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걷다보면 꽃밭을 만날 때도 있고, 높은 산을 마주칠 때도 있고, 진창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쉬어가는 사람도 있고, 주저앉는 사람도 있고,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다. 이준익 감독은 쉬었다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왕의 남자'로 일찍 천만영화의 단맛을 봤던 이준익 감독은 그 뒤 꽃길도 걸었고, 높은 산도 만났고, 진창에도 빠졌다. '평양성'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자 은퇴선언까지 했었다. 그랬던 이준익 감독은 '소원'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만드는 방식, 캐스팅 과정,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까지 달라졌다. 더 깊어졌다. 16일 개봉하는 '사도'는 이준익 감독이 '소원' 이후 처음으로 내놓는 영화다. '사도'는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다. 닮고 닳은 이 이야기를, 이준익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정면으로 마주 봤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요즘, 이준익 감독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이야기로 오히려 화해를 권했다. 그와 나눈 아주 긴 이야기를 전한다.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사극은 과거로 현재를 빗대는 법이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요즘,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사도'를 갖고 온 이유는.
▶요즘은 사람들이 상황 논리에 휩싸인다. 맥락을 잃고 상황에만 휩싸여 등 떠밀려 간다. 자신의 맥락이나 중심이 없으면, 어느 날 내가 여기 왜 와있나, 후회하게 된다. 현재성이란, 현재의 정체성이란, 과거의 맥락에서 나오는 법이다. 동어 반복되거나 상충되거나. 맥락 안에 있나, 밖에 있나, 그 차이에서 지금의 정체성을 찾는 법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250년 전 사건을 현재로 가져온 건 그 안에서 요즘의 맥락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다뤄진 이야기다. 굳이 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든 이유는.
▶이건 나의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 '왕의 남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 때도 또 연산군이고 장녹수 이야기냐는 비판들이 많았었다. 열고 보니 광대 이야기였지만. 그 다음에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을 찍으면서 계속 망가졌다. 사건의 의미만을 쫓았던 탓이다. 사건에만 몰입해 그걸 어떻게 현대를 입힐까에 주력하다보니 큰 실패를 맛봤다.
'사도'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래서 제작사 타이거픽쳐스 조철현 전 대표가 이 이야기를 하자고 했을 때, 난 반대했었다. 계속 권하자 그러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으로 가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자고 했다.
이 이야기는 변증법으로 정,반, 합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조가 정이고, 사도세자는 반이며, 정조가 합이다. 난 이걸 업,덕,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영조는 아들을 죽였으니 업이요, 사도세자는 아들을 위해 죽었으니 덕이요, 정조는 그 덕에 왕이 돼 영조와 사도세자의 화해를 바랐으니 복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마지막 소지섭이 정조가 돼 화해, 해원(원한을 해소)의 춤사위를 추는 것으로 끝이 난다.
영조가 죽는 걸로 영화가 끝났으면 더 재미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가 목표가 아니다. 재미와 의미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내가 이 영화를 굳이 만들 이유가 없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시작해 과거와 화해하는 게 중요했다.
-송강호가 영조 역할로 캐스팅이 되면서 제작에 탄력이 붙었는데.
▶시나리오를 조철현 전 대표와 이송현 작가, 그리고 오승현 현 타이거픽쳐스 대표가 썼다. 그리고 내가 다시 각색을 했다. 캐스팅을 시작하려는데 영조 역할에 답이 없었다. 송강호는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추천했다. 한 번도 같이 일해 본 배우가 아니라서 생각도 못했었다. 그랬는데 일주일도 안 되서 하겠다고 답이 왔다. 사도세자 역할의 유아인은 처음부터 염두에 뒀었다. 그런데 쇼박스가 다른 배우를 추천했었다. 그래서 일단 영조부터 캐스팅하고 결정하자고 미뤘었다.
원래 난 캐스팅할 때 전 배역을 동시에 진행했었다. 그랬다가 '소원'부터 바꿨다. 주연배우를 결정하고 주연배우와 상의하면서 그 다음 배역 캐스팅을 차례로 진행했다. 결국 인사가 만사다. 그 배우와 합이 맞는 사람들과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유아인을 그런 과정에서 같이 할 수 있게 됐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이 전형적이지만 '사도'에선 아주 적합했는데. 하나의 사건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니 이 방식으로 감정을 더 쌓을 수 있었는데.
▶원래 난 캐릭터 중심보단 플롯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렸었다. 사건 중심으로 꾸몄다는 뜻이다. 그랬다가 '소원'부터 바뀌었다. 사건 하나를 놓고 나머지는 사연으로 끌고 갔다. 가장 아픈 상처를, 사건을, 정면으로 봐라보게 해야 한다고 바뀌었다. 그래야 복잡하지 않고, 그렇게 상처를 정면으로 봐라봐야 정화가 된다. '소원'은 나에게도 정화였다.
