하나인 경기에 불과했지만 한 경기가 팀과 선수에게 모두 얼마나 큰 엄청난 전환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14일(한국시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2-2 동점이던 연장 10회말 이대호가 대타로 나서 극적인 끝내기 투런홈런을 터뜨려 시애틀을 5연패의 늪에서 건져내자 많은 시애틀 팬들은 이 홈런이 2년 전 시거의 극적인 끝내기포를 연상시킨다면서 이 한 방으로 시애틀의 시즌이 또 한 번의 일대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는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홈런의 나온 시점과 상황이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대호의 홈런이 나온 시점이 시거 때보다 열흘정도 빠르긴 하지만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시애틀은 올해 홈 개막전부터 시작, 5연패의 늪에 빠져있었고 이날 패했더라면 홈구장에서 치른 첫 6경기를 전패하는 굴욕의 스타트를 끊을 뻔 했다. 시애틀 입장에선 생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더구나 다가올 시애틀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이번 이대호 끝내기 홈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애틀은 이번 주말 뉴욕 양키스와 원정 3연전을 시작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LA 에인절스를 방문하는 열흘간의 원정여행을 나선다. 미국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북서쪽 구석인 시애틀에서 출발, 미 대륙을 가로질러 뉴욕까지 날아갔다가 클리블랜드를 거쳐 남서쪽 끝인 LA(오렌지카운티)로 다시 미 대륙을 가로지른 뒤 다시 북서쪽 끝인 시애틀로 날아오는 강행군이다. 총 이동거리가 7,000마일(1만1,000km)이 넘고 시차도 3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도시들을 단 열흘 동안에 도는 원정여행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실제로 체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런 강행군을 떠나는데 설상가상으로 홈에서 벌어진 시즌 첫 6게임을 전패했더라면 뉴욕행 비행기 안의 무드가 ‘초상집’ 같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가뜩이나 육체적으로 힘들기 그지없는 여행에 정신적으로도 무거운 마음으로 나선다면 경기 자체도 잘 풀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극적인 홈런포 한 방 때문에 시애틀은 뉴욕까지 날아가는 6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이 한결 즐겁게 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대호가 홈런을 치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순간 한쪽에서 “Happy flight!, happy flight”라고 신나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대호의 홈런 덕에 선수단 전체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

과연 이대호의 이 한 방이 시애틀 팬들의 바람대로 2년전 시거의 홈런처럼 시즌 전체의 방향을 트는 일대 전환점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대호 개인적으로는 남은 시즌동안 한결 수월하게 자기 야구를 할 수 있는 확실한 교두보를 구축한 것이 분명하다.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어쩌면 시즌 최대 고비였다고 할 수 있었던 경기에서 그것도 가장 극적인 순간에 대타로 나서 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 방을 날려준 효과는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장 이대호가 시애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가 됐다는 기사가 나왔을 정도가 됐다.

더구나 시속 97마일(157km)의 높은 강속구를 통타해 담장을 넘긴 것은 과연 그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볼에 적응할 수 있느냐를 가장 의심했던 시애틀 코칭스태프의 우려까지도 한꺼번에 날려버린 것이었다. 현재 주전 1루수인 애덤 린드의 부진(21타수 2안타, 타율 0.095)과 맞물려 앞으로 이대호는 이전에 비해 훨씬 중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1루수 주전경쟁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애틀이 린드를 얻기 위해 유망주를 3명이나 내준 투자를 생각한다면 너무 성급한 기대는 어렵지만 이대호가 팀내에서 확실한 입지를 굳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이대호의 올해 연봉은 물론 다음 계약과도 직결된 가능성이 높다. 1년 계약을 한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포함되는 것으로 기본연봉 100만달러를 보장받았고 퍼포먼스 보너스에 따라 최고 400만달러까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메이저리그 추세는 타자의 경우 퍼포먼스 보너스가 타석수로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니 경기에 나서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의 수입은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또 올해 활약 여부에 따라 내년엔 이보다 훨씬 더 좋은 계약을 얻을 가능성도 커졌다. 마이너리그 초청선수로 캠프에 참가해 메이저리그 로스터 포함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것이 불과 2주전 이야기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시애틀은 워싱턴 내셔널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아직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적이 없는 단 2개 구단 중 한 팀이다. 지난 2001년 시즌엔 무려 116승을 올려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우고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 막혀 월드시리즈엔 오르지 못했다. 그만큼 팬들의 한이 많이 쌓인 구단이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 반대쪽에서 홀연히 날아온 ‘코리안 빅보이’가 이런 팬들의 아쉬움을 후련하게 풀어주며 메이저리그의 큰 꿈을 펼쳐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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