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2024년 새해를 뜨겁게 달군다 '강원에서도, 아시안컵에서도...'

박정욱 기자 / 입력 : 2024.01.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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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오른쪽)와 고다이라 나오(일본)가 22일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만나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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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오른쪽)와 고다이라 나오가 22일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만나 마스코트 뭉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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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뜨거운 우정의 경쟁을 펼쳤던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상화(34)와 고다이라 나오(37·일본)가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강원 2024)에서 6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이상화는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공동조직위원장으로, 고다이라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롤모델로 초청돼 지난 22일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 공동취재구역(믹스드존)에서 재회했다. 6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경쟁했던 바로 그 경기장이었다. 당시 두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라이벌로서 금메달 경쟁을 벌였다. 30살을 넘어 전성기를 연 고다이라가 금메달을 따냈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은퇴 무대로 삼았던 이상화는 3연패를 달성하지 못하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둘은 치열한 레이스를 펼친 뒤 언제 경쟁했냐는 듯이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 축하와 위로를 주고받았다. 올림픽의 '경쟁과 우정'을 상징하는 그 장면은 중계 화면으로, 동영상으로, 또 사진으로 전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큰 울림을 안겼다. 이들은 은퇴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갔다. 스포츠 라이벌 관계의 아주 좋은 모범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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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강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대회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정희단(왼쪽부터)과 금메달을 목에 건 네덜란드의 앙엘 데일먼, 동메달을 차지한 일본의 와카 사사구치가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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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단. /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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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2024에서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경쟁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라이벌 관계는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차세대 주자 정희단(17·선사고)과 네덜란드 빙속의 미래 앙엘 데일먼(17)이다. 정희단은 지난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월드컵 2차 대회 여자 500m에서 우승했고, 데일먼은 지난해 ISU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00m 은메달과 1000m 금메달을 딴 유망주다. 2007년생인 두 선수는 22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대결을 펼쳤다. 데일먼이 39초28로 금메달, 정희단이 39초64로 은메달을 각각 차지했다. 정희단은 15조 아웃코스에서 먼저 레이스를 마친 뒤 17조의 데일먼에 뒤져 2위로 밀려나고서도 밝은 표정으로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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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아.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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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피겨 선수 시마다 마오. /사진=국제빙상경기연맹, 뉴시스
강원 2024에서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라이벌전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에 도전하는 2008년생 동갑내기 한일 차세대 피겨 스타 신지아(영동중)와 시마다 마오(일본)다. 과거 1990년생 동갑내기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일본)의 한일 피겨 라이벌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신지아와 시마다는 국제대회마다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신지아가 도전자의 입장이다. 그는 2022년 12월에 열린 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시마다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지난해 3월 ISU 세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시마다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 달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로 나섰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역전을 허용하며 역시 은메달을 따냈다. 신지아는 안정감과 우아한 연기를 앞세우고, 시마다는 트리플 악셀과 4회전 점프 등 고난도 기술을 구사한다. 두 선수의 이번 대회 메달 경쟁은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28일 쇼트프로그램, 30일 프리스케이팅으로 이어지며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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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일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에서 북한 조를 4-1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는 전지희(왼쪽)와 신유빈.