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역사' 日 추억의 야구장이 사라진다... 시민 22만명·무라카미 하루키도 '강력 반대'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입력 : 2023.09.2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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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 진구 구장 전경. /AFPBBNews=뉴스1
일본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4)는 29세이던 1978년 도쿄의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야구 경기를 관전하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이렇게 탄생했다.

마라톤 마니아로도 유명한 무라카미는 메이지 진구 구장이 위치해 있고 나무가 울창한 메이지 진구 가이엔(外園)에서 조깅을 자주 즐겼다. 그에게 이 곳은 특별했다. 무라카미가 올해 2월 메이지 진구 구장 신축을 포함한 메이지 가이엔 개발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에 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25일 현재 탄원서 서명에 참여한 도쿄 시민은 22만 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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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2021년 모습. /AFPBBNews=뉴스1
일본인들이 메이지 가이엔 개발계획에 반대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환경 문제와 관련이 있다. 메이지 가이엔은 수백 그루의 나무들로 가득한 도쿄 도심의 공원이었다. 무라카미와 같이 이 곳에서 조깅을 하거나 휴식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지 가이엔 재개발이 시작되면 상업시설이 들어설 부지 확보를 위해 700그루의 나무가 제거돼야 한다. 도쿄도(東京都)는 더 많은 나무를 주변에 심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재개발 때문에 이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하다는 게 환경주의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고층 건물이 이 곳에 지어질 경우 돌풍이 불어 주변 주택가와 새롭게 조성될 경기장 시설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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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진구 가이엔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2월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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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 가이엔 개발 반대 시위자가 들고 나온 피켓. /AFPBBNews=뉴스1
메이지 일왕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메이지 신사 외곽에 위치한 메이지 가이엔은 원래 상업시설 건설에 제한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 지역은 높이 15m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의 주경기장 신축비용 등 올림픽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도쿄도는 규정을 바꿔 고도제한 높이를 80m까지 늘렸다.

도쿄도는 이 지역 신축 건물의 고도제한을 완화해 부동산 개발업체에게 부지를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었다. 메이지 가이엔에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부동산 개발업체도 큰 개발 이익을 기대하게 됐다. 190m와 185m 높이의 상업시설 2개와 함께 대형 호텔과 쇼핑몰이 메이지 가이엔에 지어질 수 있는 배경이 된 셈이다.

하지만 메이지 가이엔 개발계획의 논란은 단순히 상업주의와 환경 문제와의 충돌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무라카미를 포함한 일본 야구 팬들의 추억과 낭만이 담겨 있는 메이지 진구 구장이 이 개발계획 안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럭비장이 있는 곳에 야구장을 신축하고, 럭비장은 현 야구장 위치에 지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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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열린 대학야구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1926년 개장해 올해로 9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지 진구 구장은 도쿄 6대학 리그전이 펼쳐지는 장소이자 일본 프로야구 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 구장이다. 도쿄를 상징하는 야구장인 메이지 진구 구장은 1934년 미국의 베이브 루스가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함께 일본 투어를 할 때 경기를 치른 역사성을 가진 공간이기도 했다.

일본 야구 팬들은 메이지 진구 구장을 허물고 경기장을 신축하는 것은 이 같은 역사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더욱이 팬들은 지난 2014년 내진 설계를 포함한 메이지 진구 구장의 리노베이션이 실시돼 경기장을 허물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메이지 진구 가이엔에 새롭게 들어설 상업시설의 부지 확보를 위해 메이지 진구 구장이 희생양이 됐다는 게 대다수 도쿄 시민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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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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