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덜 쉬고 경고는 10장... 호주와 8강전 '사중고'를 이겨내야 한다

박정욱 기자 / 입력 : 2024.01.3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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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성(가운데, 9번)이 31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 2023 아시안컵 16강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9분 만에 극적 동점골을 넣은 뒤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큰 산을 하나 넘었다. 하지만 그 앞에는 결코 탄탄대로가 있지 않다. 더 높고 험한 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겨우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더 어려운 여정이 남아 있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어렵게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 토너먼트의 첫 관문을 뚫었다. 한국은 31일(한국시간) 새벽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대회 16강전에서 연장까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조현우(울산 HD)의 두 차례 선방에 힘입어 4-2로 승리해 8강에 진출했다. 후반 들어서자마자 압둘라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허용해 계속 끌려가는 힘겨운 경기를 펼쳤지만 후반 추가시간 10분 가운데 9분을 지나면서 설영우(울산)의 헤더 패스에 이은 조규성(미트윌란)의 헤더 극장골로 극적인 동점을 이뤄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간 뒤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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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한국의 4-2 승리를 확정하는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황희찬(위)이 골을 성공시킨 뒤 두 차례 선방을 펼친 골키퍼 조현우와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96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이후 8개 대회 연속 8강 진입이다. 아시아의 축구 강호다운 꾸준한 성과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했다. 그 사이 2015년 호주 대회에서 한 차례 결승에 올라 개최국 호주에 1-2로 패하며 준우승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한국은 1956, 1960년 제1, 2회 아시안컵에서 2연패한 후 단 한 차례도 정상에 다시 서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64년 만에 정상 탈환에 도전하고 있다.

승부차기 승리는 짜릿한 성취감을 안겨주지만, 64년 묵은 아시안컵 우승의 염원을 풀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쉽지 않은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첩첩산중이다.

우선 8강 상대인 호주부터 넘어야 한다. 한국은 호주와 2월 3일 오전 0시 30분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4강 진출을 다툰다. 한국은 이틀 휴식 뒤 경기다. 호주는 2015년 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에 아픔을 안겼던 상대다. 한국으로서는 9년 만의 설욕전이다. 호주와 8강전에서 한국에 유리한 점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휴식 시간으로 큰 체력 부담을 안고 싸워야 한다. 호주는 지난 28일 오후 8시 30분에 가진 인도네시아와 16강전에서 4-0 대승을 거두고 8강에 선착했다. 한국보다 이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쉬면서 체력을 비축한다.


한국은 더욱이 사우디와 16강전에서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치렀다. 체력 부담이 크다. 또 호주는 AFC 소속이지만 유럽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한다. 신장과 체격 등에서도 한국 선수보다 우위에 있다. 한국은 호주 장신 수비수의 느린 스피드를 역이용하는 빠른 공격을 구사하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강한 격돌이 예상된다.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3위다. 호주는 25위. 역대 상대 전적도 8승11무9패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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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대표팀 감독. /사진=뉴스1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대표팀 감독은 사우디와 16강전 승리 뒤 "휴식일을 더 갖기 위해 조 1위를 하고 싶었다. 많은 분이 일본을 피하려고 조 2위를 한 것이냐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조 2위라서 이런 스케줄을 받아들여야 했다"며 "호주가 우리보다 53시간을 더 쉬는데 긴 시간이다. 우리는 오늘 120분에 승부차기까지 했다. 하지만 오늘 승리가 팀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둘째, 여전히 답답한 공격의 흐름을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공격 활로를 찾아야 한다. 손흥민은 윙어로 나서도, 원톱으로 이동해서도 상대 집중 수비에 시달리면서 시원한 골 소식을 들려주지 못하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2골을 넣었지만 모두 페널티킥이었다. 필드골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좋은 골 기회에서 때린 슛은 골문을 비켜가고 상대 수비에 막히고 있다. 이중·삼중의 압박 수비에 고군분투하면서 힘겨운 경기를 펼치고 있다. 그는 '클린스만호'의 조별리그 저조한 경기력에 대한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모습이다. 특유의 밝은 표정과 미소를 잃었다. 언론과 여론의 비판·비난에 시달리는 대표팀과 후배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공개적으로 자제를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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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손흥민.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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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성을 꼭 안아준 손흥민(가운데). /사진=뉴시스
조규성이 사우디와 16강전에서 기다렸던 골을 신고하면서 조별리그에서 부진과 그에 따른 비난으로 침체됐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씻어냈다. 황희찬(울버햄튼)도 부상에서 복귀했다. 공격진은 새로운 활기를 찾고 있다. 그래도 사우디전에서 22개의 슛을 시도해 고작 1골에 그쳤다. '빈수레 축구'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손흥민의 시원한 골 폭발이 더해져야 8강을 넘어 더 높은 곳으로 진격할 수 있다.

