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22주년 창간 기획 [AI 시대, K콘텐츠의 길을 묻다]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일상 깊숙 들어왔습니다. 이제 AI는 콘텐츠 판도도 바꾸고 있습니다.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영화와 드라마의 연출 기법부터 제작비 구조까지 K콘텐츠 생태계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연출의 한계를 깨는 기술적 혁신에 기대가 커지는 한편, 콘텐츠 저작권 문제와 인간의 일자리를 침범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스타뉴스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AI 시대의 초입에 들어선 K콘텐츠의 현주소를 짚고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봅니다.
'김부장' 액션도 손석구 아역도..AI, K콘텐츠의 '구원투수'일까①
방송국 적자 시대..천정부지 제작비 AI가 해결할 수 있을까 ②
"기술은 바꾸고, 이야기는 지켜라"..AI 시대, K콘텐츠의 생존법③
"사람 아닌 AI로 만들었습니다"..SNS 점령한 'AI 숏폼'의 공습 ④

최근 방영된 SBS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3분에 걸친 대형 액션 시퀀스가 등장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물을 폭파하고, 눈 쌓인 터널을 뚫고 차량 추격전이 펼쳐지는 등 스펙터클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실제로 세트를 부수거나 차량을 동원해 촬영한 것이 아니다. 100% AI(인공지능) 영상 생성 솔루션으로 구현한 장면이다.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와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 o 난감'도 AI 기술을 적극 활용한 사례다. 두 작품은 AI 페이스 디 에이징(De-aging) 및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각각 배우 최민식의 젊은 모습과 손석구의 어린 시절을 정교하게 구현했다. 방송 이후 해당 장면에 AI 기술이 활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AI는 콘텐츠 기획부터 후반 작업은 물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K콘텐츠 산업 전반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치솟는 제작비와 인건비, 글로벌 OTT 플랫폼 간의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AI는 K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기술이 만들어내는 연출의 혁신과 제작비 절감 등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급격한 기술 도입이 가져올 윤리적·산업적 진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대규모 폭파나 수중 추격 장면을 촬영하려면 수억 원대의 세트 제작비는 물론, 고도의 특수효과(VFX) 기술과 전문 인력, 수개월에 걸친 후반 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런 막대한 비용과 긴 제작 시간은 촬영 일정이 빠듯한 드라마에서 대규모 액션 장면을 구현하는 데 적잖은 제약으로 작용해왔다. 드라마 '김부장'의 제작을 맡은 모피어스 스튜디오는 자체 AI 플랫폼 '에이크론'을 활용해 이러한 제약을 줄였다. 실제 세트나 대규모 촬영 없이 AI 기술로 단기간에 해당 시퀀스를 완성해 안방극장에서 호평받았다.
액션 시퀀스뿐 아니라 배우의 얼굴도 AI 기술로 대체되고 있다. 성인 배우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기 위해 과도한 분장을 하거나, 닮은 아역 배우를 찾는 수고 없이도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AI 기술은 배우의 과거 사진과 음성을 학습해 실사와 다름없는 자연스러운 디에이징을 구현해냈다.
이는 비단 K드라마나 영화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빠르게 성장 중인 'K숏폼 드라마' 시장에서도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제작 방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네킹 촬영 후 AI를 통해 배우의 표정과 손동작을 합성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제작비와 제작 기간을 최대 50%~90%까지 절감한 사례도 나왔다. 물론 아직 발전 단계에 있는 AI 기술이 모든 장면을 완벽한 구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I 기술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질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밤티' 영상으로 인식하지만, 이를 하나의 콘텐츠 제작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현재 K콘텐츠 산업은 치명적인 고비용·저성과 구조에 직면해 있다. 주연 배우들의 출연료 급등과 스태프 인건비 상승, 주 52시간 근무제 정착 등으로 회당 제작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뛰었다. 이런 가운데 광고 시장 위축과 플랫폼 간 경쟁 심화로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기술은 제작 현장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현실적 대안으로 급부상 중이다. AI 기술을 활용하면 비용을 절감하고 제작 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물론, 고비용 로케이션 촬영이나 고난도 VFX 작업을 대체할 수 있다. 나아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도 고비용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면서, 창작자가 발휘할 수 있는 자율성과 표현의 폭도 넓히고 있다.
