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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감독 / 사진제공=쇼박스 |
코로나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2020년 영화계를 마무리하며, 그 속에서도 빛났던 올해의 영화인들을 스타뉴스가 만났습니다. 첫 주자는 '남산의 부장들'로 2020년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우민호 감독입니다.
2020년 영화계는 100년사를 자랑하는 한국 영화계에도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한해다. 올해 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등을 휩쓸며 4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코로나 19 사태가 발발했고, 그렇게 올해 연말까지 영화계는 위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의 발걸음이 적어지며 영화인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올해 초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우민호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우 감독 역시 이런 상황이 답답하지만, 한국 영화인들만의 저력으로 이 위기를 타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전했다.
475만 명의 관객을 모은 '남산의 부장들'이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다. 영화 개봉 후 얼마 안 돼 코로나 상황이 터졌다.
▶ 여러 상황들이 좀 안타깝다. '남산의 부장들'은 설 연휴 마지막 날 직격타를 받았다. 대중들이 영화관을 찾아야 되는데 (코로나19 발발로 기세가)꺾여서 아쉽지만 그래도 다행히 손익분기점을 맞췄다. 그게 거의 1년이 돼간다. 당시에는 곧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지금까지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길게 이어질지 몰랐다. 많은분들이 어려움을 많이 겪어서 안타깝다. 영화인들도 많이 힘들어한다. 그래도 코로나 사태는 언젠가는 (곧) 끝난다. 지금으로서는 아쉽고, 어두컴컴하고 암담하지만 잘 버텨서 이겨내기를 바라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의 경우 근현대사를 영화화하기에는 여러 가지 고민되는 지점들이 많았을 것 같다.
▶ 제가 군대에 갔다 와서 '남산의 부장들' 책을 접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르포를 김충식 교수님이 책으로 만들어서 그 당시 2권짜리 책이었다. 저도 1971년생이지만 제가 몰랐던 한국 근현대사 변곡점이 된 사건들을 재밌게 접할 수 있었다. 마치 '대부' 같은 갱스터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저는 영화학도였고 영화감독이 꿈이니까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로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가슴에 간직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내부자들' 영화가 잘 되고 김충식 교수님께 연락드리니 아직 판권이 안 팔렸다고 하시더라. 그때 판권을 구입해서 하게 됐다. 이 책은 60년대부터 79년까지 중앙정보부의 시작과 끝을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욕심이 있어서 이것을 1부 2부로 나눠서 할까도 생각했다.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생각을 했고 당시 대통령을 중앙정보부장이 죽인 10.26 사건에 포커스를 맞췄다.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다.
가까운 역사, 그것도 정치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 사실 근현대사는 잘 찍어도 본전이다. 욕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저는 그 전에 두 작품에서 욕을 많이 먹어서 단련이 됐다.
'남산의 부장들' 책 속에 담긴 다른 이야기를 또 다른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나. 이를테면 '남산의 부장들2' 같은.
▶ 없다.(웃음) 기회가 되면 드라마로 예전에 '제 5공화국', '3공화국' 이런 것을 만든다면 모를까. 영화는 못하겠다. 영화감독은 한 작품을 만들고 나면 그 이야기에서 멀어진다. 다른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고, 만든 것을 재생산하기 싫어하는 경향도 있다. '내부자들'도 속편을 만들자, 혹은 드라마를 하자는 말이 많았지만 지긋지긋했다.(웃음) 각자의 성향이라는 게 있는데, 집중해서 영화를 만들어서 결과가 좋으니 이제 또 다른 이야기를 찾게 된다.
1970년대 중앙정보부 이야기를 다룬 '남산의 부장들', 그 당시 마약 이야기를 다룬 '마약왕', 또 2000년대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내부자들'까지. 한국의 어두운 모습을 우민호 감독 특유의 색으로 잘 담아냈다.
▶ 제가 좀 어둡게 파헤치는 부분이 있다. 격동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다. 밝은 부분은 다 알고 있는 지점이고, 어두운 부분을 숨기려고 하는데 그런 것을 꺼내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꺼내기 싫어하는 것들. 어떤 어두운 면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런 것 의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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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감독 / 사진제공=쇼박스 |
우민호 감독에게 느와르란 어떤 것인가.
▶ 말 그대로 어두운 것 아닌가. 저는 어두운 것을 추구한다. 화면도 어두운 것을 좋아한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이미지, 그 속에서 파헤치는 것 그런것에 흥미를 느낀다.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신기하다.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면 어땠을까. 그런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들이 저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매력을 느끼게 된다.
어두운 느낌 속, 거칠 것 같은데 섬세한 느낌이 좋다. 특히 '남산의 부장들'은 굉장히 섬세하게 찍었다.
▶ 섬세하게 영화를 찍었다는 말을 '남산의 부장들'부터 들은 것 같다. 앞의 작품들이 좀 거칠었다면 이번에는 세심하게 찍었다. 뭔가 확 바뀌었다기보다는 점점 영화를 하나씩 찍으면서 배우는 것 같다. 장르와 이야기에 상관없이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연출자로서 배워가고 반성하고 모자랐던 지점을 그 자리에서 채워간다. 특히 '남산의 부장들'을 좋게 봐주신 분들이 연출력이 늘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그런 것은 귀신같이 잘들 본다.(웃음) 기분이 좋더라. 창작자들은 자기가 뭔가를 했을 때 누군가 알아주는 게 좋다. 해왔던 것을 여전히 잘하네 하는 것도 좋지만, '이 사람이 이런 것도 잘하네', '우민호 감독이 이렇게 섬세하게 할 줄도 알았네' 하는 말들이 좋았다.