-여러 장면들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플래시백(과거 회상장면)으로 감정을 쌓았다. 그런데 이 플래시백이 주인공들 뿐 아니라 각 인물들까지 고르게 이어진다. 결과적으론 영화가 입체적이 됐지만 자칫 주인공들의 감정을 쫓아가지 못할 위험성이 있었는데.
▶맞다. 아주 위험한 선택이었다. 플래시백이 처음에 영조로 시작해서 혜경궁, 사도, 정순왕후, 어린 정조에서 성인 정조로 이어진다. 플래시백으로 돌아가는 인물이 그 다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건 자칫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몰입했다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사건이 없기에 사연으로 끌고 가려 이런 방식을 썼다.
-배우들 연기가 아주 뛰어났기에 시점이 바뀌어도 이야기가 입체적이 될 수 있었는데.
▶배우들에게 빚진 게 아주 많다.
-어린 정조 역의 이효제까지 훌륭했다. 성인 정조 역할의 소지섭과 닮았다는 점도 주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정조의 감정과 회한이 성인 정조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소지섭을 캐스팅하고 이효제를 캐스팅했나.
▶그렇다. 소지섭을 캐스팅하고 몇 달 동안 닮은 아이를 찾았다. 최종 후보로 세 명이 있었는데 둘은 연기를 잘하는데 소지섭과 안 닮았다. 마지막 아이가 이효제였는데 소지섭과 닮았더라. 그런데 연기가 안되더라. 그래서 내가 영조 역할을 하고 아이에게 연기를 계속 시켜봤다. 송강호가 침전에서 "왜 왕과 왕비에게 하는 4배를 후궁인 영빈에게 했냐"는 장면을 내가 대신 했다. 그랬더니 똑바르게 하더라. 그 다음 "애비에게 물 한잔 주는 게 잘못입니까"를 여러 번 반복하게 했다. 맨 마지막에 연기가 확 올라오더라. 바로 컷, 하고 캐스팅했다.
나중에 현장에서 송강호랑 맞붙는데 천하의 송강호 앞에서도 안 밀리더라.
-송강호는 탁월했다. 마지막 9분 가량 이어지는 뒤주와 대화 장면은 카메라가 오로지 송강호 앞에 붙어서 뒤로 빠지면서 홀로 하는 연기였을 텐데. 송강호가 아니었으면 그 긴 시간을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겠나 싶더라.
▶그 장면은 한 번에 갔다. 원래 테이크를 많이 가지도 않지만 워낙 탁월했다. 송강호는 사실 그 장면에서 비가 내리는 걸 불안해했다. 자칫 비가 세게 내리면 얼굴에 맞아서 감정이 흔들릴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내가 연출부에 이슬비로 바꿔달라고 했다. 사실 이슬비를 만드는 게 어렵다. 비데로 빗방울을 흩날리게 하는 게 쉽지 않다. 다행히 그 장면을 찍을 때 바람이 불지 않았다. 배우의 얼굴이 촉촉이 젓는데서 오는 몰입감, 나중에 송강호가 비가 도와줬다고 하더라.
원래 그 장면은 상대 배역도 없는 어려운 감정신이라 대사는 후시녹음으로 입힐 생각이었다.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들과 하는 대사 장면이니깐. 그런데 송강호가 계단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대사를 그냥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테스트를 했다. 아주 좋더라. 그런 다음 송강호가 뒤주로 다가가는 장면에선 입을 안 연다. 그런데 배우가 입을 안 여는데도 관객이 대사를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송강호는 감히 내가 평가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다.
-송강호가 사극 말투로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현대어로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있다. 어차피 사극 말투란 게 TV사극으로 만든 것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렇게 오가는 게 인상적인데. 또 죽은 아들에게 하는 대사는 일부러 뭉갠 것 같은데. 그래서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되고.
▶사극체란 게 어차피 만들어진 것이다. 가짜다. 왕과 신하들이 사극 말투로 이야기한다는 건 TV사극으로 익숙해진 관성이다. 난 '황산벌'부터 그 관성을 깨는 작업을 해왔다. 송강호에게 그렇게 하라고 디렉션을 주지도 않았지만 그 관성에서 자유로운 건 이미 그와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된 것이었다.
또 대사가 뭉개지는 그 장면은 테이크를 여러 번 갔었다. 결국 그 장면을 쓴 건 정확하게 대사가 안 들려도 배우의 감정이 오롯하게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아인은 여러 무리에 있어도 홀로 발산하는 연기를 할 때가 가장 탁월하다. 그야말로 솔리스트인데, 그 솔리스트를 하모니로 이끌었는데.
