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에도 유명인은 존재합니다. 요즘은 개인도 쉽게 영상을 제작할 수 있어서 얼굴을 드러낸 유명인사가 많아졌지만, 과거에는 얼굴 대신 닉네임으로 유명세를 날리던 사람들이 많은데요.
게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컨트롤이나 막대한 재산, 그리고 넓은 인맥 등으로 서버와 게시판을 호령하는 이들이 있죠. 소위 '네임드'라 불리는 유저가 그런 존재입니다. PC MMORPG가 대세였던 시절만 해도 특정 게임의 네임드가 다른 게임으로 옮겨갔다는 건 아주 큰 가십거리였습니다.
지금은 워낙 게임이 많아져서 예전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네임드는 없죠. 과거에 이름 좀 날렸던 네임드 유저들도 어떻게 사는지, 또 무슨 게임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고요. 그런데 웬걸, 바야흐로 연말을 맞아 지난 추억에 젖어들 시점에 흥미로운 웹 예능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습니다.

MMORPG 네임드 좌담회 '껨생술집'
이른바 '껨생술집'. 2016년 12월부터 tvN에서 방영 중인 토크 예능 '인생술집'에서 영감을 받은 웹 예능입니다. 사실 게임 이야기는 누가 해도 재미있지만 '껨생술집'이 특별한 이유는 게스트가 진짜 네임드 유저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리니지' 서비스 초기, 모두가 만렙 달성은 불가능하다고 혀를 내두르는 가운데 최초로 51레벨 기사가 된 전설의 네임드 '포세이든'이 등장했습니다. 온라인게임 역사로 치면 거의 화석에 가까운 네임드 유저여서 '리니지'를 플레이하지 않은 게이머도 아이디쯤은 들어봤을 법한 사람입니다.
같은 '리니지' 네임드이자 출연진 중 유일한 여성인 '뽀대나는공주'도 자리를 함께했죠. '뽀대나는공주'는 당시 '리니지' 최초의 여성 군주였고, 아무도 찾지 않는 소위 '구린' 캐릭터로 끝까지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입니다. 현재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모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클래식 MMORPG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최강의 도적으로 유명했던 '카게'도 참석했죠. PK에 특화된 직업인 도적이었고, 급기야 블리즈컨 국가 대표로 출전한 전적도 있죠. 크리에이터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데저트이글'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토크 중 게임 하느라 무려 19일동안 안 씻은 적이 있다는 불필요한 정보까지 공개하는 열성을 보였죠.

'검성의보스'도 출연합니다. 일명 '검보스'님이죠. 최강의 PvP 네임드로 자리잡기까지 6년간 2억을 들였다는 이분, 검성 분야에서는 엄청난 데이터를 모으고 공유했기에 '아이온' 유저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뮤 온라인'의 초대 성주전 우승자로 1대 성주가 된 '영웅'도 토크쇼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희대의 인기작이었던 '뮤 온라인'의 첫 성주전은 유명세만큼 스케일도 어마어마했는데, 당시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죠.

소속(?)도 플레이 시기도 다른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클래식 MMORPG의 묘미를 한껏 즐겼다는 점이죠. 그 공통점을 구심점 삼아 한 자리에 모였으니 당연히 게임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마련입니다. '껨생술집'에서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역할놀이의 재미를 찾고 싶다
사실 네임드 유저들은 스스로 부여한 가상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포세이든'은 묵묵하고 꾸준히 전투를 수행하는 검사가 되어 최고의 자리에 도달했고, '검성의보스'도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자기가 선택한 클래스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죠. 그래서인지 솔로잉에 집중된 최근 MMORPG에서는 역할놀이의 재미가 덜해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네임드 유저들이 플레이했던 작품들이 지금 출시되는 게임에 비해서 비주얼이나 시스템적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출시되는 게임들은 모두 화려한 이펙트와 멋진 음악, 방대한 콘텐츠를 내세우고 있죠. 그런데 네임드 유저는 물론, 우리도 클래식 MMORPG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로 그 '역할놀이'의 재미 때문이죠.
혼자서 플레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뚜렷한 역할 분담에서 오는 재미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모바일게임 중에도 이런 클래식함을 매력으로 내세운 작품이 적지 않았습니다.

'라그나로크M'은 아기자기하고 캐주얼한 그래픽과 자유로운 육성을 무기로 했던 원작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모바일 버전입니다. 유저들이 '라그나로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프론테라의 아름다운 정경과 음악 등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모바일 환경에 맞도록 다양한 편의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모바일 시장으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죠.

최근 지스타에서 공개된 '마비노기 모바일' 역시 이런 고전적 매력을 가진 게임입니다. 아직 시연버전만 공개된 개발중인 타이틀이지만, '마비노기'가 갖고 있던 독특했던 게임성을 잃지 않고 매력으로 승화시켜 좋은 평가를 받았죠. 절제된 이펙트와 그래픽, 그런 분위기에 맞게 재해석된 OST까지 잘 어우러져 벌써부터 기대되는 타이틀로 꼽히는 중입니다.
1, 2세대 MMORPG 유저라면 매우 반가워할 소식이긴 하지만, 소위 '클래식'이라 불리는 MMORPG가 대부분 모바일로 떠난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바람의 나라'나 '테일즈위버'도 모바일 진출을 선언했죠. 그렇다면 클래식 MMORPG는 이제 모바일에서만 즐길 수 있는 걸까요?

다행히 '로스트아크'의 준수한 성적표 덕분에 몇몇 PC MMORPG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중입니다. 본격적인 겨울 시즌을 맞아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PC MMORPG도 꽤 있습니다. 실제로 '테라'와 '엘소드' 등 클래식 PC 온라인게임들이 곧 업데이트를 앞두고 있죠.
본격적인 서비스를 준비 중인 신작 '아스텔리아'도 최근 베타 테스트에 돌입했습니다. 솔로잉에 중점을 둔 최근 MMORPG 트렌드에는 다소 빗겨나가 있지만, 클래스별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인 작품입니다. 탱커는 어그로, 딜러는 딜, 힐러는 힐에만 집중하면 되는 감각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게임이 되리라 기대됩니다.
화려한 이펙트와 배경음악, 그리고 콘텐츠 대신 '클래식함'에 초점을 맞춘 부분도 눈여겨 볼 만한 부분입니다. 근래 출시된 MMORPG는 많은 유저의 취향을 충족하고자, 기술이 허락하는 만큼 화려한 연출을 활용하고 여러 콘텐츠를 한 데 모아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아스텔리아'는 캐릭터 육성과 파티플레이, 그리고 카드 수집과 같은 '클래식한' 콘텐츠에 무게를 싣습니다. 그래서 담백하고 빠르게 정통 MMORPG의 감성을 느낄 수 있죠.

MMORPG 본연의 가치, 협동에서 느끼는 기쁨
'껨생술집'에서 네임드 유저 '영웅'은 "최근 게임들은 무조건 최강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느낌이다. 사냥을 하든, 채집을 하든 동일한 보상을 주고 유저가 원하는 대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유저들이 MMORPG에 원하는 가치는 한결같습니다. 게임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조우하고 추억을 만들고 싶어하죠.
게임은 함께할 때 더 재미있습니다. 파티플레이와 협동을 강조했던 클래식 MMORPG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장르와 플랫폼에 관계없이 각자 역할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협동해서 일궈내는 게 MMORPG의 묘미였습니다. 이렇게 MMORPG의 '역할놀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은데,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협동의 재미를 주는 게임이 마법처럼 등장하는 날이 곧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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