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클린스만 감독, 유임이냐 경질이냐... 15일 축구협회 전력강화위 화상 참석 결정

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2.1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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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공항 귀국 인터뷰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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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잃지 않는 클린스만 감독. /사진=뉴시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한국에 뼈아픈 상처를 줬던 '레전드 공격수' 위르겐 클린스만(60·독일)이 30년 뒤 다시 한 번 한국 축구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15일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2024년 제1차 전력강화위원회를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마이클 뮐러 위원장을 비롯해 클린스만 감독 외 위원 7명까지 총 9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다만 클린스만 감독이 이끈 축구 대표팀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평가하는 자리에 당사자인 클린스만 감독은 화상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이날 오전 10시 축구회관 대한축구협회 소회의실에서 김정배 상근부회장, 장외룡, 이석재, 최영일 부회장,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 정해성 대회위원장, 이정민 심판위원장, 이임생 기술위원장, 황보관 기술본부장, 전한진 경영본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인 출신 임원회가 열렸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정가연 협회 홍보실장에 따르면 "오늘 회의는 카타르 아시안컵에 대한 리뷰를 시작으로 대회의 전반적인 사안에 대한 자유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이후 이번주 내로 열릴 전력강화위원회가 있을 것이고 최종적인 결정사항은 조속히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유임이든 경질이든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가 결정될 중요한 자리지만 그는 아시안컵을 마친 뒤 국내로 돌아왔지만 지난 10일 저녁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을 향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지만 전력강화위원회와 같은 공식적 일정에 비대면으로 참가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축구 팬들은 분노하고 있다.

한국 축구는 1960년 대회 이후 64년 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4강 진출은 성과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클린스만호는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 5대 리그를 호령하는 공격-미드필더-수비의 핵심 선수들이 있었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득점왕을 차지했고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은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나폴리에 33년 만에 우승을 안기고 최고 수비수로 등극한 뒤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했다. 이강인도 프랑스 리그앙 최강팀 파리생제르맹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도 올 시즌 EPL에서 10골을 작렬하고 있다. 이밖에도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불과 1년 2개월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을 경험한 아시아의 강호로서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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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FC 아시안컵 4강 탈락 후 아쉬워하는 손흥민(오른쪽)과 미소를 띄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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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탈락을 앞두고 괴로워하는 선수들과 클린스만 감독.
그러나 클린스만호는 대회 초반부터 졸전을 거듭했다. 조별리그에서 E조에 속한 한국은 바레인에 승리를 거뒀지만 요르단,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무승부에 그쳤다. 3경기를 치르며 한국은 무려 6골을 헌납했다.

결국 조 2위로 16강에 오른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에서 0-1로 끌려갔으나 후반 추가시간 조규성(미트홀란)의 헤더 동점골로 연장으로 향했다. 승부차기 끝에 4-2 승리, 가까스로 8강에 진출했다. 호주를 만난 한국은 다시 한 번 끌려갔다.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황희찬의 동점골로 연장으로 향했고 손흥민의 극적인 프리킥골이 나오며 4강행을 확정했다.

출혈이 너무도 컸다. 2경기 연속 극적인 승리로 축구 팬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지만 경기 막판까지 답답함을 감출 수 없는 경기들이었다. 확연한 전술이 보이지 않은 탓이다. 최고의 선수들로도 답답함을 이어갔고 선제골까지 내줬다. 손흥민과 이강인, 황희찬 등을 집중 봉쇄하던 상대 수비의 체력이 빠진 추가시간에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앞세워 한국 축구의 명줄을 연명케 한 경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8강 막판 김민재가 경고 누적으로 빠졌고 요르단과 4강전에서 연이은 실점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은 87위 요르단에 역대 전적에서 3승 3무로 앞서 있었는데 사상 처음으로 패배를 당했다. 더 황당한 건 이 팀을 상대로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작 고개를 숙인 건 선수들이었다. 이강인은 대회를 마치고 지난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축구팬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기대와 성원에 이번 아시안컵에서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주장 손흥민도 "제가 주장으로서 부족했다. 팀을 잘 이끌지 못했던 거 같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말 많은 사랑을 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대한민국 축구선수임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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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전력의 핵심이었던 김민재(왼쪽부터), 황희찬, 손흥민.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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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인터뷰에서의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을 듣기 위해 몰린 취재진. /사진=뉴스1
김민재 또한 "긴 대회 동안 같이 고생해 주신 선수들, 코치진들, 그리고 항상 응원해 주신 팬분들에게 죄송하고 감사드린다.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팬분들이 응원해 주시는 만큼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국가를 대표해서 경기를 나가는 선수로서 큰 책임감, 국가대표팀에서 경기를 뛸 수 있도록 더 발전해야겠다고 느낀다. 응원해 주시는 만큼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대회 기간 많은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최고의 선수들을 이끌고 대회 내내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인 클린스만 감독은 달랐다. 그는 "이번 대회의 결과가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긍정적인 부분들도 있었다"며 "우리가 좀 더 성장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팀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선수로선 EPL 최고의 선수,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상, 분데스리가 득점왕 등에 올랐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고국에 우승까지 안긴 전설 그 자체였지만 감독으로선 그 평가가 갈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고국을 3위까지 올려놨지만 훗날 지휘봉을 넘겨받아 장기집권했던 요아힘 뢰브 감독의 공이 컸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지도자로서 경력만 보더라도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경질됐고 팀의 레전드 필립 람으로부터 "전술이 없고 체력 단련에만 관심이 있다"고 저격당하기도 했다. 헤르타 베를린에서도 단 10주 만에 논란을 일으키며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렇기에 지난해 2월 축구협회가 그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을 때부터 논란이 일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에 그쳤던 클린스만은 이후 7연승을 달렸으나 아시안컵에서 지도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지도력이 부족할 수도, 성과가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분노가 들끓는 것은 이 때문만이 아니다. 부임 후 국내 선수들을 살피기보다는 해외 선수들을 체크한다는 명목 하에 원격 업무를 이어가는 날이 많았다. 대표팀 명단을 원격으로 공개하기도 하는가 하면 선수 선발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축구협회를 통해 보도자료로 발표하는 황당한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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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탈락 후에도 상대 감독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누는 클린스만 감독(오른쪽).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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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감독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공항 귀국 후 경호 인력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스1
강한 비판에도 클린스만은 "저의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대표팀 감독은 프로팀 감독과 (방식을)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분들께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맞지 않다는 말씀을 지속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제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비판은 존중하나, 제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일하는 업무수행 방식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잇다.