▶유아인은 자기 안에, 내면의 메소드 연기에 아주 충실한 배우다. 솔리스트란 표현이 적합하다. 그래서 어쩌면 다른 배우들이 리액션이 불편할 수도 있다. 송강호라는 배우와 같이 했기에 하모니를 이룰 수 있었고, 무엇보다 사도란 캐릭터는 그게 맞다. 그런 감성으로 홀로 외롭게 발산하는 게 영화와 아주 잘 맞았다.
-문근영은 8년만에 '사도'에 혜경궁 역으로 돌아왔는데. 사실 분량이 작은 역할인데.
▶문근영은 내가 제일 감사한 배우다. 오히려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역할인 전혜진보다 비중이 작은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나이로 어른을 따지는 게 아니다. 내면의 성숙함은 문근영이 나보다 훨씬 어른이다.
-영빈 역할의 전혜진은 그야말로 '사도'의 발견인데.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 달라고 남편에게 권하는 엄마 역할이다. 사도가 죽은 뒤 "그래. 내 잘못이 아니지"라고 오열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영빈이 유일하게 하는 사극 말투가 아니라 현대어다. 그런데 아주 적합한데.
▶전혜진은 조철현 대표가 '더 테러 라이브'를 보더니 영빈에는 무조건 전혜진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캐스팅했더니 특히 송강호가 아주 좋아했다. 송강호는 처음엔 영빈 역할에 좀 더 지명도 있는 배우를 택할 줄 알았더라. 나중에 알고보니 송강호가 극단 차이무 시절 전혜진과 연극을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은 사전에 전혜진과 문근영에게 두 번 갈 수 없다고 미리 이야기를 했었다. 노인 분장을 전혜진이 한 상태에서 해야 했기에 울고 나면 눈물자국이 생겨서 분장을 다시 하는데 두 시간이 더 걸리니깐. 그래서 카메라와 조명 다 준비해놓고 배우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카메라 동선만 정해놓은 상태였다. 전혜진이 술 좀 가져달라고 하더라. 80명 가까운 전 스태프가 전혜진이 소주를 마시는 30여분 동안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전혜진이 준비됐다고 말도 아니고 눈짓으로 조감독에게 뜻을 전했다. 그리고 문근영이 "이게 어찌 어머님의 잘못이겠습니까"라고 하자마자 "그래, 내가 죽인 게 아니지"라고 오열하는데, 오케이! 집에 가자,라고 했다. 전 스태프가 연기가 끝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
정말 그 연기를 보고 슬픔과 아픔이 아름답다고 다시 생각했다. 눈물은 정화를 한다. '소원'에서 배웠다. '사도'는 '소원'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정화와 화해.
-대사와 장면의 상당수가 조선왕조실록과 한중록의 그대로다. 그리고 그걸 영화적으로 재배치했다. 예컨대 숙종의 무덤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데리고 가다가 돌아가라고 한 장면은 실록에 있는 내용 그대로지만 그 때 하는 대사(공부에 힘쓰라는 건 거짓말이다)는 다른 때에 한 말이다. '사도'에서 영화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곳은 어딘가.
▶맞다. 그 장면에서 비가 내린 것까지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 그대로다. 그 대사는 다른 때에 한 말이고. 그걸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대체로 그렇다.
'사도'에서 영화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건 사도세자가 칼을 들고 영조를 죽이러 갔다가 영조와 세손(정조)이 대화하는 걸 듣고 돌아서는 장면이다. 사도세자가 부하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죽이러 갔다가 돌아온 건 사실이다. 그런데 왜 돌아왔냐가 중요했다. 그걸 상상력으로 더했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돌아오는 장면만 있었다. 그렇지만 사도세자가 아버지를 죽이려갔다가 아들이 "애비의 마음을 보왔습니다"라고 하는 걸 들었어야 했다. 그건 만든 장면이다. 그래야 사도세자가 그런 아들을 위해 죽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적인 상상력이라기 보단 해석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사도'에선 반복과 대비로 강조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사도세자가 관에서 나와 칼을 들고 가는 장면, 화살을 허공으로 날리는 장면, 사도세자가 어릴 적에 신하들 앞에서 영조에게 칭찬받는 장면과 어린 세손이 신하들 앞에서 칭찬받는 장면, 아들이 태어나자 사도세자가 기뻐서 용그림을 그리는 장면 등등. 그 중 사도세자가 왕과 왕비에게만 할 수 있는 4배(4번 절하는 것)를 후궁인 영빈에게 하고 가족들에게 시키는 장면은 나중에 정조가 등극한 뒤 어머니 혜경궁 회갑연에서 4배를 하는 장면과 정확히 비교되는데. 사실 혜경궁도 사도세자가 고종 때 왕으로 추숭되니 엄밀히 따지면 4배를 받아선 안되는데.
