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민이 직접 골랐습니다..나를 만든 작품들 No.5②

[心스틸러]박철민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6.08.15 10:35 / 조회 : 2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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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철민 / 사진=홍봉진 기자


100편이 훌쩍 넘는 박철민의 출연작 중에서 엄선한 5편. 왠지 더 마음이 가고 왠지 더 사랑스러운 작품들을 박철민과 함께 꼽았다.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도 눈길을 덜 받았던 작품도 있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

'목포는 항구다'는 몰라도 "쉭쉭 이것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는 안다. '복포는 항구다' 주인공이 차인표 조재현이 주인공인 건 몰라도 박철민이 연기했던 가오리의 능청스러운 섀도우 복싱은 안다. 한국 조폭 코미디의 전성기가 끝물을 탈 무렵 개봉한 '목포는 항구다'(2004)는 당시 한국영화의 흥행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쓴 '태극기 휘날리며'와 극장에서 맞붙었다. 하지만 나름 선전하며 179만 관객을 모았고, 무엇보다 배우 박철민을 발견하게 했다. 극장이 아니더라도 TV와 DVD로 영화를 접한 관객들이 부지기수. 지금도 이를 따라 하는 20대가 즐비한 걸 보면. 박철민 표 애드리브의 진가를 처음 알게 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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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목포는 항구다' 스틸컷


"정말 내 영화인 것 같아요. 저를 세상에 알리고 응원받고 박수받게 한 작품이라 애정이 크죠. '가오리, 쉭쉭거리며 권투를 한다'는 한 줄 짜리 지문 가지고 만든 장면이에요. 그걸 한 페이지로 써 갔죠. 이걸 다 하면 편집된다기에 4분의 1로 줄여 한 게 영화 속 장면이에요. 요즘 같은 무더위에 목포 부둣가에서 촬영을 하는데 15번은 테이크를 갔을 걸요. 그런데 스태프가 하나도 안 웃는 거예요. '좋다고 했는데 왜 아무도 안 웃지' 너무 이상했어요. 그 더운 여름에 일하며 웃고 싶었겠냐고요. 나중에 대학로 올라와서 후배들 모아놓고 '내가 이걸 했다'고 보여줬어요. 다들 웃더라고요. 확신했죠. 감독님한테 '이거 현장에서 안 웃었지만 편집하면 절대 안된다'고 이야기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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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의 박철민 / 사진제공=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사랑받고 관심받는 기쁨 느꼈죠!"

'목포는 항구다'와 비슷한 시기 방송된 KBS 1TV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2004~2005). 주인공 김명민의 출세작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박철민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 이순신 휘하의 장수 김완을 익살스럽게 재해석했던 그는 인기를 모으며 104부작 드라마에 80% 넘게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고단한 연극배우였던 박철민에게는 반갑고도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2주마다 한 번 출연료가 들어왔어요. 처음 하는 경험이죠. 제 1년 연봉이 200만 원이 안 되던 시절이에요. 제가 등급이 낮아 출연료가 회당 30만원이었을 거예요. 기본급보다 야외 수당이 많았던 작품이죠. 매달 꼬박꼬박 1년 연봉보다 많던 돈이 들어오는데, 사람이 뭔가를 계획할 수 있겠구나, 나도 적금 넣을 수 있겠구나 하는 즐거움이 있었죠. 그리고 남들 앞에서 수많은 사람을 연기하면서 관심 받고 박수 받는 기쁨을 또한 엄청나게 느꼈어요. 부안에 촬영 가면 명민이 다음으로 저한테 사진 찍자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고요. 과장하자면 거의 명민이랑 비슷했어요.(웃음) 사랑받고 관심받는 기쁨이 짜릿하더라고요. 충격적인 경험을 하며 생각했죠. 내가 그렇게 사진 찍어주고 사인 해주고 싶어했는데, 언제든지 찍어드리자 다짐했던 시기예요. 20년 무명 생활을 했는데 이런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겠어요. '너무 남발하는 거 아니냐' 하기도 하지만, 행복한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거죠.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배우들, 어디만 가면 사진 찍자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만약 '다시는 네게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지 않게 해줄게' 한다면 얼마나 외로운 배우가 되겠어요. 외롭고 슬퍼서 미쳐버릴 거예요. 너무 많아 그 행복을 깜박하는 거죠."

◆드라마 '뉴하트'..'뒤질랜드' 배대로

인간미 넘치는 의국 식구들의 드라마로 사랑받았던 MBC 의학드라마 '뉴 하트'(2007~2008).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캐릭터를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뉴하트'에서도 박철민을 발견할 수 있다. "어쨌거나 뒤질랜드 자나깨나 뒤질랜드 결국은 뒤질랜드"를 외치던 흉부외과의 분위기 메이커 배대로 역이다. 혼자 드센 척 분위기를 잡아도 정 많고 엉성한 면모를 좀체 숨기지 못하던 그는 방송 내내 깊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였다. 원조교제로 놀림 받던 '김미미 선생' 신다은과의 알콩달콩 러브스토리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박철민에게 '뉴하트'는 많이 사랑받고 그 역시 사랑한 "소중한 첫사랑 같은 작품"이다.