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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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20·대한항공)과 전지희(32·미래에셋증권)는 한국 여자 탁구의 신구 세대를 대표하는 선수다. 둘은 신구 조화를 이루는 '띠동갑' 여자복식 파트너이면서 한국 여자 탁구의 최고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이기도 하다. 두 선수는 함께 복식 조를 이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1년 만에 금메달을 합작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북한의 차수영-박수경 조와 가진 결승전 '남북 대결'에서 4-1로 승리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복식의 이철승-유승민 조, 여자 복식의 석은미-이은실 조 이후 21년 만의 금메달 영광을 안았다. 세계 랭킹 1위의 최강 여자 복식 콤비를 이루는 두 선수는 지난 20일 카타르 도하의 루사일 스포츠 아레나에서 열린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컨텐더 도하 2024' 여자 단식 결승에서 맞닥뜨렸다. 여기서는 전지희가 신유빈과 접전 끝에 4-3(8-11 11-9 14-16 9-11 18-16 11-8 11-5)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신유빈이 게임스코어 3-1로 앞서나가 우승을 눈앞에 두는 듯했다. 5번째 게임에서도 듀스 접전에서 16-15로 앞섰지만 내리 3점을 내주면서 추격을 허용했다. 이후 전지희가 그 기세를 살려 6, 7게임을 내리 따내며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전지희는 앞서 한 차례 국제대회서 단식 맞대결을 펼쳤던 2021년 WTT 스타 컨텐더 도하 8강전에서도 신유빈을 3-1로 물리쳤다. 단식에서 치열한 승부를 펼친 두 선수는 여자 복식 결승에서는 독일의 아네트 카우프만-자비네 빈터 조를 3-0(11-8 11-5 11-4)으로 완파하고 우승을 합작해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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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월 20일 카타르 도하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2-2로 비긴 뒤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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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과 전지희가 치열한 탁구 라이벌전을 펼친 카타르 도하에서는 같은 날(1월 20일)에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요르단과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을 치렀다. 한국은 전반 9분 손흥민(토트넘)의 페널티킥(PK)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전반 37분 박용우(알 아인)의 자책골로 동점을 허용하고 전반 추가 시간 야잔 알나이마트에게 역전골마저 내줘 1-2로 뒤진 채 후반 막판까지 답답한 흐름 속에서 끌려갔다. 다행히 후반 추가 시간 황인범(즈베즈다)의 슛에 이은 상대 자책골로 가까스로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국은 요르단과 1승 1무(승점 4)로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차(요르단 +4, 한국 +2)에서 밀려 조 2위를 유지했다. 한국은 25일 오후 8시 30분에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치르는 김판곤 감독의 말레이시아와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다득점으로 승리해야 조 1위를 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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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라크전 실점 장면. /AFPBBNews=뉴스1
'숙명의 라이벌' 일본은 지난 19일 이라크와 조별리그 D조 2차전에서 1-2로 패했다. 일본은 24일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와 3차전에서 3-1로 이겼지만 승점 9의 이라크에 밀려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상황이 묘하다. 한국이 E조 1위를 차지할 경우, 상대는 D조 2위 일본이다. 아직 한국도 조 2위에 머물러 있어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당초 각 조 최강자인 한국과 일본이 모두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뒤 결승에서 치열한 한 판 맞대결을 펼치는 시나리오를 그렸지만 현실은 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 축구의 맞대결 시기를 계속 화두에 올리는 것은 '영원한 라이벌' 관계이기 때문이다.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한국은 일본과 역대 A매치 전적에서 42승 23무 16패로 앞서있지만, 2020년대 들어 가진 최근 2경기(2021년 친선경기, 2022년 E-1 챔피언십)에서는 모두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한국이 이대로 E조 2위로 조별리그를 마친다면,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한 F조 1위 사우디아라비아(승점 6, 2승, 득실차 +3)와 만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일본과 16강 조기 라이벌전은 사라지고, 이후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이란과 '디펜딩 챔피언'인 개최국 카타르도 피해갈 수 있다. 하지만 사우디를 넘어서면 8강에서 호주를 만나게 된다. '손흥민의 눈물'로 기억되는 2015년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서 통한의 연장 패배를 안겼던 팀이다. 어느 쪽으로 가든 또 다른 라이벌, 맞수와 대결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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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한국-요르단전 종료 후 모습.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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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종목에서도, 탁구에서도, 축구에서도, 그 어떤 종목에서도 상대하기 어렵고 껄끄러운 상대를 모두 피해갈 수는 없다. 라이벌은 16강이든 결승이든, 중요한 승부의 고비에서 언제나 만나게 된다. 라이벌의 운명이다. 선의와 우정의 관계이든 앙숙이든 경쟁에서 이겨야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설 수 있다.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 다음이다. 그렇게 경쟁을 매개로 해서 훈련과 교류, 대회 참가 등 많은 과정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쌓아가게 된다. 이상화와 고다이라처럼. 승부의 세계에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것은 원수가 아니라 언제나 '라이벌'이다. 2024년 새해 첫 달부터 라이벌 열전이 여느 때보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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