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너먼트의 묘미 '승부차기', 아시안컵 8강 대진의 세 자리를 완성했다

박정욱 기자 / 입력 : 2024.02.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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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한국의 4-2 승리를 확정하는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황희찬(위)이 골을 성공시킨 뒤 두 차례 선방을 펼친 골키퍼 조현우와 포옹하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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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이란. /AFPBBNews=뉴스1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이 8강 대결로 좁혀졌다. 이란이 지난 1일 새벽 1시(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리아와 2023 아시안컵 마지막 16강전에서 연장까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8강에 막차로 합류했다. 이로써 2023 아시안컵 8강 대진은 타지키스탄-요르단(2일 오후 8시30분), 한국-호주(3일 오전 0시30분), 일본-이란(3일 오후 8시30분), 카타르-우즈베키스탄(4일 오전 0시30분)으로 확정됐다.

# 우승 후보끼리 '빅매치'가 곧바로 펼쳐진다


우승후보로 손꼽히던 '4강' 한국(FIFA랭킹 23위), 일본(17위), 이란(21위), 호주(25위)가 모두 8강에 올라 곧바로 맞대결을 펼친다. 여기서 두 팀만이 살아남아 준결승에 진출한다. 다른 두 팀은 반드시 짐을 싸야한다. 한국은 호주와, 일본은 이란과 각각 격돌한다.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고 해도 무방한 우승 후보끼리 맞붙는 빅매치다. 토너먼트의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한 두 팀은 준결승에서는 만나지 않는다. 한 고비를 더 넘겨 결승에 진출해야 비로소 최후의 대결을 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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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골 세리머니. /AFPBBNews=뉴스1
한국은 조별리그 E조에서 예상 밖에 조 2위(1승 2무)로 16강에 오른 뒤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만나 0-1로 뒤지던 후반 99분 조규성(미트윌란)의 헤더 극장골로 극적인 동점을 이룬 뒤 연장을 거쳐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힘겹게 8강에 올랐다. 고전의 연속이다. 호주는 B조 1위(2승 1무)로 16강에 진출한 뒤 인도네시아를 4-0으로 완파하고 한국보다 이틀 먼저 8강에 선착했다. 걸림돌 없이 순항한 데다 한국보다 53시간 더 많은 휴식 시간을 가져 체력 우위 속에 8강 대결을 맞는다. 한국으로서는 '손흥민의 눈물'로 기억되는 2015년 대회 개최국 호주와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한 아픔을 9년 만에 설욕할 기회다. 한국은 1956, 1960년 제1, 2회 아시안컵 2연패 이후 64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고 있다.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4회) 일본도 한국처럼 뜻밖에 D조 2위(2승 1패)로 밀려났다. 이라크에 1-2로 일격을 당한 탓이다. 바레인과 16강전에서는 3-1로 무난한 승리를 거두고 8강에 합류해 우승 후보의 면모를 되찾았다. 이란과 8강전은 2011년 이후 13년 만의 우승 도전에 가장 큰 고비다. 이란은 조별리그 C조에서 3전 전승을 거두고 1위를 차지했지만 시리아와 16강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힘겹게 승리를 안았다. 1968, 1972, 1976년 대회 3연패를 달성한 후 48년 만에 네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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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일본 대표팀. /AFPBBNews=뉴스1
직전 2019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대회에서 첫 우승한 '디펜딩 챔피언'이자 개최국인 카타르(58위)도 우승 후보 가운데 하나다. 3전 전승으로 A조 1위를 차지한 뒤 16강에서 팔레스타인을 2-1로 물리치고 8강에 진출해 대회 2연패를 노린다. 카타르의 8강 상대 우즈베키스탄(68위)은 B조에서 호주에 이어 2위(1승 2무)를 차지했고, 16강전에서 태국을 2-1로 꺾었다. 2011년 카타르 대회에서 4위가 아시안컵 최고 성적이다.

요르단(87위)은 조별리그 E조에서 한국과 대결에서 앞서가다가 2-2로 비긴 저력의 팀이다. 조 3위(1승 1무 1패)로 16강에 오른 뒤 D조 1위(3승) 이라크와 대결에서도 1-2로 밀리다가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골과 결승골을 연거푸 폭발하며 3-2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8강에 올랐다. 타지키스탄(106위)은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 처음 나서 A조 2위(1승 1무 1패)를 차지한 데 이어 16강전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전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휘하는 UAE를 만나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8강까지 진출하는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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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 승부차기에서 두 차례 슛을 막아낸 골키퍼 조현우(21번)와 함께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사진=뉴시스
# 승부차기가 8강 대진의 세 자리를 완성했다

2023 아시안컵 16강 토너먼트의 첫 관문에서는 세 차례의 승부차기가 펼쳐졌다. 승부차기가 8강 대진의 세 자리를 완성했다. 우승 후보 한국과 이란도, '돌풍'을 몰고다니는 타지키스탄도 승부차기를 통해 8강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승부차기는 토너먼트 녹아웃 승부에서 짜릿한 묘미를 선사하는 장치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연장까지 무승부면 재경기를 하거나 동전 던지기를 하고, 공동 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승부차기는 1970년대 들어 국제 무대에 등장했다. 유럽 무대에서는 1976년 유고슬라비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1976)에서 처음 채택됐고, 체코슬로바키아가 서독과 결승에서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당시 체코의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선 안토닌 파넨카가 그 유명한 '파넨카 킥'으로 긴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승부차기는 승자에게는 더할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을 주지만, 패자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열패감을 안겨준다. 승부차기를 '축구의 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제프 블라터 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처럼 '재앙'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승부차기는 공식 기록에는 무승부로 처리된다.

