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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직함만 다섯..사람들이 버겁냐 묻지만"(인터뷰)

조재현 "직함만 다섯..사람들이 버겁냐 묻지만"(인터뷰)

발행 :

김현록 기자

제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조재현 집행위원장 인터뷰

조재현 ⓒ이기범 기자 leekb@
조재현 ⓒ이기범 기자 leekb@


DMZ국제다큐멘터리 집행위원장, 경기영상위원회 위원장,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이사장, 성신여대 교수, 연극열전 프로그래머, 그리고 배우 조재현(47). 오는 21일 제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앞두고 직책을 나열하기도 벅찰 만큼 여러 일을 하면서 배우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그를 만났다. 위원장님의 검은 양복에 넥타이 대신 '에쿠우스' 이미지가 그려진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었다. 넥타이를 못 견뎌 하는 조재현 스타일이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다'는 투덜거림을 기대했건만, 조재현은 바삐 다음 스케줄을 챙기면서도 "재미있다. 몸이 적응을 했다"고 즐거워했다. 아무 기반 없이 시작해 눈총과 외압 속에서도 알찬 기획 속에 4년을 지나오며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성장한 DMZ영화제. 조재현은 "영화제 일을 하며 어려움이 있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며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어 못 한다"고 여유를 부렸다.


열정적인 활동만큼 인터뷰도 열정적이었다. 짧은 질문 뒤엔 어김없이 긴 답변이 이어졌다. 분명 거듭된 고민 끝에 나왔을 답이었다.


-직함이 정말 많다. 버거울 법도 한데.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직함이 너무 많아 버겁지도 않다.(웃음) 다행히 상근직이 아니라 시간을 막 투자해야 하는 일들은 아닌 것 같다. 대신 그때그때 하루 스케줄을 쪼개야 하는 일이 많다. 오늘도 수원에서 왔다가 저녁에는 개인 작업을 하러 대학로로 간다. 하루에 서울, 수원, 파주, 대학로를 다 돌 때도 있다. 밤 10∼11시쯤엔 가벼운 술자리도 자주 갖는다. 다행히 잠이 좀 없다. 하루 5시간 정도 자는데, 때에 따라서는 2∼3시간도 자고. 보통 3∼4시에 자서 알람이 없어도 8∼9시면 눈이 떠진다.


-대단한 열정이자 체력이다. 그 사이에 작품 활동도 하지 않나.


▶재밌다. 이제는 몸이 자연스럽게 적응을 했나 보다. 어쨌든 제게는 촬영하는 게 가장 쉬운 스케줄이다. 그게 제일 편하고 좋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퀴어라이온상을 받은 '무게'에도 출연했다.


▶경기영상위원회에서 출자한 펀드에서 투자 결정을 했다. 사실 그 전에 전규환 감독에게서 시나리오를 먼저 받았고. 고등학교 친구이자 초창기 제 매니저이기도 했다. 기회가 되면 함께 하자 했는데 이번이 그렇게 됐다. 영화를 들여다보면 배우들이 연기를 굉장히 잘 하는데, 디테일하게 연출하고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재주가 있는 감독이더라. '무게'를 보니 내 모습인데도 맑고 순수한 모습을 담아냈더라. 나름 세트도 짓고, 특수분장에 CG도 들어갔다. 제작비가 3억이었는데 당연히 나는 개런티 안 받았다. 경기도에서 투자하는 영화에 돈 받는 모양새도 안 좋고, 친구 영화인데 그 돈이면 제작비에 보태는 게 낫다.


-전규환 감독이 이번 영화제 트레일러도 만들었다. 출연도 했는데.


