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치 않게 막내가 된 셋째 동주 役으로 웃음과 눈물 견인

'낀 세대'라는 말이 있다. 여기도 저기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족 안에서도 맏이와 막내 사이에 낀 자녀는 비슷한 설움을 겪는다. 맏이는 처음이라 각별하고 막내는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받는 동안, 가운데 아이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 관심을 붙잡기 위해 더 크게 떠들고 더 자주 떼를 쓰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영화 '경주기행'의 동주(이연)가 그렇다.
든든한 첫째 장주(공효진)와 똑 부러진 둘째 영주(박소담), 가족의 사랑을 받는 귀여운 막내 경주 사이에서 자란 셋째 동주. 그는 생각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유별난 행동파가 되어 가족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경주가 세상을 떠난 뒤 동주는 원치 않게 막내가 됐다. 막내가 누리던 사랑과 보호가 아닌, 막내의 빈자리와 자신이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물려받은 채로.
'경주기행'은 8년 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경주를 위해 복수 여행을 떠난 엄마 옥실(이정은)과 세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단체 티셔츠를 입고 경주의 명소를 돌아다니는 이들의 모습은 단란한 가족여행처럼 보이지만, 봉고차 트렁크에는 경주를 죽인 살인마 백상현(변요한)이 실려 있다.

깊은 상실과 분노를 품은 영화지만 이 가족은 좀처럼 복수극의 주인공답게 움직이지 못한다. 완벽하다고 여긴 계획은 사소한 변수마다 어긋나고, 사람을 납치해 놓고도 벌레 한 마리에 혼비백산한다. 이 어설픈 복수극의 틈마다 가장 많은 웃음을 채워 넣는 이가 이연이다.
이연이 연기한 동주는 부상으로 링을 떠난 전직 프로레슬러다. 선수 시절에는 '퍼플 마그마'라는 꽤나 강렬한 링네임으로 활약했다. 가족들이 복수 방법을 두고 고민할 때 "그냥 지금 죽여버리자"고 말할 정도로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뛰어드는 행동파다.
툭하면 사고를 쳐 엄마에게 등짝을 맞고 큰언니에게 머리통을 쥐어박히지만, 그때마다 입술을 삐죽이며 시무룩해지는 모습은 웃기고도 어쩐지 짠하다. 자신이 왜 혼났는지 영문도 모르겠다는 듯한 천진한 얼굴은 귀엽기까지 하다. 범행 은닉용 차를 구하던 중 만난 열성팬의 요청에 툴툴대면서도 화려한 레슬링 기술을 선보이는 장면에서는 이연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처럼 이연이 투박하게 몸을 날리고 기술을 쓸 때마다 무거운 복수극에는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활기가 돈다.

그러나 마냥 모자라지만 힘센 친구처럼 보이는 동주는 사실 가슴 깊은 곳에 경주를 향한 죄책감을 품고 있다. 과거 동주는 경주를 질투해 동생의 수학여행지를 일본에서 경주로 바꿔 달라고 떼를 썼고, 경주가 그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철없는 질투를 8년 동안 자신의 죄처럼 품고 살았다.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는 듯 위험한 일마다 앞장선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옥실에게 "내가 죽었으면 달랐으려나"라고 말하는 장면은 가슴을 욱신거리게 만든다. 동주는 경주가 죽은 뒤 막내가 됐지만 한 번도 마음 편히 사랑받는 막내일 수 없었다. 이연은 오랫동안 가슴속에서 굴렸을 질문을 울부짖거나 호소하지 않고 툭 떨어뜨린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얼굴이어서 오히려 더 아프다.
'소년심판', '길복순' 등에서 날카롭고 단단한 얼굴을 보여줬던 이연은 '경주기행'에서 그 힘을 유머와 슬픔으로 확장한다. 혼이 나거나 레슬링 기술을 쓸 때는 웃기고, 툴툴거릴 때는 귀여우며, 가족을 향해 내달릴 때는 한없이 처절하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만든 배우가 마지막에는 가장 깊은 아픔을 남기는 역설. 이 웃기고도 아픈 막내의 얼굴을 빈틈없이 완성한 이연이 다음에는 또 어떤 인물로 관객을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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