승부차기에는 키커의 자신감과 두려움, 골키퍼의 순간 대응력 사이에서 긴장감과 신경전이 교차한다. 키커의 성공 확률이 분명히 훨씬 높지만, 그만큼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골키퍼는 선방하면 '영웅'이 된다. 오히려 골키퍼가 심리적으로 더 유리한 싸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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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타지키스탄 선수들(흰색 유니폼). /AFPBBNews=뉴스1
이번 2023 아시안컵에서도 승부차기의 묘미가 그대로 작동했다.

가장 먼저, '돌풍의 주역' 타지키스탄이 '벤투호' UAE를 승부차기에서 5-3으로 물리치고 첫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서 8강 진출까지 이뤄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우즈베키스탄 등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축구 변방 106위'의 대반란이었다. 승부차기가 타지키스탄 축구의 새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셈이다. UAE는 타지키스탄의 돌풍에 휘말려 2015, 2019년 대회에서 연속해 4강에 오른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타지키스탄은 승부차기에서 키커 5명 모두 성공한 반면, UAE는 2번 키커 카이우 카네두가 실축하면서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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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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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사진=뉴시스 제공
두 번째 승부차기의 주인공은 한국이었다. 사우디와 16강전에서 후반 시작하자마자 압둘라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허용해 계속 끌려가는 힘겨운 경기를 펼쳤지만 후반 추가시간 10분 가운데 9분을 지나면서 설영우(울산 HD)의 헤더 패스에 이은 조규성의 헤더 극장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간 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조현우(울산)의 두 차례 선방에 힘입어 승리를 안았다. '캡틴' 손흥민(토트넘)과 김영권(울산) 조규성 황희찬(울버햄튼)이 승부차기 키커로 차례로 나서 모두 정확한 슛을 성공시켰다.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승부차기로 웃고 울었다. 1972년 태국 대회에서 이라크와 조편성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처음 승부차기를 가져 2-4로 패했지만 태국과 준결승에서는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2-1로 이겨 결승에 진출했다. 이란과 결승에서는 1-2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가져 아쉬운 패배를 안았다. 결승 상대는 사우디였다. 당시 한국은 UAE(1-0), 일본(2-0), 카타르(3-2), 이란(3-0), 중국(2-1)을 연파하고 기세좋게 결승에 올랐지만 사우디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져 또 한 번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 사우디와 승부차기 승리는 36년 전의 설욕전이었다. 사우디는 아시안컵에서 승부차기에서 4차례 승리만을 안다가 이번에 첫 패배의 쓰라림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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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1월 31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팅센터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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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사진=뉴시스
한국의 아시안컵 승부차기 역사의 하이라이트는 2007년 동남아 4개국 대회다. 조별리그에서 2승 1무를 기록한 뒤 8강 토너먼트에서 가진 세 경기에서 모두 승부차기를 치렀다. 이란과 8강전에서는 0-0으로 비긴 뒤 4-2로 이겼지만, 이라크와 준결승전에서는 0-0 뒤 승부차기에서 3-4로 졌다. 이어 일본과 3-4위전에서도 0-0 뒤 승부차기를 가져 6-5로 이겨 3위로 대회를 마쳤다. 당시 골키퍼는 '주장' 이운재였고, 키커로 나선 조재진 오범석 이근호 이호 김진규 김치우가 모두 성공했다.

한국은 2011년 카타르 대회에서도 일본과 준결승에서 만나 2-2로 비긴 뒤 또 승부차기를 겨뤘다. 이때는 0-3으로 완패했다. 키커로 나선 구자철 이용래 홍정호가 모두 실패했다. 손흥민이 이번 대회 사우디전에서 13년 만에 가진 아시안컵 승부차기 뒤 박지성을 소환했던 바로 그 대회다. 박지성과 손흥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뛴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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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이란 선수들. /AFPBBNews=뉴스1
이번 대회 16강전에서 마지막으로 승부차기를 치른 이란은 강호의 면모를 과시하지 못하고 시리아에 고전하며 진땀승을 거두고 일본과 '빅매치'를 벌인다. 후반 페널티킥을 헌납해 1-1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했던 이란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가 시리아 두 번째 키커의 슛을 막고, 이란 5명의 키커가 모두 슛을 성공시켰다.그러나 전반 34분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주축 공격수 메흐디 타레미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해 일본과 8강전에 나설 수 없는 악재도 안았다. 타레미는 시뮬레이션으로 한 차례 옐로카드를 받은 뒤 후반 46분 드리블하는 상대를 거친 파울로 막았다가 두 번째 경고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8강전 이후에도 또 어떤 승부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축구공은 둥글고, 그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승부차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상당히 운이 따라야하는 승부인 만큼 축구팬과 온 국민의 마음을 졸이지 않도록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고 시원한 승전보를 안겨줬으면 한다. 만약 승부차기를 한다면 웃는 쪽은 언제나 '태극전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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