기획 단계에서도 콘티 및 스토리보드 제작을 AI로 구현하며 제작 스태프 간의 의사소통 도구가 되고 있다. 정부 역시 이러한 전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중 AI 콘텐츠 제작 지원 부문에 200억 원 이상을 편성하는 등 콘텐츠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AI 기술은 제작비 절감과 연출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지만, 그 이면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적지 않다. K콘텐츠 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저작권과 초상권 침해 문제는 물론, 오히려 인간의 창작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치솟는 제작비로 인한 깊은 고민 속 달콤한 손을 내미는 AI 기술이지만, 반대쪽에서는 제도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법적·윤리적 문제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먼저 AI 모델의 '무단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저작권 갈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다양한 영상 생성 AI 솔루션은 드라마, 영화, 웹툰 등 수만 편의 창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원작자의 정당한 허가를 받거나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는 기준은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다. AI가 창작물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어느 범위까지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그에 따른 적정한 대가는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법적 논의도 이제 시작 단계다.
해외에서는 이미 AI 기업과 콘텐츠 업계 간 저작권 분쟁이 현실화하고 있다.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AI 회사를 상대로 대규모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향후 K콘텐츠와 AI의 결합이 본격화할수록 국내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구현하는 디에이징 및 보이스 합성 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올해 초 한 AI 콘텐츠 업체가 배우 염혜란의 얼굴을 딥페이크로 해서 만든 단편 영화를 공개해 논란이 됐다. 당시 염혜란이나 소속사 측과는 사전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해당 영상은 삭제됐다.
영상 제작사 측은 "유명 배우의 초상권을 허락받고 구현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논의되지 않은 딥페이크 영상이었고, 영상 속 배우의 모습이 실제 배우 염혜란과 매우 흡사한 얼굴로 구현돼 더욱 충격을 전한 바 있다.
현장에서도 콘티 작가, VFX아티스트, 막내급 연출자들이 담당하던 기초 업무들이 빠르게 AI로 대체되고 있다. 이에 현장 밑바닥에서부터 경험을 쌓을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우려가 나오며 '일자리 공포'가 업계를 덮쳤다.

AI는 더 이상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우리 삶과 산업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콘텐츠 업계에서도 AI는 이제 단순한 연출 보조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무한한 확장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AI 기술이 제작비 절감과 창작의 영역을 넓히는 이점을 지닌 만큼, K콘텐츠 생태계의 바꿀 '게임 체인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AI가 K콘텐츠 업계의 진정한 구원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보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AI로 절감한 시간과 비용을 작품의 본질인 서사의 깊이, 인간적인 감정선, 독창적인 세계관 구축에 재투자할 때 K콘텐츠는 비로소 참신함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한발 앞서 AI와의 상생을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작가·배우 조합과의 합의를 통해 배우의 디지털 복제 시 사전 동의와 보상을 의무화하는 표준계약 기준을 정립했고, 유럽연합(EU)은 최초로 'AI 법안(AI Act)'을 통과시키며 AI 학습 데이터의 출처 공개와 생성물 표기를 법제화했다.
결국 AI가 K콘텐츠의 제작비 절감에 일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제작비 절감이라는 눈앞의 실익을 넘어서 정교한 가이드라인을 세워야 한다. AI 학습 데이터의 정당한 라이선스 체계를 마련하고 배우 및 스태프의 권리를 보호하는 표준계약서 개정하며 AI 도구 활용 시 창작자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는 제도적 기반이 선행될 때 K콘텐츠와 AI 기술이 상생하고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