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말론과 히어로물의 만남..진부함 없앨 구세주는 어디에?

새로운 밀레니엄을 코앞에 둔 1999년은 특별한 해였다. 지구 멸망을 믿거나 ‘Y2K(밀레니엄 버그)’ 등으로 대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세기말적 불안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한국은 외환위기(IMF 사태) 이후 불안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종말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불안과 설렘이 교차하던 세기말이라는 시대 분위기와 파격적인 X세대 대중문화가 공존하던 1999년은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인물들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매력적인 시대 배경으로 등장해 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원더풀스’의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무대도 1999년이다. 가상의 소도시 해성시에도 사이비 종교 집단이 ‘지구 종말론’을 외치며 포교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병약한 몸 때문에 취직도, 여행도 마땅치 않은 스물일곱 살의 은채니(박은빈)는 동네 악성 민원인 손경훈(최대훈)과 소꿉친구 강로빈(임성재)에게 가짜 인질극을 제안한다. 여기에 비밀을 간직한 시청 공무원 운정(차은우)이 엮이면서 네 사람은 해성시를 위협하는 집단에 맞선다.
‘원더풀스’가 1990년대 배경 드라마들과 차별화된 지점은 초능력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한 동네에 사는 채니, 경훈, 로빈은 한바탕 인질극 소동으로 초능력을 얻게 된다. 어딘가 부족한 ‘모지리’ 취급받던 세 사람은 초능력을 얻은 후에도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쓸 줄 몰라 허둥댄다. 제목 ‘원더풀스’의 영어 제목은 ‘The WONDERfools’다. 여기서 ‘fools(바보들)’는 어설프고 허당기 가득한 주인공들을 뜻한다. 드라마는 이런 마이너한 인물들이 세상을 구하는 ‘Wonder(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표방한다.

종말론을 틈탄 사이비 집단의 음모와 그에 맞서는 약자들의 활약 그리고 초능력자 이야기까지. 조합만 놓고 보면 배경과 소재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서 초능력은 할리우드식의 거대한 히어로물과 달리, 소시민 가족 설정과 한국식 휴머니즘 서사로 인기를 얻으며 특색 있는 장르로 자리 잡았다. ‘무빙’, ‘경이로운 소문’ 등이 한국형 팀플레이 히어로 장르를 개척하며 K-드라마 역사를 새롭게 썼듯이, ‘원더풀스’도 어딘가 모자란 초능력 히어로팀을 꾸려 K-히어로물의 계보를 잇는다.
‘원더풀스’ 첫 화는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대 고증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캐릭터 떡밥으로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린다. 라디오헤드의 명곡 ‘Creep’이 단숨에 1990년대 말의 공기를 소환하고, 박은빈, 최대훈, 임성재의 캐릭터와 코미디 연기가 드라마의 개성을 선명하게 만든다. 차은우는 코미디 톤의 세 인물 사이에서 진지한 축을 담당하며 극의 균형을 잡는다.

주인공들이 초능력을 얻게 되는 초반부까지는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드는 추진력이 살아 있다. 빌런 집단의 음모를 슬쩍 보여줄 때만 해도 이 드라마엔 뭔가 새로운 볼거리가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초능력을 쓰기 시작하고 빌런 집단의 정체가 드러나면서부터 이야기는 급격히 힘을 잃는다. 세 주인공이 얻는 초능력도 처음엔 신선하게 보이지만, 캐릭터와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채 소비된다. 빌런 역시 기존 히어로물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욕망과 광기로 무장한 빌런 집단은 장르물에서 수없이 반복되어온 익숙한 얼굴들이다. 히어로물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빌런의 정체와 목적 역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히어로 팀 구성도 마찬가지다. 남들보다 부족한 사람 취급받던 이들이 힘을 얻어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 그러나 ‘개차반’ ‘개진상’ ‘왕호구’로 대표되는 인물들의 조합은 팀으로서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8부작 드라마는 후반부에서 ‘가디언즈 오브 해성시’라는 제목을 내세우며 해성시 버전의 ‘가오갤’을 시도하지만, 정작 팀플레이의 쾌감은 살아나지 않는다. 마지막 8화는 90분 러닝타임의 승부수를 던지지만, 반복되는 클리셰와 힘 빠진 대사 탓에 극을 마무리 짓는 에너지가 부족하다.

히어로 장르에서 가공할 만한 특수효과나 능력 설정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가 주는 해방감이다. 현실을 초월해 나 대신 캐릭터가 시원한 한 방을 보여줄 때의 카타르시스가 없다면 그저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와 비슷한 혹은 전혀 다른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시청자가 공감하게 만드는 접점이 생기지 않는다면 제작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지만,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원더풀스’가 놀라운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어떻게 보여줄까’를 좀 더 고민해야 했다. 시청자가 기대한 건 세기말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창적 초능력이었지, 다른 히어로물에서 반복되어 온 익숙한 능력이 아니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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