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라지는 '야구유산' 구덕야구장.. 또 바라만보는 야구계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7.04.07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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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구덕운동장 자리에서 열린 야구경기 모습./사진= 부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 제공


야구의 도시 부산. 그 부산야구의 메카 구덕야구장이 7월이면 사라진다. 지난 2007년 없어진 동대문야구장에 이어 또하나의 야구유산이 사라지는 것이다.

부산시는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오는 6월까지 실시설계 용역을 끝내고 본격적인 구덕운동장 철거에 나설 예정이다. 구덕운동장 전체 6만6000㎡ 중 종합운동장 3만 ㎡만 남기고 야구장과 체육관은 모두 허문다. 철거된 공간은 2018년까지 잔디와 나무를 심어 산책로를 만들고 일부 공간에는 테니스장을 비롯한 최소한의 체육시설을 배치할 계획이다. 6월말까지 구덕야구장의 사용허가를 받은 부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고교 주말리그와 부산시 대회를 소화하기 위해 분주하다.


현재 롯데는 사직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고 KBO와 기장군, 현대차가 함께해 기장-현대차 드림볼파크(이하 드림볼파크)도 만들었다. 당초 부산시는 부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드림볼파크를 대체구장으로 제안했으나 기장군은 수익사업으로 야구장을 운영할 방침이어서 협회측은 새로운 대체구장을 요구하고 있다. 부산시 역시 대체구장 부지를 알아보고있는 중이다.

부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측에 따르면 구덕구장 이용료가 3시간 기준 4만원인데 비해 기장 잔디구장은 30만원, 인조잔디구장은 22만원이다. 대한체육회나 부산시주관대회에 적용되는 50% 감면혜택을 감안해도 구덕구장보다 3~4배 비싸다. 여기에 지난 연말에 이미 예약율 130%를 넘긴 상황이란다. 협회측은 6월말까지 대체구장에 대한 대안이 나오지않을 경우 구덕야구장을 떠날수없다는 입장을 부산시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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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면 철거되는 부산야구의 메카 구덕야구장.



부산에 ‘구도(球都)’라는 애칭을 안겨준 구덕야구장은 그렇게 사라져갈 모양이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않으면서 안전문제가 불거졌고 주변지역의 슬럼화를 부추킨다는 민원도 더해졌다. 충분히 낡았으니 그대로인채로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지워버린다는데 동의하긴 쉽지않다. 멀리는 김응용, 김소식, 강병철부터 가까이는 최동원, 박동희, 추신수, 이대호까지 부산야구의 상징들이 커온 현장이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다른 용도도 아니고 어차피 체육공원으로 운영할 바에야 오래된 구조물을 치운채 야구공원으로 만들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구덕야구장은 공식적으로 1973년 8월에 건립된 것으로 되어있으니 44년된 건물이다. 하지만 김응용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그건 아마 보수 개축한 것일 것이고 일제시대부터 있었다. 나도 개성중시절 그곳에서 야구했다”고 밝혔다. 김소식씨도 “내가 등판해 부산고가 1962년 제14회 화랑기 우승할 당시도 구덕야구장에서 경기를 했다”고 증언한다. 부산시협회도 “언제부터 구덕야구장이 시작됐는지에 대해선 사료가 없다”면서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서 지난 1928년 야구경기를 하고있는 사진은 보유하고 있음을 밝혔다. 사진자료에 따르면 구덕야구장은 적어도 90년간 그 자리에서 부산야구를 키워온 셈이다.

그같은 야구유산의 소실을 바라보는 야구계의 시각은 많이 아쉽다. 부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나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통화를 하면서 ‘유산의 소실’보다는 ‘대체야구장 마련’에 방점을 찍고있음을 느꼈다. 부산시협회 관계자는 “부산시의 방침에 적극적으로 대응 안했다기보다 그때는 시측에서 대안을 제시해줬었다. 시에서 정책결정이 났는데 저희들이 데모한다고해서 철거안하는게 아니지않은가. 시정책에 따랐던 것이다”고 밝히며 당초 기장야구장이 대체구장으로 제안되면서 부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않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기장구장이 현실적으로 대체구장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자 2월13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대해 김응용회장은 “야구장이 그거 하나밖에 없어서 초,중,고,대학까지 다 거기서 야구했다. 부산 야구의 상징적인 곳이다. 외국에선 체육공원 만들면 오히려 야구장 축구장 짓고 하는데 굳이 철거를 한다니 이해가 안가고 많이 아쉽다. 그라운드와 본부석 정도 남겨 야구할 수 있게 하고 외곽으로 산책로나 공원 만들면 될일인데..”라고 아쉬워하면서 “이제는 도리없이 대체야구장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밖에 없지않겠나”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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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가 안돼 엉망인채인 구덕야구장 외야펜스./사진= 부산시야구소프트볼협회 제공


2014년 서병수 부산시장이 구덕야구장 철거를 공약으로 내세운 이후 구덕야구장을 지키고자하는 야구인들의 노력은 턱없이 미흡했다. 대안을 마련해서 시의 체육공원구상안에 어떻게든 구덕야구장을 존속시켜보려는 노력은 보기 힘들었다. 야구인들 스스로 ‘대체야구장만 확보되면 되지, 시정책이라는데..’ 정도로 최소 90년 부산야구를 키워온 소중한 유산을 바라보았던 셈이다.

김소식 전 해설위원은 “동대문야구장 없어질 때 내가 레슬링 축구 야구 배구 수영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철거반대운동을 했었다. 구덕구장은 그만큼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인데 그렇게 철거하는건 아니라고 본다. 임기 4년 시장 공약 때문에 근 100년 야구역사가 사라진다는건 어불성설이다. 구도의 전통을 보존해야하지 않겠는가. 협회를 비롯한 야구인들도 정치력을 발휘해서 구덕야구장을 지켜야하는 것 아닌가”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스턴과 시카고가 자랑하는 펜웨이파크와 리글리필드는 100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며 야구팬들과 시민들의 자랑으로 여전히 성세를 누리고 있다. 사람이 늙어가거나 건물이 낡아간다는 것은 이야기를 쌓아간다는 말이고 그 이야기들은 하나의 역사가 된다. 73년 새롭게 태어난 구덕야구장은 수많은 젊은 열정들을 담아내며 44년을 보내왔다. 그 와중에 전설이 탄생하고 스타가 자라났다. 롯데가 사직으로 옮겨간후 부산 학생야구의 온상이 되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그런 선배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꿈을 키워가도록 북돋워준 곳이다. 그렇게 자라난 스타들도 많다. 이제 공원이 되면 말끔해지고 쾌적해지겠지만 운동장 구석구석에 스몄던 이야기들은 사라질 것이다.

기장 드림 볼파크같은 물적 인프라도 물론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야구 유산’이란 정신적 인프라도 소홀히 취급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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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웨이파크./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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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글리필드./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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