경질론에 대해서도 클린스만 감독은 귀국 인터뷰에서 "여론이 왜 악화됐는지 모르겠다. 나도 우승하고 싶었다"며 "요르단을 만나기 전까진 결과를 가져오고 좋은 경기를 선보였다. 아시안컵 4강은 실패라고 볼 수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여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 아미르 갈리노에이 이란 감독은 실망스런 결과에 고개를 숙였다. 그 결과를 자신의 지도력 부족으로 돌렸다. 그러나 클린스만은 당당했고 오히려 선수들이 책임을 지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난 9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엔 '역대급 황금세대로 구성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뻥' 축구, '해줘' 축구, '방관' 축구로 아시아를 놀라게 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에 관한 청원'이라는 글이 올라왔고 심지어 귀국하는 클린스만 감독을 향해서는 '집에 가'라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엿이 날아들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클린스만 감독이 앞으로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억원대 연봉을 받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할 경우 엄청난 수준의 위약금이 발생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클린스만은 "(경질) 얘기가 나오는 정확한 이유는 잘 알지 못하겠다. 부임 후 1년 동안 성장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2026 북중미월드컵을 바라보고 있다"며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과 8강 호주전 승리 당시에는 많은 분이 열광했다. 긍정적인 얘기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탈락 후에는 부정적인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뻔뻔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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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스 하지마 일본 대표팀 감독.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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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르 갈리노에이 이란 감독. /AFPBBNews=뉴스1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앞서 영국 BBC는 "클린스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독일 '스포르트1'은 "클린스만의 한국은 약체를 상대로 아시안컵에서 탈락했다. 대참사다. 예상치 못한 패배였다"라고 지적했다.

ESPN 인도는 8일 "클린스만 감독이 사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할 수 있을까"라며 "한국에는 유럽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스타들이 있다. 국가대표팀 코치진이 클럽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손흥민, 이강인 같은 선수들은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실력을 갖췄다. 이것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를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해외로만 도는 클린스만 감독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클린스만 감독의 거취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클린스만 사태'가 단순히 스포츠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오전엔 축구회관 앞에서 일부 축구 팬들이 집회를 열고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과 그 선임 배경 등의 공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아시안컵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왔던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 출국 일정을 공개하며 그 시점을 다음주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젠 거짓말쟁이까지 돼버렸다. 길게 자리를 비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거취를 두고 중요한 논의를 펼칠 전력강화위를 앞두고 자리를 피해버린 꼴이 됐다.

그는 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이야기를 나눈 것에 관한 질문에는 "카타르 현지에서 두 차례 만나면서 커피를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이번 대회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경기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안 좋았던 점들과 실점이 많았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보완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공개했다. 이어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태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2연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가올 월드컵 예선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쉬운 결과로 아시안컵을 마친 대표팀은 오는 3월 중순께 A매치 일정을 위해 다시 소집된다. 한국은 3월 21일 태국을 상대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홈경기를 치른 뒤 3월 26일에는 태국으로 원정을 떠난다. 2차 예선 통과를 의심하는 이들은 없다. 한국은 C조에서 2승 무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2년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을 위해 팀을 재정비하기 위해선 하루 빨리 축구협회의 결단이 필요하다. 클린스만 감독을 유임해 다시 한 번 믿음을 보일지, 경질해 새롭게 시작할지 이틀 뒤 전력강화위에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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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감독이 공항에 입국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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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입국 후 축구 팬들의 냉대 속에도 미소를 짓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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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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