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무관중' 결정 이유, 코로나 말고 따로 있었나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1.10.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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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중 경기로 진행된 12일 한국-이란전에서 양팀 선수들이 경기 전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한국 축구대표팀이 지난 12일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A조 경기에서 홈팀 이란과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은 손흥민(29·토트넘)의 선제골에도 47년 만의 이란 원정 첫 승을 거두지 못해 아쉬움은 남겼지만 최종예선의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

이날 경기는 특이하게도 2무(無) 경기였다. 현지 사정으로 VAR(비디오 판독)이 존재하지 않았고 관중의 입장도 허용되지 않았다. 매일 200명 가량의 국민이 코로나19로 사망하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이란이 무관중 경기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초 한국과 경기를 앞두고 이란 축구협회가 이례적으로 여성 관중의 입장을 허용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 무관중 경기가 결정돼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12일 '알자지라'의 관련 보도는 이 같은 논란을 더욱 확산시켰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축구협회 하산 캄라니파르 사무총장은 "관중 입장을 허용할 경우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우려돼 내부적으로 무관중 경기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하미드 사자디 체육부 장관은 "AFC(아시아축구연맹)가 관중 입장을 금지시켰다"고 밝혀 혼선을 초래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무관중 경기를 결정했다는 이란 축구협회 사무총장의 발언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이날 한국과 이란의 경기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영화관에서 이란 축구 팬들이 관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AFC가 관중 입장 문제에 개입했다는 체육부 장관의 언급도 여성 관중 입장을 불허하기 위해 손쉬운 핑곗거리를 찾은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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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가운데)이 12일 이란 선수들 사이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란은 한국과 최종예선을 앞두고 최대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자디 스타디움에 1만 명 관중 입장을 허용할 것이며 이 중에는 여성도 포함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란이 여성 관중 입장 허용을 추진했던 배경에는 양성평등을 강조하고 있는 FIFA(국제축구연맹) 수뇌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란은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이끈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1989년 사망)가 집권한 뒤 여성 팬들의 축구장 입장을 불허해 왔다. 당시 호메이니를 비롯한 이슬람 혁명 주도세력은 축구 자체를 퇴폐적인 서구 문화로 낙인 찍었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아시아의 맹주였던 이란 축구는 1980년대 침체기에 접어 들었고 이 기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이 중동의 축구 강호로 부상했다.

이란 정부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뒤 처음으로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스페인과 경기에서 아자디 스타디움을 여성 축구 팬들에게도 개방해 화제가 됐다. 여성을 포함한 이란 축구 팬들은 이 경기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관전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여성 팬과 남성 팬은 서로 분리된 지역에 앉아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이후에도 이란은 몇 차례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을 허락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19년 10월 약 3500명의 이란 여성 팬들이 캄보디아와 축구 경기를 지켜봤다.

2018년과 2019년에 이란이 여성 축구팬의 축구장 입장을 허용한 것은 온건파 지도자인 하산 로하니(72)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현재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강경파 에브라힘 라이시(60)가 이란의 대통령이다.

이란의 무관중 경기 결정은 가뜩이나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서 힘겨운 경기를 펼쳐야 했던 한국 대표팀에 부담스러운 이란 팬들의 응원 함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축구장에서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휩싸여 있던 이란 여성 팬들에게는 경기 결과 이상으로 큰 실망감을 안겨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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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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