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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콘필드 홋카이도 내부 전경. /사진=필자 제공 |
① '야구장 하나가 인구 5만 도시를 바꿨다' 日 홋카이도에서 KBO리그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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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폰햄 구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대형 벽화. /사진=필자 제공 |
에스콘필드는 2023년에 지은 야구장답게 흠잡을 데 없는 시설과 매진에 가까운 관중 열기가 인상적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 구장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와 같은 설계사에서 디자인했는데 그러다 보니 NPB 야구장이라기보다 MLB 야구장을 홋카이도로 옮겨온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에스콘필드를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신치토세 공항에서 내린 뒤 삿포로역에서 JR쾌속열차를 타고 기타히로시마역에서 셔틀 버스를 타거나 도보로 25~3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기타히로시마역에서 에스콘필드를 가는 길은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야구장이 없다면 시골 오솔길 같은 분위기였다. 필자는 야구단에 있으면서 전지훈련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현이나 가고시마현을 수십 차례 방문했는데 에스콘필드가 위치한 기타히로시마는 이들보다 훨씬 더 작은 도시였다.
기타히로시마는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인 삿포로에서 약 20km 거리에 있고 인구 5만 6345명(2025년 4월 30일 기준)의 소도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2025년 5월 31일 주민등록인구 통계 기준으로 경상남도 함안군(5만 8236명)이나 창녕군(5만 5522명)과 비슷하다.
이런 시골 도시에 지어진 에스콘필드는 21세기 '꿈의 구장'이라고 부를 만하다. 1989년 개봉한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에서 미국 아이오와주의 옥수수밭에 야구장을 지었듯 에스콘필드는 원래 임야 5헥타르(ha)를 개발해 돔구장을 만들었다. 닛폰햄은 기타히로시마와 협의를 통해 임야 32헥타르에 'F.빌리지(Village)'라는 마을을 조성하고 있는데 그 안에 에스콘필드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에스콘필드를 가면 '현대적인' 내부 시설에 한 번 놀라고 '조용한 시골'의 외부 환경에 또 한 번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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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빌리지(왼쪽)와 에스콘필드 안내판. /사진=필자 제공 |
닛폰햄은 2003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함께 도쿄돔을 사용하다 2004년 연고지를 홋카이도, 홈 구장을 삿포로돔으로 옮겼다. NPB 최고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에 밀려 도쿄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와중에 삿포로시에서 2001년 개장한 삿포로돔 사용과 관련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자 프로야구의 불모지인 홋카이도로 이전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19년 만에 홈 구장을 에스콘필드로 다시 옮긴 것이다. 닛폰햄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던 삿포로시가 시장이 바뀌면서 삿포로돔 사용과 관련해 닛폰햄 구단과 갈등을 빚게 됐고, 닛폰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구단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다시 홈 구장을 이전했다. '또 한 번' 구단의 명운을 건 도박을 감행한 것이다.
닛폰햄의 두 차례 홈 구장 이전은 성격이 각각 다르다. 도쿄돔에서 삿포로돔으로 옮긴 건 지역 보호권(연고지)이 변경된 경우이고 삿포로돔에서 에스콘필드로 이전한 건 지역 보호권은 그대로 유지한 채 홈 구장만 바꾼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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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토 나오냐 파이터즈 스포츠&엔터테인먼트(FSE) 부본부장, 류선규 전 단장, 미타니 히토시 FSE 사업총괄 본부장. /사진=필자 제공 |
최근 KBO리그에서는 NC 다이노스와 창원특례시의 연고지 논란을 두고 닛폰햄의 에스콘필드 이전 사례가 거론되곤 한다. 닛폰햄이 야구장 사용에 관한 갈등으로 홈 구장을 에스콘필드로 이전하기는 했지만, 연고지 자체를 옮긴 건 아니라는 점에서는 NC-창원시와 차이가 있다.
KBO리그에서 연고지 이전은 그동안 두 차례밖에 없었다. 1985년 OB(현 두산) 베어스(충남북→서울)와 2000년 현대 유니콘스(인천→서울, 결과적으론 수원)였다.
OB의 서울 입성은 프로야구 창설 때 이미 약속된 사항이라 연고지 이전에 따른 팬들의 거부감이 거의 없었지만 현대의 연고지 변경은 인천야구팬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SK 와이번스가 창단하면서 현대가 떠난 인천에 터를 잡았는데 필자가 SK의 창단 초기 인천 야구팬들의 아픔을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연고지 이전이 가져오는 후폭풍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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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콘필드 인근의 JR 전철역 공사 현장 모습. /사진=필자 제공 |
'스타필드 청라'의 돔구장은 SSG의 홈 경기와 K-팝 공연 등을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렉스 공간으로 활용되고 서울지하철 7호선의 청라연장노선의 전철역이 개통될 예정인데, 에스콘필드를 중심으로 기차 역사가 생기고 병원, 학교,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하나의 마을(F-빌리지)가 조성된 것과 비슷하다. 우연히도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스타필드 청라'까지의 거리와 삿포로돔에서 에스콘필드까지의 거리 모두 약 20km 정도이다.
2023년 개장 이래 한국의 각계각층에서 에스콘필드를 방문하고 있다. KBO 구단들 뿐 아니라 프로야구단 유치를 희망하거나 도시개발을 구상하는 지방자치단체, 일반 대기업 등이 에스콘필드를 찾아 닛폰햄과 기타히로시마시의 성공 사례를 배우고 있다. KBO 구단들은 홈 구장 시설 및 운영을 배우기 위해 미국이나 일본의 신설 구장을 벤치마킹하는 게 일상에 가깝지만 한국 지자체의 에스콘필드 방문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최근 KBO리그가 흥행 가도를 달리면서 한국 사회에서 프로야구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일부 지자체의 경우 야구단을 '귀하게' 바라보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프로야구단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가치가 크게 올라가면서 야구단을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구단 유치를 통해 도시가 천지개벽하고 있는 기타히로시마시의 사례는 한국 지자체에 최고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해가 갈수록 변신할 계획인 에스콘필드와 F-빌리지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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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규 전 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