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완 감독(39)은 고등학교에서 연극부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 영화 공부를 하려 유학을 고민했을 때 아버지의 "너 영화 아니?"란 질문을 듣고, 영화를 알려고 영화사봄에 들어갔다. 그렇게 현장에서 영화를 겪고, 다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영화 만듦을 배웠다.
11월 12일 개봉한 '내가 죽던 날'은 그런 박지완 감독의 긴 인고 끝에 나온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내가 죽던 날'은 폭풍우가 치던 날 사라진 소녀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형사가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감정이 짙고, 여운이 길다. 박지완 감독과 나눈 '내가 죽던 날'의 긴 이야기를 옮긴다.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내가 죽던 날'은 왜 했나.
▶초고는 2012년~2013년 즈음에 썼다. 관계없는 두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엔딩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이 시나리오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 계셨다. 그런데 각자 보고 싶은 것들이 달랐다. 어떤 분은 세진(노정의) 아버지 사건을 키우고 싶어 했고, 어떤 분은 현수(김혜수) 이야기를 더 키우고 싶어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가 원래 하고픈 것들과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8년 스토리퐁 대표님을 만났는데 이 이야기에 동의해줬고, 제작사 오스카10 스튜디오 장진승 대표님을 만나서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등 여성 배우들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고 사건이 스펙터클하지 않고, 신인 감독이라는 점에서 투자가 쉽지 않았는데. 김혜수가 하겠다고 한 뒤에 투자가 될 때까지 다른 작품을 안 하고 계속 기다려주고, 투자가 난항을 겪었을 때는 만나서 응원도 했다던데.
▶이 이야기는 타이밍이 맞아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상업적인 단점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들도 알고 있고, 만일 그렇다면 내가 포기해야 할 부분이 뭘까도 고민했다.
김혜수 선배가 이 영화를 "운명"이라고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운명 같다. 안 해주실 것 같았지만 김혜수에게 제안한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곧 보자고 연락이 왔다. 김혜수 같은 분은 거절을 만나서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나서 하겠다고 하면서 이 영화는 어디 어디로 갈 것 같은데 끝나면 다른 곳에 와 있는 이야기라며 그걸 잘해야 한다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셨다.
얼떨떨했다. 어쩌면 만들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서 시작했다.
-김혜수가 맡은 현수는 직업이 형사다. 왜 형사라는 직업을 택했나.
▶초고를 썼을 때부터 직업이 바뀐 적은 없다. 현수가 처한 상황도 크게 바뀌진 않았다. 다만 현수라는 사람이 일부러 밝은 척을 하느냐, 더 침잠하는 사람이냐에 변화를 준 적은 있다. 현수는 예전에도 열심히 수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련의 일을 겪고 난 뒤에는 수사하면서 보는 게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현수만 알 것이라 생각했다. 세진(노정의)의 CCTV 속 얼굴에서 현수가 자신의 얼굴을 보려면, 그런 경험과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수라는 이름은 중성적인데, 왜 현수로 정했나.
▶현수는 젠더리스한 이름이다. 의도한 게 맞다. 저도 남자이름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릴 적에는 싫을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이름이 사람들이 덜 짐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계속 보고 싶은 이름인 것 같다. 세진도 마찬가지다. 실제 남자인 친구 중에 세진이란 이름도 있다.
-왜 순천댁(이정은)을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설정했나.
▶순천댁이 그 섬이 순천이 아닌데 순천댁으로 불리는 건, 순천으로 시집갔다가 어떤 일로 돌아와서 어떤 면에선 입을 닫고 살았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 역시 고통스런 일을 겪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살고 있는. 그래서 입을 닫은.

-'내가 죽던 날'은 주요 인물들이 다 마음고통의 정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고통이 공감과 연대로 이어지고. 시나리오에는 쓰는 사람의 경험이든, 무의식이든, 반영되는 법인데.
▶실제로 내가 심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냐는 소리를 엄청 많이 들었다. 원래 완전히 상상인데 사실처럼 만드는 데 재밌어하는 편이다. 그래야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직접적인 경험이나 이유는 없다. 세상에는 실제로 그런 감정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상상할 수 있었다.