'내부자들'도 그렇고 '남산의 부장들'도 이병헌이 굉장히 빛났다. 우민호 감독과 이병헌의 호흡이 굉장히 좋은 것 같다. 다음 작품도 같이 할 생각이 있나.
▶ 시너지가 좋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작업 스타일도 잘 맞고 현장에서 여전히 긴장이 있다. 두 작품을 같이 했으니까 편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텐션이 유지된다. 이병헌은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에 적합한 배우다. '남산의 부장들'은 대사를 많이 넣지 않았다. 오히려 대사를 줄였다. 대사가 많이 없지만 자신의 심리를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는 배우가 필요했다. 그런 배우가 바로 이병헌이다. 병헌 선배도 저도, 서로가 두 번째까지 성과를 이룬 것을 보니 서로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음 작품도 또 같이 하고 싶다. 제가 하고 자 하는 이야기 속의 다른 모습이 투영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을 또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차기작은 어떻게 준비 중인가. 다음 영화도 '우민호 스타일'의 느와르적 색깔의 작품인가.
▶ 아직까지 제가 제 스타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다.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할지 고민하면서 작업 중이다. 저는 아직 '우민호 스타일'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한다. 지금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 스스로 확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민호 감독이 시나리오 쓴다고 하면 제작사에서 줄을 서지 않나.
▶ 아니다.(웃음) 감독은 항상 외로운 직업이다. 혼자 시나리오를 쓸 때는 혼자 힘들다. 희열을 느낄 때도 있고 어느 날은 잘 풀려서 좋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다. 촬영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외롭지만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땀 흘리면서 촬영하는 게 또 행복한 일이다.
'내부자들' 이후 우민호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그만큼 시나리오 쓸 때나 영화 촬영할 때도 부담이 클 것 같다.
▶ 좋은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부담감 안에 갇혀있지 않으려고 한다. 저 스스로 '니가 그렇게 잘난 영화를 찍는 감독도 아니고 하는 것을 열심히 하자' 뭐 그런 생각으로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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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감독 / 사진제공=쇼박스 |
올해 영화계는 코로나 이야기가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극장으로 가는 관객이 줄어들고 있다. 영화도 극장 대신 OTT행을 택하며 한국영화의 위기, 더 나아가 영화의 위기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 여파가 큰 것은 맞다. OTT같이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여러 고민 들이 생긴다. 그런데 과거를 생각해 보면 처음 TV가 들어올 때 영화가 없어진다고 했고, 비디오가 나왔을 때도 영화관 없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아니지 않나. 플랫폼이 바뀌고 상생의 길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사람들의 특징이 위기에 강하다. 아마 이 위기 속에서 예전보다 더 독특하고 독창적이고 좋은 콘텐츠가 개발 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무엇인가가 제한되면 힘들지만 우리는 항상 아이디어로 극복해 나간다.
영화 감독으로서 스크린이 아닌 다른 플랫폼으로 개봉되는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코로나 상황이 끝나면, 다시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려 갈까.
▶ 영화가 넷플릭스로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모니터나 TV보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그것이 대중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OTT만의 장점도 있고, 또 어떤 관객들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소비하고 싶어한다. 다만 OTT가 나오면서 상업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색깔있는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저는 코로나 이후 극장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면 관객들은 올 것이다. 지금은 전세계가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지만 반드시 극복할 것이다. 더 암울했던 시대도 있었고 미래에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래도 이 팬데믹을 잘 극복하지 않을까. 코로나 때문에 극장을 안가고, 사람들을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하는 것을 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발목 잡혀 있지만 백신이 나오고 팬데믹이 끝나며 다시 예전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감독으로서 지금 코로나 사태를 영화로 만든다면.
▶ 어렵다. 그래도 만든다면,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고 예전보다 더 나아지고 환경도 생각하는 그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뭔가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우민호 감독의 첫 휴먼 드라마인가?
▶ (웃음) 그동안 제가 찍은 건 휴먼드라마 쪽이 아닌데 코로나가 그쪽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어두운 부분보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면, 그런 면들을 제가 조금 더 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전보다 뭔가 조금 더 긍정적인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 이 세 영화가 본인에게 각각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 '내부자들'은 제가 감독으로서 영화를 찍어내게 한 전환점이 된 영화이자 저에게 감독 이름을 알리게 해 준 영화. '마약왕'은 저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만들었고, 감독으로서 제 역량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또 '남산의 부장들'을 찍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남산의 부장들'은 제가 앞으로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되는지 숙고하게 만든 작품이다. '내부자들'이나 '남산의 부장들'은 속편을 찍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마약왕'을 10부작 드라마로 해보고 싶다. '마약왕'은 아쉬움이 있다. 그 아쉬움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영화로는 안 될 것 같고 OTT 같은 곳에서 드라마 제안이 들어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서사가 길어서 영화로는 다 담기가 힘들었다. 드라마로 쭉 길게 담으면 재밌을 것 같다. 제가 '마약왕' 이후 그 작품을 얼마나 복기 했겠나. 이제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올해를 정리하며 마지막 인사를 해달라.
▶ 올해 한국 영화계는 힘들었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고 좋아져야 한다. 우리가 잘 버텨서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창작하면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한국영화가 더 독창적인 색깔을 가지고 '기생충' 같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주목 받을 수 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런 영화의 에너지가 대중들에게도 힘이 되길 바란다. 저도 좋은 작품으로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