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 결산] '여전히 뚜벅뚜벅' 양상문의 LG, 박수가 필요하다

한동훈 기자 / 입력 : 2016.07.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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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양상문 감독.





7월 13일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팀 간 9차전이 열린 잠실구장. 홈 팀 LG가 역전을 허용한 8회초, 외야 관중석에 양상문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펼쳐졌다. 한화 팬들일 리 만무했다. LG 팬인 이들은 LG가 지기만을 기다렸던 것일까.


LG는 34승 1무 45패, 8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10위 kt와 2경기 차지만 5위인 롯데와의 승차도 3.5경기에 불과하다. 3~5위 권을 유지했던 시즌 초반보다는 페이스가 떨어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잘 버티고 있다. 더구나 LG는 올 시즌, 장기적인 강팀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리빌딩을 천명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을 전폭적으로 기용하면서도 끈질기게 5강권을 노크 중이다.

시즌을 앞두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LG를 최하위권으로 분류했다. 주축 야수들의 노쇠화, 마무리투수 공백, 지지부진했던 외국인투수 영입 등 전력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믿을 건 작은 가능성을 보여준 유망주들의 성장뿐이다. 실제로 작년과 올해 개막전 라인업을 비교해보면 박용택, 정성훈, 이병규(7)를 제외한 6명의 얼굴이 바뀌었다. 우규민, 류제국, 소사 등 선발투수 3명으로 시즌을 시작했고 필승조도 셋업맨 신승현과 마무리 임정우를 중심으로 완전히 물갈이됐다.

▲리빌딩이냐? 성적이냐? 모범답안 찾아가는 양상문 감독


자원이 풍부한 메이저리그는 성적을 포기한 채 수년간 리빌딩에 치중하기도 한다. 2005년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11년부터 3년 연속 꼴찌를 감내하며 체질개선에 나섰다. 신인 발굴에 올인했고 2012년에는 팀 내 연봉 1위부터 5위 선수를 모두 팔았다. 2년 만에 연봉총액이 2500만 달러로 3분의 1토막 났다. 그동안 유망주 랭킹은 2011년 26위에서 2012년 18위, 2013년 9위로 상승했다. 결국 2014년 디비전 꼴찌에서 탈출했고 2015년에는 10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올 시즌 역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2위로 순항 중이다.

하지만 KBO리그에서는 리빌딩을 한답시고 3년 연속 꼴찌를 했다간 감독 목이 날아간다. 육성은 육성대로 하면서 성적도 내야 한다. 어차피 선수 풀이 부족해 메이저리그 같은 양자택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축 선수들은 유지하면서 1~2개 포지션에 유망주를 기용해 전력보존과 승리, 그리고 육성을 동시에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못해도 팀이 이기는 상황 속에서 기회를 꾸준히 받는 게 팀과 개인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인 것이다.

LG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애초에 강한 라인업도 아닌 데다가 비슷한 포지션에 비슷한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전력을 보존하면서 1~2명을 전략적으로 육성시킬 여건이 되지 않았다. 외야에는 채은성, 이천웅, 문선재, 안익훈, 이형종, 내야에는 양석환, 강승호, 정주현, 서상우 등 유망주가 넘쳤다. 박용택, 정성훈을 제외하면 기존 야수들이 이들을 제쳐놓고 쓸 만큼 기량이 압도적이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누군가를 '박고 키울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 와중에 양상문 감독은 이들을 모두 살리면서 승리도 놓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아가고 있다. 이겨도 이들을 데리고 이기고 져도 이들을 데리고 지겠다는 의지다. 잠깐 써보고 안 되면 기존의 얼굴을 복귀시키는 게 아니라 페이스가 떨어질 즈음 휴식, 그 시기에 컨디션이 올라온 다른 유망주를 기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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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천웅, 채은성, 정주현. /사진=LG트윈스 제공





시즌 초반 타격감이 좋았던 이천웅과 정주현이 꾸준히 출전했고 슬럼프가 오자 채은성, 손주인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천웅, 정주현은 2군에서 감을 회복한 뒤 돌아왔다. 손주인이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하며 2루에 자리가 없어지자 정주현에게는 지명타자 자리를 만들어주면서까지 출전기회를 보장했다. 이천웅은 대타로 경기 감각을 서서히 조율한 뒤 최근에는 채은성과 동시에 나온다. 이천웅의 최근 10경기 타율은 0.429다.

일부에서는 이런 선수 기용을 리빌딩도, 성적도 아닌 원칙 없는 운용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은 리빌딩이라는 큰 틀 안에서 승리까지 할 수 있는 최적의 라인업을 고민하고 있다. 철저한 원칙 아래 가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육성과 성적을 동시에 잡겠다는 노력의 흔적이다.

다시 말해, 올 시즌의 LG에게는 리빌딩이냐 성적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물음 자체가 틀렸다. '이기는 리빌딩'밖에 할 수 없는 리그의 현실 속에서 악전고투 중인 것이다.

부진 속에서도 꾸준히 나오면 '양아들'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외하면 '저러니 크질 못한다'고 손가락질 한다. 포인트는 육성 대상 선수들 중에서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는 점에 있다. 9번 이병규가 2군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채은성과 정주현, 이천웅은 이런 제한된 기회 속에서 능력을 증명하며 자리를 만들었고 양 감독의 운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LG의 간판스타 박용택은 "프로는 기회 타령을 하면 안 된다. 주어진 기회 안에서 실력을 발휘해 인정받아야 프로다"라는 뼈 있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기회는 감독이 주지만 결국에는 선수가 낚아채야 한다. 양 감독은 2014년 5월, 취임식 때 말했듯이 리빌딩과 성적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눈앞의 결과에 실망해 비판하기 보다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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