-'내가 죽던 날'은 초반에는 카메라가 현수와 거리를 두다가 현수가 세진에 공감하는 순간부터 확 가까이 다가가는데. 상당히 영화적인데.
▶콘티부터 카메라가 현수에게 천천히 다가가길 바랐다. 조용규 촬영감독님이 워낙 핸드핼드의 대가셔서 흔들리지 않게 핸드핼드로 인물로 천천히 다가가다가 그 순간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 해줬다.
-통상 이런 미스터리 구조인 영화에는 섬이 등장하면 섬사람들이 비밀을 품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다른데.
▶그런 점이 재미있었다. 그걸 반전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귀한 곳에 어린 친구가 왔는데 모르는 척 해달라고 하면 과연 섬사람들이 어떻게 대했을까? 편집된 대사 중에 "귀신 같은 노인들이 말 걸면 아이가 얼마나 놀라겠어"란 것도 있었다.
-야광별이 중요한 소품으로 쓰인다. 경험이 아니었으면 떠올리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인물의 동선을 표시할 때 야광별을 붙였다. 어두운 곳에서 찾을 수 있도록. 그게 너무 좋았다. 흔적이 아닌데 흔적이 남는 것 같고. 세진에게 야광별은, 사라지고 싶지만 동시에 여기에 있었던 걸 남기고 싶은 마음과 같다. CCTV 속 얼굴도 마찬가지다.
-오프닝에서 유리창에 비친 김혜수의 표정이 무척 인상 깊은데.
▶원룸 촬영을 하루 밖에 할 수 없어서 원래 원했던 것보다는 창밖이 밝다. 매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사람이 거울을 자주 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낮에는 자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아무리 뛰고 와도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창밖을 볼 때 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내 인생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는데 이걸 덮고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결국은 이 모든 게 내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원룸 촬영을 하루밖에 할 수 없었다면 김혜수와 김선영이 나누는 대화 장면, 김혜수가 자신의 경험을 담았다는 그 장면도 같은 날 찍었다는 것인가. 그 장면에 대해선 감독으로서 고민이 무척 컸을 것 같은데.
▶2019년 영화 찍는 모든 감독은 상황이 비슷했을 것 같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신신당부하는 건, 예산과 촬영 조건 안에서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혜수와 김선영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있긴 했다. 그 장면의 대사를 김혜수가 직접 썼다. 어느 날 김혜수와 대화를 하던 중에 잠을 못 자고 자면 악몽을 꿨다는 이야기를 불쑥 하더다. 당시는 불쑥 이야기가 나와서 놀라서 반응도 제대로 못했다. 영화에 쓸 생각은 더더욱 못했다. 그러다가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 장면을 어떻게 할까 이야기를 하던 중 김혜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에 쓰자고 하더라.
사실 되게 고민 많이 했다. 내가 연출을 한들, 김혜수 개인의 이야기를 써도 될까, 쓴다면 확실하게 잘 찍어야 하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너무 고민 많이 했다. 같이 작업을 하면서 김혜수란 사람을 더욱 잘 알게 되고, 훨씬 좋아하게 됐기에 고민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그 장면을 편집해도 상관없도록 고민해서 찍었다. 나중에 싫다고 하면 그 장면을 뺄 생각을 하고 찍었다. 감독으로서 제일 태도를 정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담긴 채 개봉하면,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정말 고민이 많았다. 편집할 때 뺀 버전도 있고, 넣은 버전도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넣었던 건, 김혜수가 이 영화에 대하는 태도와 연기가 맞닿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넣었다.
-'내가 죽던 날' 기자간담회에서 여성인 주요 인물들이 남성인 가족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질문이 나왔다. 굳이 젠더를 구분해서 그런 설정을 넣은 것 같지는 않고, 다만 김혜수의 경찰 상사(김정영)를 여성으로 한 이유는 궁금한데.
▶우선 젠더를 구분해 캐릭터를 만들지는 않았다. 저도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현수의 경찰 상사를 여성으로 한 건, 이유가 있다. 그 상사는 정말 좋은 의도로 제안을 했을 것이다. 경찰대 나와서 일도 잘했는데 그런 루머로 일을 그만 두는 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서 좋은 의도로 제안했을 것이다. 아마 그 상사도 현수와 비슷한 길을 걷고 경찰에서 승진해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어쩌면 현수가 그 상사와 비슷한 길을 따라갔을 수도 있다. 그런 여자 상사가 제의를 했기에 현수가 더 적극적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하겠다고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진의 오빠는 기능적으로 등장하지만 아빠는 일부러 등장시키지 않았는데.