셋째, 불안한 수비는 여전히 숙제다. 한국은 사우디와 16강전에서 그동안 내세웠던 포백 대신 스리백으로 바뀐 수비 전형을 처음 들고 나섰다. 조별리그에서 6실점을 한 수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비상책이었다. 또 윙백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단일 대회 단기전, 특히 토너먼트 경기에 들어 새로운 수비 시스템을 구사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실험이다. 평소 훈련에서 준비를 해 온 것을 꺼내든 것이겠지만, 평가전 등에서 제대로 가동해보지도 않던 미완의 시스템을 실제 경기에서, 그것도 중요한 토너먼트 경기에서 전격적으로 들고 나왔다는 것 자체가 클린스만호의 불안한 수비력을 대변한다. 사우디전 스리백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했다.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사우디와 16강전까지 모든 경기에서 골키퍼의 잇딴 선방에도 불구하고 클린 시트 없이 계속 실점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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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전 승리 후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
불안한 수비는 수비라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 미드필더가 중원 싸움에서 밀리면서 수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상대의 강한 압박에 휘말려 중원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공수 밸런스를 잃은 채 제대로 빌드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공수 전환이나 공격의 흐름도 원할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넷째, 경고 누적이다. 한국은 16강까지 10장의 옐로카드를 받았다. 다행히 10명의 선수에 모두 분산돼 호주와 8강전에도 경고 누적에 따른 결장 없이 전력을 쏟아부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10장의 경고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8강전까지는 서로 다른 경기에서 경고를 두 차례 받으면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어떤 선수라도 호주와 8강전에서 두 번째 경고를 받으면 요르단-타지키스탄의 8강전 승자와 만나는 준결승전에는 뛸 수 없다. 호주전에서 강한 압박 수비를 펼치는 데 걸림돌이다. 8강, 4강 진출이 아니라 우승을 바라보는 한국으로서는 폭탄을 안고 싸워야 하는 셈이다. 호주전에서 경고를 받지 않고 이겨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8강전을 마친 뒤에는 경고는 사라지고 초기화한다. 4강전부터는 경고 부담 없이 마음껏 수비를 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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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받는 손흥민(왼쪽)/ 사진=뉴스1
그동안 경고를 받은 10명은 모두 핵심 선수들이다. 바레인과 조별리그 1차전에서 손흥민 조규성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박용우(알아인) 이기제(수원 삼성) 등 5명이 무더기로 경고를 받았고 요르단과 2차전에서 황인범(즈베즈다) 오현규(셀틱), 말레이시아와 3차전에서 이재성(마인츠)이 옐로카드를 각각 안았다. 사우디와 8강전에서는 이강인(파리 생제르맹)과 김영권(울산)이 경고를 더했다.

부족한 휴식에 따른 체력 부담, 답답한 공격 흐름, 수비 불안, 10장의 경고 누적까지. '사중고'에 시달리는 한국이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 정상에 다시 서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모든 난관과 역경을 전부 이겨내야만 64년을 기다린 숙원을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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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전 승리 후 기뻐하는 클린스만 감독(가운데)과 한국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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