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승패는 5대5야" 국대 에이스의 각성, '277억 포수' 한마디가 그를 변화케 했다

잠실=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05.01 06:31
  • 글자크기조절
image
두산 곽빈이 30일 삼성전에서 이닝을 막아내고 포효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아이고 또 시작이네 했는데..."

국가대표 투수를 바라보는 국내 최고 포수의 시선은 냉철했다. 경기 초반부터 비슷한 문제로 흔들리자 불안감을 키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지독한 불운을 스스로 극복할 만큼 한 뼘 더 성장했다는 걸 확인했다.


두산 베어스 곽빈(25)은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6⅓이닝 동안 103구를 뿌려 7피안타 3사사구 3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올 시즌 첫 무실점 피칭을 한 곽빈은 팀이 4-0으로 이기며 4패 후 시즌 첫 승을 수확했다.

너무도 힘겨운 첫 승이었다. 4번째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만에 거둔 값진 승리다.

경기 후 만난 곽빈은 "코치님들이나 많은 코치님들께서 많은 위로와 할 수 있다는 응원 메시지를 계속 저한테 줬는데 그게 힘이 됐다"며 "2021년도에도 첫 승이 진짜 늦게 나왔는데 그때 생각하면서 지금은 1군에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첫 승에 쫓기지 말자는 생각을 해서 급하지 않을 수 있었고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타선 지원도 부족했고 여러모로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곽빈은 무려 10번째 경기에서 첫 승을 따냈던 2021년을 떠올렸다.

image
두산 곽빈이 30일 삼성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이승엽 두산 감독은 경기 후 "곽빈이 그동안 잘 던지고도 승리와 인연이 없었는데 오늘은 더 공격적인 투구와 함께 변화구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며 팀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며 "곽빈이 19개의 아웃카운트를 책임져준 덕분에 마운드 운용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불운은 스스로 자초하는 면도 있었다. 경기 초반 볼넷을 내주며 투구수를 늘려 많은 이닝을 던지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잦았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리드오프 김지찬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며 시작했다.

포수 양의지는 "1회부터 볼 4개를 던지기에 '아이고 또 시작이네'했는데 병살타로 잡았다"며 "그게 아니었으면 또 1회를 어렵게 갔을 것이다. 구자욱이나 맥키넌이 워낙 잘치고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곽빈의 올 시즌 1회 피안타율은 0.208로 시즌 기록(0.245)보다 낮았지만 볼넷은 5개로 모든 이닝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실점을 내주지 않더라도 투구수가 늘어나며 어렵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다.

곽빈은 "지난 경기부터 이제 (승리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신감도 많이 받았다"고 했지만 이날도 "(김)지찬이가 제 상대로 강해서 의식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항상 어렵다"고 말했다. 올 시즌에도 김지찬은 곽빈에게 3타수 3안타 3볼넷으로 천적 면모를 보였다.

image
두산 곽빈(오른쪽)이 30일 삼성전에서 호수비를 펼친 허경민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그러나 수비 도움을 받은 곽빈은 1회를 큰 위기 없이 마쳤다. 투구수도 13구에 불과했다. 이날 7회 1사까지 마운드를 지킬 수 있는 좋은 시작이 됐다. 양의지는 "거기서 병살이 안나왔으면 또 지난 삼성전(5이닝 5실점)처럼 맞았을 것"이라며 "김지찬을 못 잡고 가니까 맨날 어렵게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운이 따랐지만 1회를 손쉽게 넘어가자 경기가 술술 풀렸다. 2회 탈삼진 2개와 함께 삼자범퇴를 했고 3회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더블아웃과 함께 깔끔히 이닝을 마쳤다. 4회에도 헨리 라모스의 호수비에 힘입어 무실점 투구를 이어갔고 5회엔 2사 1,2루에 몰리고도 김성윤에게 삼진을 잡아냈다.

6회에도 2안타로 2명의 주자를 내보냈고 볼넷까지 허용했지만 주무기 커브를 던져 위기를 벗어났다. 이날 103구 중 최고 시속 153㎞, 평균 147㎞ 속구를 44구 뿌렸고 주무기인 커브를 28구(평균 121㎞)나 던졌다. 슬라이더(평균 136㎞)도 24구로 비중이 높았다. 체인지업(평균 132㎞)도 7구 섞어 던졌다.

특히나 커브의 빈도수가 많았는데 곽빈은 "야구는 데이터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커브 피안타율이 많이 낮아서 자신이 없을 때는 '그냥 커브를 던져버리자'고 떠올렸다"며 "타자들에게 커브를 생각하게 만들면 직구랑 다른 변화구도 살아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지난 24일 NC 다이노스전(6이닝 1실점)에서도 커브가 주효하게 작용했다. 그는 "저번 경기부터 커브를 많이 던졌는데 올 시즌은 커브를 계속 잘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ABS가 잘 잡아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커브가 컨트롤이 잘 되는 날엔 (경기가) 잘 풀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고 포수는 토종 에이스를 인정하면서도 냉철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양의지는 "공은 더 좋은데 (그 이상은) 스스로 더 연구해야 한다"며 "제구가 안 좋고 하위 타선에게 출루를 줘 상위한테 딱 걸리니까 맞는 경우가 많고 볼넷도 많다"고 지적했다.

image
두산 양의지가 30일 삼성전에서 수비에 나서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어리니까. 멘탈적으로도 그렇고 밸런스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커브에 대해서도 "(제구가) 왔다 갔다 하는데 그래도 커브가 가장 좋으니까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7번째 도전에서야 첫 승리를 따냈다. 다만 곽빈을 가장 괴롭힌 건 개인적인 성과가 아니었다. 그는 "제가 나왔을 때 경기가 지니까 그게 제일 답답했다. 작년에는 많이 이겼던 것 같은데"라며 "승리를 많이 하면 당연히 좋지만 내 욕심보다는 팀 승리를 더 우선시해 내가 나올 때 많이 이기자는 생각을 매번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서 많이 속상했다"고 전했다.

냉철한 평가만큼이나 멘탈을 다스리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게 바로 양의지다. 개막 후 한 달이 넘도록 1승을 하지 못해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양의지의 발언이 큰 힘이 됐다. 지난해 8월 초 9승을 거둔 뒤 이후 3연패를 당하며 흔들렸는데 그때 들은 조언을 떠올렸다.

곽빈은 "작년에 (양)의지 형이 해준 말이 기억이 나는데 '어차피 승패는 50 대 50이니까 경기할 때 오늘은 승리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던져라'라고 해서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오늘은 출근할 때부터 '승리하는 날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양석환과 최원준은 중계방송사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곽빈을 기다리며 특별한 축하 의식을 준비했다. 물과 커피, 단백질 음료 등을 섞었고 인터뷰가 끝나자 다가가 신나게 뿌리며 시즌 첫 승리를 축하해줬다.

직접 음료 제작에 나섰던 최원준은 "더러운 것들로 축하를 해줄수록 나쁜 기운이 씻겨나간다"고 했는데 이를 들은 곽빈은 "침은 안 섞어서 다행"이라며 "(최)원준이 형이 승리했을 때 제가 못 뿌려 아쉽다. 다음에 좋은 기록이 나오면 그땐 물 대신 소화기를 들고 뿌릴 것"이라고 이를 갈았다.

image
두산 곽빈(오른쪽)이 30일 삼성전 승리 후 인터뷰를 마치자 양석환(왼쪽)과 최원준이 음료 세례를 퍼붓고 있다. /사진=두산 베어스
기자 프로필
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스포츠의 감동을 전하겠습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