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석-성철의 에로&마초]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루지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옹녀의 부재'다. 1980년대 대표적인 에로티시즘 사극인 '변강쇠'(86)와 '가루지기'(88). 판소리 '가루지기전'을 토대로 한 이 영화들은 결코 변강쇠라는 정력남 만으로는 곧게 설 수 없었으니, 반드시 그는 옹녀와 짝을 이뤄야 했다.
변강쇠가 거대한 '거시기'로 수많은 아낙네들을 '후린' 단순한 남정네라면, 옹녀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타고난 물건 덕에 명성을 떨친 변강쇠와는 달리, 옹녀에겐 어떤 강한 '운명성'이 있다. 고우영 감독이 자신의 만화를 직접 연출한 1988년의 '가루지기' 도입부엔 옹녀의 탄생에 대한 애니메이션 부분이 삽입되어 있는데, 여기서 옹녀는 사마귀와 거미의 정기를 타고난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녀는 한 남자와 두 번 이상 섹스하지 못한다. 그녀의 강한 음기는,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처럼 상대방을 죽인다. 이른바 '색살'(色殺)의 운명을 타고난 그녀의 뜨거운 몸엔 강한 아이러니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강한 욕정을 타고났지만, 그 욕정을 채우기 위해선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것. 변강쇠의 강한 남근이 여성들에게 그저 아랫도리가 뻑적지근해지는 통증을 남긴다면, 옹녀의 괴물 같은 음문은 남성의 정기를 완전히 흡수해 결국 생명을 앗아간다.
그런 면에서 옹녀는, 1980년대 에로 사극의 일반적인 '마님'들과 차별된다. 흔히 당시 한국영화를 남성적 쾌락을 위한 '벗기기 영화'로 평가하지만, 그 안에서 옹녀라는 캐릭터만큼은 '여전사'에 가까웠다. 옹녀는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불을 끄는 적극성을 보여주며, 도저히 수절할 수 없는 여성이다.
그녀는 '여성의 성욕'을 부끄럽거나 감춰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과 '속궁합'이 맞는 남자를 찾아다닌다. 그래서 옹녀는 항상 유랑의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다행히(!) 변강쇠라는 완벽한 파트너를 만나, 잠깐이지만 행복을 느끼고 현모양처마저 된다. 하지만 강쇠가 장승을 뽑아 불에 태운 탓에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자, 옹녀는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다. '색살'만큼이나 강한 '역마살'은 옹녀의 운명이고, 그 '강한 여자'도 운명 앞에선 그저 사랑을 잃고 슬피 우는 가련한 여인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옹녀의 딜레마다.
변강쇠 캐릭터가 이대근으로 수렴되는 것에 비해, 옹녀 캐릭터는 맡은 배우에 따라 꽤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먼저 대모격인 배우는 '변강쇠'의 원미경(사진). '색기' 면에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던 '옹녀의 전형'이었고 '(속)변강쇠'(87)에선 '2대 변강쇠'인 김진태와 호흡을 맞추었다.
원미경의 뒤를 이은 하유미도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 성적 표현에 있어서는 오히려 원미경을 능가했다. '가루지기'의 김문희는 섹시하기보다는 귀여운 편. 이 영화에서도 변강쇠 역은 이대근이 맡았는데, '변강쇠'의 이대근과 원미경이 고수들의 내공 대결이었다면 '가루지기'의 이대근과 김문희는 좀 더 만화적이고 과장된 만남이었다.
그렇다면 봉태규가 강쇠 역을 맡은 21세기의 '가루지기'에선? 옹녀 대신 달갱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웅녀'가 등장해 강쇠와 한 판 대결을 펼친다.
<김형석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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