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분간 쉴새없이 몰아붙이는 나홍진의 마력 "내가 뭘 본 거지?'

칸의 반응이 정확했다. 영화 속 대사처럼, ‘호프’는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하는 놀라움을 156분 내내 안긴다. 좋냐, 싫냐는 반응은 둘째이고, 일단 첫 반응은 뭐라 말할 수조차 없게 만드는 압도적 놀라움이다. 이제껏 이런 한국영화는 없었고, 앞으로도 쉬이 나오기 힘들 거란 점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점도 확실하다.
사건은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항에서 시작된다. 추수가 끝난 논밭 사이, 거대한 상흔을 지닌 죽은 소 한 마리가 발견된다. 이를 발견한 동네 청년 성기(조인성)은 호랑이의 짓일 거라 호포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에게 말하지만 진실은 오리무중. 정체 모를 ‘놈’을 쫓아 범석과 순경 성애(정호연)는 노인뿐인 마을로 향하고, 성기와 청년들은 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도무지 짐승의 짓일 수 없는 괴력으로 마을은 빠르게 초토화된다. 그들이 놈을 잡을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이 과정이 러닝타임 내내 숨막히게 펼쳐지는 영화가 ‘호프’다.
영화는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폭주 자동차처럼 내달린다. 그 속도감 속에서 끝없이 장르가 변주되고 확장되는 게 이 영화의 묘미. 놈의 정체가 스크린에 정면으로 등장하는 게 영화 시작 45분여가 지난 후인데, 그때까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쫓는 액션 추격 스릴러 혹은 압도적 규모의 재난물의 성격을 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놈이 정체를 드러내면서 크리처물로 범위를 넓히더니 이어 SF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장르를 확장시키는 대담함을 보인다. 그뿐인가, 중간중간 한국식 엇박식 코미디까지 녹이며 블랙코미디도 놓치지 않으면서 서부극의 느낌까지 장착했다.

무한대로 확장한 장르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건 액션. 홍경표 촬영감독이 구현한 집요한 미장센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초반부 마을을 내지르며 놈의 정체를 쫓는 범석의 추격신은 관객이 실제 범석과 함께 추격하는 듯한 몰입의 감정을 안긴다. 이때 전라남도 해남군 일대를 리모델링해 마을 전체를 생생하게 구현한 거대한 세트장의 효과가 톡톡하다. 순경 성애가 선보이는 카체이싱은 또 어떻고. 좁은 상점가 골목과 주택가, 항구를 빠른 속도와 기가 막힌 방향 전환을 오가며 혼을 빼놓는다. 이 영화로 스크린 데뷔를 마친 정호연은, 적어도 액션과 존재감만은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무장한 채 놈을 쫓는 성기는 후반부 액션을 책임진다. 성기 역의 조인성은 이미 ‘밀수’ ‘휴민트’ 등의 전작에서 탁월한 액션 소화력을 보인 바 있는데, ‘호프’에선 깊은 숲속에서 말을 타고 펼치는 난이도 높은 액션을 펼친다. 역기서 조인성의 우월한 기럭지가 액션의 한 끗을 완성시키는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정우성 이후 최고로 멋있는 마상 액션 연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 숲에서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액션 시퀀스까지,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성기 일행의 주요 배경인 숲속 로케이션 자체도 액션에 비장미를 더한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듯한 빽빽한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한 숲속 신은 루마니아 레테자트 국립공원에서 촬영했다는데, 광활한 숲속을 말 타고 질주하는 모습에서 서부극의 잔상을 떠올리지 않은 이들이 없으리라.
속도감 넘치는 액션을 강조했지만, 영화는 또 곳곳에 허허실실의 웃음도 배치했다. 그리고 이 웃음의 상당부분은,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등 주연배우 외에 마을 주민들로 대변되는 여러 배우들이 조금씩 책임진다. 범석과 동행하며 모종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 낙연,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신뢰의 상징인 해술이 아저씨,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의도치 않은 방향 전환을 가져온 양배 등등. 음문석, 이상희, 이용녀, 임현식, 황석정 등 기막힌 리듬감의 웃음을 책임지는 배우들의 면면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니 일일이 역할과 배우를 매칭하지 않겠다. 감독이 애정하는 신으로 꼽은 장면에 능청스러운 유머의 대가 임현식이 등장한다는 것만 귀뜸하련다.

다만 ‘호프’가 호불호가 갈릴 지점은 분명 있다. 칸에서 불거진 CG의 미흡함은 후반작업을 거치며 많이 다듬어졌을 것이 분명하나, 그것과 별개로 후반부 드러나는 놈들의 외형에 대한 만족도는 판이하게 나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등 해외 배우들의 존재감이 보일 듯 하면서도 희미한 점도 ‘굳이?’라는 의문을 낳을 수 있다.
해외 배우들이 연기하는 놈들의 서사와 그로 이어지는 영화의 마무리도 일견 당혹스러움을 자아낼 수 있다. 앞서 이 영화의 장르가 SF 스페이스 오페라까지 확장된다는 말을 했지만, 그에 뒤따르는 서사가 짧고 살짝 동떨어지는 느낌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가늠해야 한다는 점에서 마무리 또한 당황할 수 있다는 점 참고.

‘호프’는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이자 한국 영화 사상 최고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올해의 초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상반기에 천만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극장 관객이 반등했다곤 하지만 여전히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았기에, ‘호프’는 나홍진 감독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 영화의 ‘호프’가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다만 ‘호프’를 관람하려면 최대한 정보를 배제한 채 보는 것이 좋다. 영화에 대해 주절주절 써놓고 이런 말 하면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놀라움을 오롯이 느끼려면 예고편을 포함해 그 어떤 정보도 주입하지 않은 채 극장에 갈 것을 권한다. 최대한 스포일러 자제한 채 쓴 이 글의 내용도 잊어라. 아, 영화가 끝나고 짧은 쿠키 영상이 있으니 후다닥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고. 어차피 놀란 가슴 부여잡고 진정시키느라 빨리 일어날 수도 없을 테지만.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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