▶우리 영화제 기치가 평화, 생명 소통인데, 말로만 소통이지 거기에 대해 진실하게 고민해봤냐 이거다. 소통은 설득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말을 좋아한다. 트레일러는 소시민이 포장마차에서 넋두리를 하는 거다. 진짜 술 마셨다. 다큐니까.(웃음) 막 혼자 이야기를 하는데 앞에 아무도 없는 거지. 거기서 새가 다다다 날아가는데 어떤 희망을 담은 거다. 비둘기 CG를 해야 하는데 제작비 문제로 그냥 종이학이 나왔다.(웃음) 이번엔 작품적으로도 보다 대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감동있고 재미있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조재현 ⓒ이기범 기자 leekb@
조재현 ⓒ이기범 기자 leekb@


-DMZ영화제가 올해로 4회다. 굉장히 빠른 시간에 자리 잡았다.


▶첫 회 때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제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DMZ와 접목시키는 건 좋다 했지만, '한나라당 김문수 도지사랑 하는 경기도 이벤트가 아니냐' 하는 시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웬 다큐냐'면서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프로그래밍을 보고 '접근이 좋네' 이렇게 된 거다. 2회부터는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져줬고, 다녀간 다큐 감독들이 칸이나 베니스 가서 좋은 소문을 내 줬다. 슬슬 우리 영화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는 건데, 첫 회 때 자원봉사자 60명을 뽑는데 30명이 지원했다. 2차 모집해서 58명 만들고, 아는 사람 2명 더해서 60명을 채운 시절이었다. 지금은 100명 모으는데 600명 넘는 지원자가 오고, 떨어진 친구가 메일을 보내서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웃음)


-민감한 정치적 이슈, 정권에 반대되는 시각을 담은 다큐들도 선보여 특히 눈길을 모았다.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본질을 잊지 않았다는 거다. 어떤 외압, 정치적 색깔도 관여시키지 않았다. 또 그만큼 우리 영화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지난 영화제를 보면 용산 참사, 쌍용차 노조, 4대강, 강정마을 그런 테마가 다 포함돼 있었다. 반면 미군 참전용사 다큐는 색안경을 보면 친미적으로도 볼 수 있었다. '김정일리아'같은 것도 있었고. 그런 작품이 자유롭게 공존했다.


과거 한 기업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하려다 못한 적이 있다. 각종 외압 때문에 기업이 문제가 돼서 였다. 그런 면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좋다. 국가를 대변하는 데가 아니고 또 어떤 면에 서는 굉장히 공격적이기도 하다. 얼마 전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 아리랑 행사를 해서 4만5000명 일반 시민이 참여한 적이 있었다. 아이돌 스타 동원해서 사람 부르면 그게 아리랑 행사가 될 수 있겠나. 그냥 강행하고 맨투맨으로 부딪쳐서 해냈다. 그렇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돌진해가는 모습이 DMZ영화제를 만들어준 거다.


-외압같은 건 없었나.


▶작년과 재작년, 2∼3회에 정치적 색깔이 강한 작품이 많았다. MB정권 들어선 뒤인데다 사회 문제도 복잡했고 그러다보니 '선동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쌍용차 노조 위원장을 따라다니며 담은 '저 달이 차기 전에'라는 다큐가 있었는데 보면 눈물이 철철 난다. 그걸 본 고등학생이 관객과의 만남에서 질문을 하더라. '왜 노동자 이야기만 하고 사측 입장은 안 넣었냐'고. 감독이 '뉴스를 통해 넣었지만 나는 노동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큐가 찍는 자의 주관적 시각일 뿐 객관이 아니라는 거다. 그건 선동이 아니다. 참고할 뿐이지.


정보가 없던 시절에야 영화 하나 보고 선동되고 했지만 요즘 애들은 한겨레도 검색하고 조선일보도 검색한다. 내 눈 앞에서 고등학생이 그렇게 본 거다. 그런데 으레 겁을 먹고. 때로는 연락이 온다더라. 쓰리쿠션 포쿠션…예민했는데, 한다리 걸쳐 연락이 오긴 해도 직접적으로 연락 온 적은 없었다. 그냥 작품이다. 그걸 표현 못하게 억압하는 게 문제다.


