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박해일은 여전히 낯선 것을 경계하고,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운 결을 찾으려는 배우였다. 그 결과 '암살자(들)'에서 묵직하면서도 담담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박해일은 무수한 검열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나가는 신문사 사회부 부장 '재환' 역으로 분했다.
그는 '덕혜옹주'에 이어 '암살자(들)'에서 허진호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춘다. '한산: 용의 출현'(2022) 이후 스크린에 복귀한 박해일은 '암살자(들)'을 제안받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허진호 감독님의 영화를 기다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과 간간이 인사동이나 경복궁역 근처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편하게 만나던 중 작품 제안과 함께 시나리오를 주셨다"며 "읽어보고 '이걸 하려고 기다렸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뒤 감독님께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 역시 박해일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는 "허 감독님이 70년대를 다루는 이야기는 처음이고, 저 역시 70년대에 태어나긴 했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였다"며 "제가 태어나 아무것도 모르고 기어 다니던 시절에 벌어진 사건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조금씩 알아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해일은 "첫 촬영을 마칠 때까지도 '확신'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심어놓지는 않았다"며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느낌이었다. 계속 한 발씩 나아가면서 '이 방향이 맞는 건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감독님과도 대화를 나누고 메인 스태프, 배우들과도 소통하면서 우리가 그 시대의 느낌으로 가고 있는지 계속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박해일은 허진호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에서 가장 경계한 지점으로 '답습'을 꼽았다.
그는 "같은 감독과 두 번째 작품을 할 때는 익숙함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결국 내가 가진 것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덕혜옹주'에서도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기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는 '새로운 지점이 뭘까', '내가 낯설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뭘까'를 계속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박해일은 "감독님도 그런 고민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며 "마치 양치기가 방향을 잡아주듯 조금씩 몰이를 해주셨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결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기자 재환을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자연스러움'이라고 밝혔다. 그는 "맡은 역할이 기자다 보니 기자가 앉아 있는 공간 안에서 최대한 기자스럽게 보이는 게 첫 번째 숙제였다"며 "무엇이 자연스러운지를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건과 시대에 대한 자료 역시 참고했다. 박해일은 "시대적 자료나 다큐멘터리도 있었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많이 다뤄졌던 사건"이라면서도 "큰 개요 정도만 인지하자는 생각이었다. 너무 많은 정보를 쌓기보다는 주어진 창작의 세계로 들어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안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박해일에게, 함께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점이었다. 먼저 박해일은 유해진과의 오래된 인연을 떠올리며 현장에서 그의 배우 생활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배우로서 어떻게 이렇게 오래 활동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왕과 사는 남자'로 정점을 찍은 뒤라 기분도 좋으셨을 텐데, 현장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한 신 한 신 찍어나가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몰래 봤는데 매 신마다 메모가 빼곡하게 돼 있더라"며 "그 메모 안에 선배의 아이디어와 작품에 대한 의견, 생각이 전부 담겨 있었다. 하나의 지도 같았다. 그때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런 타입의 배우는 아니다"라며 웃은 뒤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박해일은 이민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영화사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훤칠하더라. '신문사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싶어서 이게 무슨 영화적인 상황인가 싶었다"고 웃었다.
이어 "그런데 동시에 허진호 감독님의 수를 읽은 것 같았다. 민호 씨가 연기한 영일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신성일 선생님의 느낌도 있었다. 선이 굵고 선명한데, 이상하게 낯설지는 않았다. 신성일 선생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의 태도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박해일은 "제가 보기에는 정말 많은 걸 내려놓고 온 것 같았다. 본인 촬영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와 있더라"고 전했다.
이어 "저와는 또 다른 입장이지 않나. 그 배우는 나타나는 순간 각국의 팬들이 함께 움직인다. 본인도 그게 현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그래도 현장이 궁금하고 같이 있고 싶으니까 오는 거다"라며 "그런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장을 채우는 동료들을 지켜본 경험은 박해일에게 자신의 연기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해일은 자신만의 연기 방식에 대해 "배우의 기질은 다양하다. 어떤 연기를 보면 '나는 저렇게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그렇다고 그걸 따라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중요한 건 저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라며 "저 혼자 어느 순간만 잘하자는 게 아니라 작품 안에 같이 잘 녹아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더 좋은 연기고, 저에게는 더 재미있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만인의 이상형'으로 손꼽히며 변함없는 비주얼로도 주목받아온 박해일은 나이 듦에 대해서도 담담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동안이라고 말해주신다면 감사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저도 그 과정을 넘어가고 있다"며 "이제부터는 잘 나이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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