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경구 나문희 조한선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 '열혈남아'(감독 이정범ㆍ제작 싸이더스FNH)에는 눈에 띄는 여자 배우가 한 명 등장한다.
심이영. 김진아라는 이름을 심이영으로 바꾼 그는 '열혈남아'에서 재문(설경구)에게 연정을 품는 다방 아가씨 미령 역을 맡아 전도연 김정은 등 영화 속 다방 아가씨 계보를 이어갔다.
설경구라는 범상치 않은 배우를 상대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심이영은 "원래 가장 존경하는 배우가 설경구 선배였기 때문에 부담감이 무척 컸다"고 털어놨다.
그는 '열혈남아'에 출연한 동기 역시 "내 캐릭터보다 설경구 선배가 맡은 재문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끌렸다. 설경구 선배가 한다는 소리를 듣고 더욱 영화를 함께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설경구와 심이영의 인연은 '올드보이' 오디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디션에 참가한 심이영을 심사위원 자격으로 자리한 설경구가 눈 여겨 본 것. '열혈남아'를 통해 재회했을 때 설경구가 첫 눈에 "어이, 잘 있었냐"고 먼저 인사한 것을 심이영은 잊지 못한다.
심이영은 "기술적인 부분을 잘 몰라서 NG를 거듭 낼 때도 (설경구가)배려를 많이 해줬다.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선배인 것 같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잘하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각오로 열심히 했다. 재문이 미친 개같은 캐릭터지만 내가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심이영이 가장 곤란했던 장면 중 하나는 설경구의 바지를 벗기는 장면. 설경구의 바지를 확 벗기는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 터라 밤새 고민에 고민을 했다. 잘 벗길 수 있을까, 괜히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NG라도 여러 번 나면 어떻게 하지... 막상 촬영장에 도착하니 이정범 감독이 상황이 맞지 않은 것 같아 그 장면을 취소한다고 했을 때는 시원한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했다.
심이영은 "공중 전화로 욕설을 퍼붓는 장면은 연기를 잘 못한 것 같았는데 편집한다고 해서 안심했다. 그런데 그 장면은 그대로 영화에 등장하고, 많은 고민을 한 장면은 아예 촬영조차 못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강렬한 백열등 밑에서는 촛불이 밝은지 좀처럼 알아챌 수 없는 법. '열혈남아'에서 심이영이 맡은 미령 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은은한 촛불의 멋을 잘 그려냈다.
사실 심이영의 출발은 범상치 않았다. 김기덕 감독이 단 하루만에 촬영한 극단적인 실험영화 '실제상황'으로 심이영은 배우로서 첫 길을 내딛었다. 하루 하루가 무의미했던 스무살 시절, 연기자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할 일이 없어서 연기 학원에 등록했던 그는 김기덕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연기의 맛을 깨달았다.
'봉자' '묻지마 패밀리' '여고생 시집가기' '파송송 계란탁'까지 작은 역이지만 필모그라피를 점차 채우면서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배우였다는 사람을 보면 신기했다. 그랬던 내가 연기의 길에 재미를 느끼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열혈남아'를 끝마친 뒤 심이영은 곧바로 2편의 영화에 캐스팅됐다. 연기에 대한 꿈이 없었던 스무살 처녀가 과연 어떤 배우로 남게 될지, 심이영은 이렇게 말했다. "실망시키지 않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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