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 설화를 현대적인 신원 탈취의 공포로 변주 잠시도 긴장감 놓을 수 없는 미스터리 추적극

누군가 훔쳐간 나의 삶.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하는, 너무나 아득하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남자의 분투가 10화에 걸쳐 미로처럼 그려진다.
고교시절 부모님의 죽음을 겪은 이후 심각한 공황장애를 갖게 된 제문재(류준열)은 최근 3년 동안 한번도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가명으로 발표한 소설들이 연달아 호평을 받으며 '얼굴없는 천재작가'로 불리던 문재. 어느날 휴대전화 모바일뱅킹 보안인증서가 모두 먹통이 되더니, 은둔생활을 도와 수족처럼 일처리를 해주던 회계사 친구 수현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집이지만 수현의 명의로 계약한 집은 매물로 나와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자 문재는 어쩔 수없이 3년 만에 문 밖으로 나선다. 어렵사리 동창회를 찾았으나 최근까지도 자신을 만났다는 친구들에게 외려 사기꾼으로 몰리던 문재는 설상가상 사채업자 노자(설경구)의 추격에도 쫒기게 된다. 한편 형사 순용(이규형)은 얼마 전 한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여자가 자살이 아닌 살인 피해자라는 익명의 투서를 받고 찾아 간 곳에서 투서가 지목한 인물 노자가 아닌 문재를 만난다.
'들쥐'는 동명의 웹툰을 영상으로 옮긴 미스터리 스릴러로 자신의 삶 전체를 빼앗긴 소설가가 철저한 계획 끝에 자신을 대신해 살아가는 의문의 존재 ‘들쥐’를 추적하는 작품이다. 공황장애를 앓는 문재의 혼란스러운 심리극처럼 시작한 작품은 노자와 연합하며 버디물의 외형으로 변모한 뒤, 액션 활극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전통 설화 '사람의 손톱을 먹은 쥐’를 현대적인 신원 탈취의 공포로 변주한 작품으로, 원작 웹툰 ‘들쥐’가 던진 ‘과연 무엇이 한 인간을 그 사람으로 증명하는가’라는 질문을 '욕망과 질투'라는 근원적인 본능으로, 단순한 신분도용이 아닌 은밀한 시스템으로 확장시켰다.
시리즈 '들쥐'는 원작의 복잡한 서사를 영상물로 재현하기 위해 시각적 쾌감, 속도감 있는 전개에서 고심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오래된 설화에서 출발해 개인정보 탈취라는 현실적인 소재로 확장해 나가는 전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동질의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나의 모든 것이 유출되고 급기야 내 자신마저 빼앗길 수 있다는 각성마저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당연히 ‘악’이라 생각했던 믿음이 비틀리고 거짓과 질투, 해묵은 과거의 인연까지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을 풀 수 없게 한다.
세상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나를 찾기 위한 간절함을 ‘들쥐’는 미스터리와 추적극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10화동안 이어지는 긴 진실찾기를 끌고 가는 것은 그가 선인지 악인지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재와 ‘들쥐’, 1인2역을 연기한 류준열이다. 류준열은 두 인물의 성격과 눈빛, 목소리 등 미세한 차이를 통해 각각의 존재를 차별화한다. 억울한 피해자의 얼굴과 냉혹한 범죄자의 두 얼굴을 그려내며 극의 스릴을 끝까지 유지하는 축으로 활약했다.

설경구가 연기한 사채업자 노자는 돈을 받아내기 위해 문재를 돕는 인물이다. 과거 잘 나가는 조직 중간 보스였지만, 이제는 몰락한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찾는 귀신’이라는 별명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문재를 끌고 ‘들쥐’를 추적해나간다. 류준열과 설경구는 기묘한 공조관계 속에도 간간히 터지는 유머와 인간미, 엇박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누군가의 삶을 훔치거나 타인의 정체성을 대신 살아가는 이야기는 스릴러의 단골 소재로 쓰였다. ‘리플리’가 타인의 신분과 욕망을 탐닉하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보여줬다면, ‘페이스오프’는 얼굴 자체가 바뀐다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정체성의 혼란을 만들어냈다. 개인정보를 탈취해 타인의 인생으로 탈바꿈하는 ‘화차’는 ‘들쥐’에 앞서 사회적 시선과 정체성, 인간이 타인에게 물건처럼 소비되는 우리사회를 조명했다.
‘들쥐’는 이 공포가 좀 더 우리의 현실 속으로 근접해 왔다는 점, 막연한 상상보다 훨씬 더 끔찍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얼굴과 지문, 비밀번호, 계정, 금융정보 등 수많은 인증 수단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그런데 그 모든 시스템이 한순간에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작품은 초자연적인 설화에서 출발하지만 개인정보와 디지털 인증에 의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더 현실적인 불안을 끄집어낸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 개인의 존재는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고 무너진다.

"넌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쓰는 재주가 있더라." 기억마저 왜곡시킬 만큼 거짓을 사실로 뒤바꾸던 문재는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15년간 독방에 갇힌 것처럼, 자신이 만든 거짓말의 성에 스스로를 가두고 급기야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들쥐’는 거대한 음모가 아닌 그저 ‘남의 것을 탐낸, 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길 꿈 꾼’ 평범한 사람이 지어낸 거짓말과 질투에서 벌어진 비극을 그린다. 뉴스 사회면에서 심심찮게 보아온 신원불명의 변사체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개인정보 유출, 나날이 교묘해지는 피싱범죄 등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들이 막연히 느껴온 불안을 직면하게 만든다. 익숙한 신분 도용 스릴러의 외피 위에 오래된 설화와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을 겹쳐놓은 ‘들쥐’는, ‘내가 나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명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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