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원빈의 감성 멜로 액션극 '아저씨'가 개봉했다.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던 전당포 아저씨가 범죄 조직에 납치된 옆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 여기까지만 듣고 보면 '대체 애가 그렇게 되도록 애 엄마는 뭘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문제의 애 엄마를 연기한 배우는 스물여섯 김효서다. 그녀는 영화 '아저씨'에서 밤무대 댄서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미혼모 효정 역을 맡아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아직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받아들여질 그녀. 김효서를 만났다.
◆소미 엄마가 아닌 효정이가 되기 위해
이름만으론 다소 낯설지 몰라도, 김효서는 어느 덧 데뷔 8년차를 맞은 여배우다. 2003년 MBC 공채탤런트 출신인 그녀는 그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내공을 쌓아왔다. 오디션을 통해 '아저씨'의 효정 역을 따낸 그녀. 20분짜리 오디션을 40분 동안 보는 등 그 과정 또한 특별했다.
"제가 여자 연기자 중에 제일 처음으로 오디션을 봤을 거에요. 전당포에서 소미를 찾는 장면을 가지고 오디션을 봤었는데 저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차분하지만 강하게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소리를 질러야만 더 절박하고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감독님께서 그 느낌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구요."
김효서는 아이를 팽개친 미혼모 역할에 접근함에 있어서도 인물 자체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효정이 극중 소미의 엄마이긴 하지만 아이는커녕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여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성이나 아이와 어머니간의 감정적인 교류보다는 효정이라는 인물의 삶 자체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고.
"사실 제 성향과는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긴 한데, 제가 연기함으로써 또 다른 효정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설프게 따라하려기 보다는 제 안에서 다른 이면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었고, 댄서라는 직업 때문에 춤 연습도 했었어요. 감독님께서도 춤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효정이의 고단한 삶을 한 번 겪어보라고 하셨구요."

◆2010년, 김효서의 발화점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녀. 우연히 연극을 보러갔다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연기에 마음을 빼앗겼단다. 앞에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자신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고. 결국 그녀는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울 결심을 하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막상 연기를 시작하게 되긴 했지만 사실 하면서도 처음엔 별로 자신감이 없었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었고…. 그런데 학교에서 계속 뭔가를 새롭게 배우고 경험하고 공연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러다보니까 점점 더 욕심도 생기게 됐구요."
그녀에게 2010년은 그렇게 8년 간 쌓아온 욕심을 하나 둘 채워갈 시기가 될 것이다. 원빈, 이정범 감독과 함께 한 '아저씨'를 통해 많은 대중과 만나게 될 테고, '아저씨'를 촬영하기 전에 출연했던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을 찾는다. 서두름 없이 도전을 이어온 그녀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드라마가 많은데 아직 저를 확실히 기억시킬만한 역할이나 작품은 없었어요. 영화 '아저씨'를 선택한 것도 차분하고 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였거든요. 배우로서 다른 면도 보여드리는 일종의 도전이기도 하고, 그게 대중 분들께 각인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단명 전문 배우의 끝 모를 욕심
김효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비극적인 캐릭터로 등장해왔다. MBC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에서는 휠체어를 타는 석경을 연기했고 KBS 1TV '너는 내운명'에서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새벽(윤아 분)에게 각막을 기증하는 나영으로 분했다. 회상 장면 등으로 짧게 등장하는 작품이 많았기에 이제는 좀 긴 호흡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그녀.
"어떻게 하다보니까 늘 중간에 죽는 역할을 맡았더라구요. 비교적 인상을 깊게 남기는 캐릭터들이긴 했지만 이제는 긴 호흡의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혼자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여운을 남기고, 배우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연기해보고 싶은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질문에는 꽤나 구체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의 주인공처럼 하는 행동이 정상적이진 않지만 어딘가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아는 여자'의 이나영처럼 귀여운 스토커를 해보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더니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보면 집착이고 변태 같아 보일수도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그게 그렇게 나쁘게만 보이지 않거든요. 오히려 너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안쓰러워 보일 정도에요. 그런 캐릭터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서 다른 사람의 공감을 산다는 게 굉장히 매력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해보고 싶은 것들 투성이'라는 8년차 배우 김효서. 서두르지 않고 새로운 걸음을 준비하는 그녀는 진정 '욕심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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