-직함이 여럿이면 월급도 따로 받나.


▶영상위원회 위원장이 영화제 위원장을 병행하는 건 전국에 우리밖에 없다. 월급은 한군데서만 준다. 두 군데서 안 나온다. 또 영상위는 경기콘텐츠 진흥원 소속이기도 한데 아주 복잡한 구조다. 이 구조에서 영화제를 끌고 가려고 하니 힘들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다. 어렵다.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어디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는 수당을 안 받겠다고 했는데 그게 또 전에 비상근이 없었나 보더라. 그래서 '수당을 받되 이사장답게 기증하겠다' 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재능기부를 했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마지막엔 그 악기를 사주는 데 쓰였다. 지나고 보니 좋은 교육이었구나 싶다.


조재현 ⓒ이기범 기자 leekb@
조재현 ⓒ이기범 기자 leekb@


-어려워도 영화제 일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어쨌든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고 연기자로서도 후배가 훨씬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책임감도 느끼고. 제일 싫어하는 게 책임감인데 책임질 일들을 하고 있다. 어차피 관여했는데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평생 할 일이 아니다. 잘 펼쳐져서 다른 사람이 와서 앞으로도 잘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몫인 것 같다. 새누리당 도지사 아래에서 자유롭게 펼친 게 오히려 더 좋은 배경이 된 거지. 어느 도지사가 와도 갈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드는 게 나의 목표다.


-정치적 욕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연기 외적인 걸 하다 보니 나온 이야기지만 전혀 근거가 없다. 정치인을 잘 모른다. 영화야 어느 감독이 만들고 배우가 출연하고 이런 게 입력이 되지만 정치는 안 그렇다. 처음엔 김문수 지사도 몰랐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야 하는데 유독 입이 처져 있다. 얼굴도 비슷해 보이고 눈에 안 들어온다. 멋이 없다. 나는 배우다. 배우는 '폼생폼사'인데, 정치하는 건 아직은 폼이 안 나는 것 같다. 그 무리에 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왜 이 많은 일들을 계속하고 있나.


▶이를테면 이렇다. 연기는 정면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영화제의 꽃은 프로그래머다. 집행위원장은 판을 벌리고 발전시키는 거다. 경기도 문화의 전당에서는 문화 혜택을 적게 받는 사람에게 돌려주는 일, 힘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을 한다. 내가 배우로서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아니지만 그런 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거다. 그걸 하고 지켜보는 기쁨 또한 폼난다. 보람되고 멋있다. '에쿠우스'라는 작품을 연출해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늘 관객과 마주치다가 그걸 관객 뒤에서 보는 느낌 또한 매력적이더라. 묘했다. 그런 느낌이 있다.


배우의 길을 가면서 갑자기 증권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 내가 해왔던 일과 유관한 일의 후면에 나서는 건 굉장히 재밌다. 재미를 느낀다는 건 일이 아닌 거다. 일을 하며 재미를 못 느낀다면 '일'이다. 박지성 김연아를 보면 '진짜 멋있다 잘한다'고 하지 '일 잘한다'고 하지 않지 않나. 그 사람에게는 직업이지만 박지성에게는 일이 아니라 축구이듯 연기자에게도 연기일 뿐이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을 내가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이건 연기와 유사한 놀이다, 플레이(play)다 생각했다.


선택한 일에 고통이 따르는 건 당연한 거다. 영화제 하면 해코지하는 사람, 방해하는 일이 얼마나 많겠나. 자잘한 일도 많다. 자원봉사자 옷을 해주기로 했는데 '빵꾸'가 나는 것까지, 세세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당연한 거다. 운수회사 하면 차 사고 나는 게 당연한 거고, 식당 하면 난동 부리는 사람, 까다로운 손님 오는 게 당연한 거다.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일부러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지금껏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1주일, 한 달, 6개월 지나면 잘 해결됐던 기억이 있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또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게 제 원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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