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손준호일까' 中 축구굴기 실패→'부패 척결' 타깃→외국인 첫 체포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3.06.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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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호. /사진=대한축구협회
지난 5월 12일 중국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려다 중국 공안에게 연행돼 임시 구속(형사 구류)됐던 손준호(31·산둥 타이산)가 구속 수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 수사 전환은 중국 공안당국이 보강 수사를 통해 손준호를 사법처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만약 사법처리가 이뤄진다면 손준호의 선수 생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짙다.

손준호는 현재 민간인이 직무와 관련해 타인으로부터 재물을 불법수수했다는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의 소속팀 산둥은 감독과 일부 선수들이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준호의 중국 현지 에이전트인 저우카이쉬안도 비국가공작인원 수뢰 혐의로 체포돼 조사 중이다.


손준호 사건은 아직 실체가 확실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축구 실력 향상보다는 '돈 잔치'에만 열을 올렸던 중국 '축구굴기'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중국 정부의 축구계 부패 척결과 숙청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봐야 한다.

지난 2015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70)이 영국 방문 중 맨체스터시티 경기장을 찾아 세르히오 아구에로(35)와 찍은 사진이 세계 미디어에 공개됐을 때 중국 축구에 대한 기대감은 치솟았다.

월드컵 본선 진출과 월드컵 개최를 목표로 하는 축구 발전 지원책도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2016년 중국축구협회(CFA)는 2020년까지 7만 개의 축구장을 신설하고 5000만 명의 축구 선수를 키우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CFA는 아무리 늦어도 2050년까지 중국을 세계 축구의 강호로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함께 내놓았다.


하지만 중국 축구는 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은 축구에 대한 정부 지원과 기업의 막대한 투자에도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에서 새롭게 조성된 축구장도 목표에 턱없이 못 미치는 2만 7000개에 불과했다. 중국 축구의 경기력 향상과 축구 인프라 조성에 실패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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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열린 중국 FA컵 우한 싼전(파란 유니폼)과 산둥 타이산의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오히려 축구 굴기 기간 중에 호황을 누린 쪽은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CSL)였다. 하지만 CSL은 해외선수 영입에만 집중하는 기형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CSL 클럽들은 해외 선수 영입을 위해 무려 17억 달러(약 2조 1770억 원)를 지출했다.

CFA의 중국 축구 진흥 계획이 발표됐던 2016년에는 중국 프로축구 클럽들의 해외 선수 영입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해에만 중국 프로축구는 해외 선수 영입에 4억 5000만 달러(약 5764억 원)를 썼다.

이듬해 중국 정부와 축구협회는 CSL이 해외 선수들에게 돈을 펑펑 쓰는 리그가 아니라 중국 축구 유망주를 위한 리그가 돼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해외 선수 이적료에 세금을 부과했다. 4500만 위안(약 81억 원)이 넘는 이적료를 받고 중국 프로축구 팀에 입단하는 해외 선수에게 이적료의 100%에 해당되는 세금을 부과했다. 중국 선수도 2000만 위안(약 36억 원) 이상을 받고 다른 중국 프로축구 팀으로 이적할 경우 이적료의 100%에 달하는 세금을 내도록 조치했다.

해외 선수나 중국 선수의 이적료에 부과된 세금은 중국 유소년 축구 육성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돈은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이 때부터 이 세금이 부패한 중국 축구 고위 인사들에게 흘러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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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 대표팀(빨간 유니폼)이 지난 3월 뉴질랜드와 원정 평가전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결국 CFA는 2019년 천쉬위안(67)을 축구협회장으로 임명했다. 부두 노동자 출신으로 상하이 국제항만그룹 사장을 역임했고 그가 소유한 상하이 상강(현 상하이 하이강)을 2018년 CSL 우승으로 이끈 인물이다.

천쉬위안의 협회장 취임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당시까지 중국 축구협회장은 주로 중국 정부의 추천을 통해 임명됐다. 한 마디로 축구협회장 자리는 축구에 큰 관심이 없는 인사가 잠깐 머물다 가는 자리로 인식됐었다.

하지만 CFA는 CSL 구단들의 재정건전성 확보와 중국 국가대표팀의 발전을 조화롭게 도모하기 위해 축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기업가 출신의 천쉬위안을 축구협회장으로 선택했다.

그는 취임일성으로 "축구는 고결한 스포츠이니 만큼 돈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축구계 고위 인사들이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부정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천쉬위안의 재임기간은 중국 축구에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우선 2020년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사태로 몇몇 중국 프로축구 구단이 도산했다. CSL에 소속된 구단들 중에는 부동산 개발회사가 소유한 팀들이 거의 50%에 육박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특히 재정적인 손실을 많이 입었던 부동산 개발회사들은 축구 팀 운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중국 축구 대표팀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면서 천쉬위안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설상가상으로 2022년 11월에는 중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었던 리티에(46)가 부패혐의로 체포된 뒤 천쉬위안도 협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중국 공안당국은 천쉬위안은 물론 다수의 축구협회 고위인사들에 대해 강도 높은 감찰 조사를 실시하는 등 숙청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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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호(오른쪽)의 대표팀 경기 모습. /사진=뉴스1
이런 중국 공안당국의 축구계에 대한 부패척결 작업에 프로축구단에 대한 감찰 조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고 그 가운데 타깃이 된 한 팀이 손준호가 뛰고 있던 산둥 타이산이었다. 산둥은 2021년 CSL 우승팀으로 산둥성 최대의 전기공급 기업인 루넝이 소유하고 있으며 최강희(64)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산둥 구단 홈페이지에는 손준호의 프로필과 사진이 삭제됐다. 손준호는 중국 축구계에 대한 고강도 사정 작업이 이뤄진 가운데 부패사건 연루 혐의로 체포된 첫 외국인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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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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