▶맞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이 영화가 화해를 그리려면 그 장면이 꼭 필요했었다. 그 장면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조는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 앞에서 춤을 출 때 첫 자세부터가 활을 쏘는 장면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활을 허공으로 날리면서 얼마나 자유로우냐라고 하는 것의 대구다. 소지섭에게 감격의 눈물을 흘려달라고 했다. 사도세자랑 혜경궁이란 동갑이다. 말하자면 혜경궁의 회갑연은 사실 사도세자의 회갑연이기도 했다.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에는 혜경궁 옆에 빈 의자를 놓고 그 자리에 사도세자의 부채를 놓으려고 했었다. 촬영날 아침에 빼라고 했다. 그랬다가는 관객에게 너무 설명하는 것 같았다.
원래 역사에서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공표했었다. 이건 굉장히 무서운 선언이다. 사도세자가 그렇게 죽고 난 뒤 영조는 정조를 죽은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사도세자보다 먼저 죽은 아들의 양자로 보내 인연을 끊게 한 것이다. 그런데 왕이 되자마자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언했으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그 장면도 찍었었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관객에게 설명하는 것 같아서 그냥 빼고 회갑연으로 바로 갔다.
-전통음악을 여러 곳에서 사용했다. 때로는 적합하지만 더러는 과잉으로 치닫기도 한데. 사건이 없다보니 음악으로 감정을 고양시키려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런 부분이 더러 있긴 하다. 음악을 뺐더니 몰입도는 더 높아지는데 불안하더라. 감정을 이끌어야 할 가이드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 영화에 전통음악은 크게 '부모은중경' '회심곡' '옥추경'을 썼다. 그 중 옥추경은 원한을 담은 영혼을 달래는 노래다. 박수무당이 부르는 노래다. '사도'에서 맹인박수 역할을 맡은 정해균이란 배우가 그 노래를 두 달 동안 박수무당에게서 배워왔다. 영화 속에서 그들이 죽을 때, 사도세자와 같이 부른 노래가 그 노래고, 사도세자가 자기 무덤에서 진혼을 하며 부른 노래가 그 노래다.
마지막 회갑연 장면에선 원래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인 '오블리비언'을 쓰려 했다. '오블리비언'은 망각이란 뜻이다. 인간이 지옥에서도 웃을 수 있는 건 망각 때문이다. 그런데 '오블리비언' 판권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그래서 방준석 음악감독에게 망각의 춤을 출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생황을 연주하는 장면은 그래서 삽입한 것이다.
-'사도'에는 종묘 촬영 장면이 있던데. 종묘 촬영 허가를 안내 줬을 텐데 어떻게 찍었나 싶더라. 그리고 궁에서 홈스테이를 하겠다는 시대에 정작 사극 촬영엔 허가도 안내주는 현실에 대한 생각은.
▶궁궐심의위원회에 여러 번 요청을 했지만 허락이 안 났다. 간신히 돈화문 입구만 찍을 수 있었다. 그래서 경희궁 궁궐 귀퉁이만 찍고 나머지는 블루매트로 가린 채 찍은 다음 나중에 소스로 CG를 입힌 것이다.
예전에 '왕의 남자'를 찍을 때부터 궁궐심의위원회에 여러 번 요청을 했지만 다 촬영허가가 안 났다. 옛날에는 그게 불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궁궐은 공공의 자산인데 일개 영화가 함부로 찍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사극 만드는 사람으로 중국처럼 진짜 괜찮은 궁궐 세트 하나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500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흥행에 대해 이야기해서 의외였는데.
▶사실 흥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건 수치니깐. 물론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흥행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있다. 그래도 난 '왕의 남자'로 흥행의 단 맛을 본 사람으로서 흥행은 복이 많지만 독도 많다고 생각한다. 상업영화는 산업적인 가치가 있고, 문화적인 가치가 있다. 상업적인 가치가 문화적인 가치를 가두면 성숙할 수가 없다. 성장은 할 수 있어도. 지금은 성장보단 성숙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물어보니 할 수 없이 답하지만 숫자로 가치를 환산하는 데 거부감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동주'는 12월에 개봉하는데. 다음 작품은. 또 정통사극인가.
▶다음 작품은 '동주'에 연장선상에 있는 식민지 시대의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역시 '동주'처럼 5억원 안팎으로 할 생각이다. 정통사극은, 글쎄 이번에는 정통사극을 했지만 사실 난 퓨전사극인 '황산벌'을 했던 사람이다. 굳이 정통사극에 얽매이기 보단 어떤 맥락에 있는 영화냐가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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