▶세진이 그런 상황에 놓인 원인이 확 지명되지 않았으면 했다. 탓하기 좋은 상황인데, 그런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했다. 한가지 원인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진에게 관심을 기울이다가 접었던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빠가 등장하는 장면도 고민했다. 관객이 이유로 떠올리지 않도록 중간에 배열을 고려했다.
-영화 속에서 현수가 자신을 둘러싼 루머에 대해 적극적으로 아니라고 해명하지 않는데.
▶모욕을 겪은 사람은 그 모욕을 입에 담기도 싫을 것 같다. 자기 입으로 꺼내는 것조차 싫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남자후배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현수가 이혼 소송 중인 남편(김태훈)을 찾아갔을 때 김태훈이 "여기 CCTV있어"란 대사를 하는데. 캐릭터를 함축한 무척 절묘한 대사인데.
▶그 남편은 이혼을 되게 잘 준비했고, 현수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직접 오니 놀란. 쳐들어올 사람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서 놀라는. 그런 사람이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너무 잘 알고 있고, 그렇지만 현수의 달라진 것에 놀란. 그러면서도 이혼을 잘 준비해온 사람으로서 할 말.

-세진과 형준(이상엽)의 관계는 어쩌면 위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험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해선 구체적인 설명을 안 했는데.
▶세진은 새 엄마(문정희)에게 그랬듯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아이다. 좋은 사람이면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형준은 그 섬에서 외로운 세진이 유일하게 잘해준 사람이었다.
세진과 형준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표현을 안 한 건, 둘의 관계 때문에 세진이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형준 역시 좋은 의지를 갖고 세진을 대했지만 마지막에는 자기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고. 결국 세진은 그런 여러 이유들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는 걸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 어떤 사건도 두드러지면 관객들을 잘못 가이드 할 것 같았다.
또한 현수도 선정적인 소문들로 고통을 겪은 사람인데, 정작 본인도 자기가 믿고 싶은 결론을 위해 그런 것에 천착하게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현수가 형준을 만나고 난 뒤에 괴로워하는 것이고.
-시나리오는 지금과 같은 구조가 아니라 후반부에 플래시백으로 세진의 이야기를 좀 더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방식이 더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버전이 더 영화적인데. 더 현수의 시선이고.
▶이 영화는 현수를 따라가는 영화다. 솔직히 플래시백은 어떤 면에서 이 영화에 사건이 없고 설명이 없는 게 아냐라는 우려들이 있었기에 내 조바심이 반영된 것도 없지 않다.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현수를 따라가는 영화니 정공법으로 가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왜 순천댁에 이정은이었나. 이정은은 영화에서 왼손을 쓰는데.
▶이정은 선배를 떠올렸을 때는 '기생충'이 공개되기 전이었다. 이 영화에서 순천댁이 하는 역할을 생각하면 너무 할머니면 안되고, 그러면서도 고독하게 살았을 것 같은 사람. 잘 모르면 무섭게 볼 수도 있는 사람. 이정은이 가장 적확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나중에 '기생충'을 본 관객들이 '내가 죽던 날'에서 이정은의 역할을 눈치채지 않을까란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순천댁은 영화적이고, 이정은이 들어와서 영화적으로 매워졌다.
이정은은 실제로는 오른손잡이다. 그런데 오른손으로 필체를 같이 궁리해봤지만 어떻게 써도 달필이더라. 꾹꾹 눌러쓰는 그런 필체가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왼손으로 쓰기로 했다.
-영화 말미 납골당 장면은 어떤 관객에겐 더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을텐데.
▶더 설명하고 싶은 욕심과 고민이 물론 있었다. 더 넣어보기도 하고, 빼 보기도 했다. 내레이션도 고민해봤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와서 김혜수의 감정을 못 타면, 어차피 못 탄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럴 바에는 빨리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김혜수와 이정은이 선착장에서 만나는 장면에서, 김혜수의 표정 변화가 좋은데.
이정은의 리액션도 훌륭했고.