"'뉴하트'가 엄청나게 잘 됐잖아요. 브라운관의 파급력이 그렇게 큰 줄 몰랐어요. 어느새 제가 '배대로'가 돼서 사람들이 애틋해 하시는 늙은 레지던트가 돼 있더라고요. 신다은과 사랑이야기를 그리기도 했는데, 지금도 제게는 첫사랑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너무 철없고 사랑스러워서요. 요정 같은 아이죠. 마지막 20부에 엘리베이터 속 키스신이 있는데 당시 보시던 분들이 설레 하시는 게 아니라 경악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아니라 다은이가 밀고 와서 뽀뽀를 하는 거였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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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장수'의 박철민 / 사진=스틸컷


◆영화 '약장수'..박철민에게 이런 얼굴이

1980년 광주를 다루며 680만 명 훌쩍 넘는 관객을 모은 '화려한 휴가'(2007)가 있지만, 관객에게 외면받다시피 했던 또 다른 1980년의 영화 '스카우트'(2007)를 더 좋아한다는 박철민. 첫 주연을 맡았던 '또 하나의 약속'(2013)이 있지만 지금 첫 손에 꼽고 싶은 자신의 영화는 '약장수'(2014)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하필이면 '어벤져스2'와 맞붙은 불운을 맞았지만, 할머니들에게 효도를 팔아 건강식품 따위를 비싸게 팔아치우는 홍보관을 무대로 한국 사회의 현실과 함께 진한 페이소스를 담아낸 작품이었다. 코믹 조연 역할을 거듭하던 박철민이 돈밖에 모르는 악랄한 악역의 모습을 보인 작품이기도 했다. 돈벌이 때문에 떴다방에 취직한 가장 김인권을 한심해 하며 돈,돈 거리던 그의 모습이 얼마나 실감 나던지!

"그림자를 비추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는 작품이었죠. 악랄하고 더러운 악역인데도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그럴 수 있는 사회고 그런 인물도 미워만 할 수는 없다는 동정표를 산 탓인 것 같아요. 어쩌면 그건 김인권이 앞으로 걷게 될 길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 또한 느끼지 못했던 악랄한 몸짓, 표정을 보면서 너무 행복해했어요. 사탕을 먹는 신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요. 저런 생각들을 더 많이 쏟아내면 제 연기도 더 색이 다양해지고 깊어지지 않을까 해서 더 기뻤죠. 커다란 자신감을 줬던 영화예요. 아끼고 사랑해요. 제가 악랄하게 나오는 장면 영상을 갖고 다니면서 저한테 악역 안 주려는 감독들 있으면 보여줄 정도예요.(웃음) 억울하기도 하죠. 제 음지의 것들을 꺼내 보여주거나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은 참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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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근도둑 이야기'의 박철민(사진 오른쪽) / 사진제공=나인스토리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그의 에너지

여기에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포복절도할 코미디에 진한 페이소스를 녹여 내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연극은 고 박광정부터 송강호 박원상 이성민 명계남… 수많은 배우들이 거쳐 간 작품이기도 하다. 박철민은 2003년 처음 '늘근 도둑 이야기'로 무대에 섰다. 2008년에도 '늘근도둑'이 됐다. 2014년 다시 '늘근도둑 이야기'로 무대에 오른 그는 아직까지도 '늘근 도둑'으로 관객과 호흡하고 있다. 마침 그를 만난 것은 연극 상영이 한창 이어지고 있는 대학로 유니플렉스. 무대에 걸터앉은 그는 "광대의 참맛을 느끼고 있다"며 "이 깊고 뜨거운 맛이 힘의 원천이 돼서 모든 스트레스를 다 잊어버리게 된다"고 환하게 웃었다.

"우리 연극은 완전히 웃기죠. 웃다 죽을 때까지 웃기는 게 우리 연극의 가치예요. 너무 웃다가 지친다는 게 약점이죠. 너무 웃기면 안 돼서 완급조절을 하는.(웃음) 일주일에 한 번씩 굵은 땀을 흘리지만 사실은 나한테 배터리를 주입하고 있구나 하는 작품이에요. 같이 웃음을 키워나가고 키우고 그걸 바라보고 연기하면서 저도 신나고 더 뜨거워져요. 제가 더 큰 에너지를 얻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죠. 얼마 전 정말 200명 관객들과 혼연일체가 됐다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커튼콜을 하고 내려오는데 '여기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는 원이 없구나 싶어서요. 후배들과도 이야기했어요. 이런 관객들은 고마움을 넘어 미안하기까지 하다고. 이런 관객이면 우리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드려야 한다고요.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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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천상륙작전' 스틸컷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600만 관객이 찾은 여름 흥행작 '인천상륙작전'에서 박철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한 사전작전 '엑스레이 작전'에 투입된 남기성 역을 맡았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 가장의 캐릭터가 생생하고도 매력적으로 다가와 출연을 결심했던 박철민은 영화가 공개 후 혹평에 시달리자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하지만 박수를 쳐 주는 관객들이 있어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제가 했던 작품 중에 관객으로서 가장 애정 하는 영화는 '스카우트'예요. 관객으로서 진짜 코미디라고 생각하는 건 '방과 후 옥상'이고요. 물론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품들은 다 이유가 있어요. 사랑받는 코드가 있어야 몰리고 박수도 쳐 주지요. 그런데 사연이 있는 작품이나 대중들에게 빛은 못 받았지만 인간에 대한 고민 속에 탄생한 작품들이 있어요. 그런 데 저는 더 애정이 가요. '스카우트'도 흥행에선 실패나 다름없는 결과를 거뒀지만 잘 됐던 '화려한 휴가'보다 당시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죠. 다 차이가 있고 생각이 다른 거죠. '인천상륙작전'처럼 매도하거나 함부로 규정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스카우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좌가 아니듯 '인천상륙작전'을 좋아한다고 해서 보수도 아니잖아요. 나이 든 사람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요. 반공 이데올로기가 연상된다고 해서 '너는 왜 그러냐' 할 필요도 없고요. 대중예술을 보면서 서로 다른 시각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논쟁을 해 가는 게 아름답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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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록|roky@mtstarnews.com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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