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가 야속했을 이강인... '제대로 된 시험대'가 간절하다

김명석 기자 / 입력 : 2022.09.1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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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3월 파울루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고 처음 A대표팀에 승선했던 이강인. /사진=대한축구협회
지난 2019년 3월이었다.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은 볼리비아·콜롬비아와의 국내 평가전 2연전을 앞두고 이강인(21·마요르카)을 '깜짝 발탁'했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 탈락 이후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그를 전격 발탁한 것이다.

발렌시아 소속이던 이강인의 나이는 불과 만 18세 20일이었다. 한국축구 역사상 역대 7번째로 어린 A대표팀 발탁이기도 했다. 당시 이강인은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국가대표를 이루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강인에게 벤투 감독은 A대표팀에 처음 발탁한 고마운 사령탑이었다.


동시에 이강인에게 벤투 감독은 '야속한' 감독이기도 했다. 처음 A대표팀에 승선했던 기쁨도 잠시, 3월 A매치 2연전에서 이강인은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만 18세에 불과했던 그에겐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자 큰 경험이 됐겠으나, 스페인에서 날아오고도 데뷔전조차 치르지 못한 채 다시 출국길에 오르는 건 그에겐 아쉬운 경험으로 남았다.

이후에도 이강인은 그해 9월과 10월, 1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모두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강인은 중요한 경기 때마다 외면을 받았다. 조지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지만, 월드컵 여정의 시작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던 투르크메니스탄과의 2차예선 첫 경기나 10월 북한 평양 원정, 11월 브라질과 평가전 모두 벤치만을 지켰다. 9~11월에 걸쳐 이강인이 월드컵 예선 등 중요한 경기에 출전 기회를 받았던 당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02위' 스리랑카전 선발, 그리고 레바논 원정 10분 출전이 전부였다.

2020년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진행된 원정 평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카타르와의 2연전에서 그에게 허락된 출전 시간은 각각 15분 안팎이었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3월 일본에서 열렸던 일본에선 익숙하지 않은 '원톱' 역할을 맡았다. 당시 이정협(강원) 조영욱(서울) 등 원톱 자원이 있는데도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최전방에 홀로 세웠다. 벤투호는 0-3 참패를 당했고, 이강인은 그 경기를 끝으로 벤투 감독의 외면을 받았다. 이강인 입장에선 '억울할 만한' 마지막 A매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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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3월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한일 친선경기에서 최전방 원톱 공격수로 나섰던 이강인(왼쪽). /사진=대한축구협회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흐른 9월. 이강인은 소속팀에서 보여준 맹활약을 통해 벤투 감독의 시선을 다시 사로잡았다. 레알 마드리드전을 포함해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소속팀 마요르카는 물론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로 떠올랐다. 그동안 이강인을 외면했던 벤투 감독도 23일 코스타리카, 27일 카메룬전 평가전 명단에 이강인의 오랜만에 이름을 올렸다. 카타르 월드컵을 앞둔 마지막 모의고사에 극적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다만 그래도 아직은 웃을 때가 아니다. 대표팀 소집 다음 관문은 평가전을 통해 충분한 출전 시간, 적절한 포지션 등 '제대로 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예 출전 기회를 받지 못하거나 제한적인 출전 시간, 그리고 지난해 한일전처럼 낯선 포지션 출전 등에 그치면, 월드컵을 향한 이강인의 도전도 허무하게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그동안 이강인이 직접 경험했던, 벤투 감독의 야속한 선택들이기도 했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에 소집된 선수들에게 최대한 기회를 주기 위해 '애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최근 6월 A매치 4연전에서도 무려 5명이 단 1분도 뛰지 못했을 정도다. 지난해 백승호(전북)가 2년 만에 재발탁됐을 때도 벤투 감독은 정작 2연전 모두 백승호를 기용하지 않았다. 이강인 역시도 이번 대표팀 소집이 꼭 출전 기회의 보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출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이강인의 노력, 그리고 벤투 감독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출전 시간뿐만 아니라 이강인이 잘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에서 시험대에 오르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해 한일전 제로톱처럼 이강인에겐 낯선 역할이라 제 기량을 선보일 수 없는 역할이 아니라, 현재 벤투호 전술 내에서 이강인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위치에서 기량을 선보일 기회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벤투호의 뒤늦은 이강인 활용법을 찾기 위한 길이자, 이강인에겐 애꿎은 원톱 기용 이후 인연이 끊겼던 마지막 A매치의 억울함을 털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이같은 기회를 받기 위해선 벤투 감독의 소집에 이강인이 답해야 한다. 앞서 벤투 감독이 기자회견을 통해 그의 수비력에 아쉬움을 표한 가운데, 대표팀 소집 후 훈련장에서부터 벤투 감독의 시선을 잡을 만한 변화와 노력 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벤투 감독이 '제대로 된 시험대'만 마련해준다면, 이강인의 극적인 카타르 월드컵 출전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강인이 가진 재능과 실력이라면 제대로 주어진 기회를 놓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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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9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조지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던 이강인.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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