▶현수는 어떻게든 확인하고 싶어서 빗속을 달려갔다. 순천댁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라는 심정으로. 노려보기보다는 뚫어지게 봤는데 순천댁의 반응을 보니 '고맙다' '안도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등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을 것이다.
김혜수 선배와 이정은 선배가 그 장면은 끊어서 하지 않고 한 번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감독 입장에선 그게 훨씬 좋다. 소스가 많으니깐. 하지만 배우 입장에선 그렇게 여러 번 가면 감정의 소모가 크다. 그래도 그렇게 갔다.
혜수 선배가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그 장면을 찍기 전부터 김혜수와 이정은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물을 계속 흘렸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 장면에서 내 역할은 누르는 일이었다. 그 장면은 여러 버전이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버전이 가장 좋았다.

-자막은 고민이 컸을 법 한데. 정확히 들려줘야 하기도 하고, 자칫 자막에 관객이 집중하면 배우의 얼굴을 놓칠 수도 있고. 결국은 자막이 대사보다 좀 더 늦게 나오는 방법을 택했는데.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자막도 여러 버전이 있었고. 후시녹음도 여러번 했다. 배우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저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야 하는데, 자막을 보느라 못 보면 어쩌지란 고민이 컸다.
촬영할 때는 안 들리면 안 들려도 된다는 마음으로 했다. 그런데 후반 작업할 때 못 듣는 관객을 버리고 가는 건, 예의가 없는 게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더라. 이정은이 정말 바쁠 때였는데 후시녹음에 여러 번 시간을 내줬다. 여러 소리를 조합해 보기도 했다. 결국은 그 표정에 한 호흡으로 한 걸 썼다.
-세진을 맡은 노정의는 어땠나.
▶되게 노련했다. 스크립터가 맞출 게 없을 정도로 그때는 어땠는지, 이번에는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더라. 당시가 드라마에 입시 준비로, 정말 노정의가 바쁘고 힘들 때였다. 그래서 안 힘드냐고 물으면 너무 밝게 괜찮다고 하더라. 그냥 뒀다. 그 당시 노정의의 상태가 세진과 닿아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진의 CCTV 얼굴은 야광별처럼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이었다. 그 느낌은 나보다는 10대인 노정의가 더 잘 알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노정의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수의 친구 민정을 맡은 김선영은 영화에 또 다른 기운을 불어넣는데.
▶김선영은 모두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배우다. 에너지를 항상 현장에 몰고 온다. 그때가 김선영이 드라마 세 개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도 오면 좋은 에너지를 너무너무 불어넣었다. 김선영이 김혜수와 같이 만든 동선들이 자극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애드리브를 자제해주길 요청했는데 다음에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에너지를 마음껏 쏟으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 싶다.
-'내가 죽던 날'은 소리도 좋다. 소리가 숨을 때와 피어날 때가 정말 좋은데.
▶김홍집 음악감독님이 내 예전 단편들도 음악을 다 해주셨다. 이 시나리오도 오래 보셨다. 그래서 뭘 하려는지 알고 계셨다. 음악이 감정보다 앞서지 않고, 그러면서도 장소마다 음악이 구분됐으면 했다. 섬과 도시, 혼자였을 때와 밤, 누워있어도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 파도가 멀리서 치는지, 가까이서 치는지. 너무 세심하게 잘 해주셨다.
-왜 제목이 '내가 죽던 날'인가.
▶세진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살아 있는 사람은 갖고 있지 못한 날이다. 또한 다시 살아나는 날이고.
-죽고 싶어서 본 노을이 살고 싶게 만드는 노을이기도 한데. 노을이 중요하게 반복되고. 그런데 비해선 노을 장면이 좀 짧은데.
▶너무 길면 신파처럼 보일까 싶었다. 얇게 보고 우는 건 이 영화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던 날'과 이야기가 아주 많이 다르긴 하지만 '폭풍의 언덕' 같은 소설에 영향을 받았나.
▶영미 소설에 영향을 받은 세대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고전보다는 90년대 추리소설 전집에 영향을 더 받지 않았나 싶다. 추리소설이 후일담으로 줄줄이 따라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런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차기작은.
▶2020년의 박지완이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죽던 날'도 그 때의 박지완이 재밌는 이야기여서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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