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살 아저씨가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팔순의 노모를 위해 오늘도 달리는 정신지체장애인 엄기봉씨의 이야기를 그린 KBS '인간극장'-'맨발의 기봉씨'는 찌든 세상 속을 아등바등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안겼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맨발의 기봉이'(감독 권수경·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지오엔터테인먼트)는 기봉씨 모자의 햇살같은 웃음, 소박한 생활, 지극한 효성이라는 감동의 포인트를 고스란히 챙겨 스크린에 되살리겠다는 야심찬 기획이다.
충무로 밥줄 '인간극장'에서 뽑은 실화 소재임을 예고편은 물론 도입부에서도 반복해 강조하는 '맨발의 기봉이'에는 충무로의 흥행 성공사례들이 가득 조합돼 있다. 온전치 않은 정신에도 마라톤을 고집하는 '다큰 소년'에게선 '말아톤'의 기운이,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에 사는 구부정한 허리의 백발 할머니에게선 '집으로'의 기운이 감돈다. 신현준-김수미-탁재훈으로 이어지는 재기 만점의 출연진은 '가문의 위기'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파격 변신을 마다않는 배우들은 또 어떻고. 남성미로 승부해왔던 배우 신현준이 툭 튀어나온 틀니와 쫄쫄이 운동복을 마다않고 장애인 연기에 도전했고, 스크린 진출 이후 당당한 위엄을 풍겼던 '코미디 대모' 김수미는 꼬부랑 시골 촌로가 다됐다. 여기에 기봉에게 마라톤을 가르치는 백이장(임하룡 분)과 버르장머리 없는 아들 여창(탁재훈 분)을 더해 순진무구하기만 한 기봉의 이야기에 갈등의 요소를 더해 그럴듯한 바탕을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는 트렌디와는 거리가 멀다. 주말 TV드라마와 휴먼 다큐멘터리에서는 반복해 다뤘을지언정 스크린에서는 좀체 만날 수 없었던 '효'가 바로 그것이다. 대세는 아닐지언정 어수룩하기만 한 주인공과는 대조를 이루는 영민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개봉시점은 가정의 달 5월을 한주 앞둔 봄날이 아닌가. 가진것 없는 기봉 모자의 살가운 정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덕분에 영화는 뜻밖에 가슴이 저릿한 순간들을 함께 포착한다. 얼굴 가득히 주름을 만들며 온몸으로 웃는 신현준의 모습은 그중 하나다. 허를 찌르는 대꾸와 마냥 행복한 표정은 스틸 사진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슴푸레한 새벽 안개를 헤치고 달리는 기봉과 백이장의 뒷모습, 아들의 모습에 눈가가 젖어오는 어머니, 그리고 남해 다랭이마을의 절경까지.
덕분에 '맨발의 기봉이'는 가정의 달을 맞아 온 가족이 즐겁게 관람하기에 무리없는 기획영화로 완성됐다. 그러나 여기까지. 매끈하지 못한 이음새는 못내 아쉽다. 촬영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편집된 세세한 에피소드가 빠지면서 기봉 모자 이외 마을 사람들의 관계와 인식의 변화가 단편적으로만 설명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삭제 장면을 편집해 소개한 엔딩 크레딧은 꽤 볼만하다.)
기봉의 맹목적인 달리기 욕구는 그렇다치고, 기봉의 달리기를 못마땅해 하던 마을 사람들의 열띤 응원도, 망나니짓만 하던 여창의 극적인 변모도, 기봉이를 먼저 염려하던 백이장의 결단도 영화는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세심한 전개가 생략되면 망가짐을 무릅쓴 배우의 투혼도 빛이 바랜다. 주도면밀한 기획이 반드시 매끈한 결과물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27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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