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가 사상 최초로 1억 관객을 돌파한 2012년, 여성영화인들의 활약은 특히 돋보였다.
1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괴물'을 넘어 한국영화 흥행 1위 기록을 다시 쓴 '도둑들'의 제작자는 케이퍼필름 안수현 대표였다. 심재명 대표의 '건축학개론'과 김수진 대표의 '늑대소년'은 각각 410만 관객, 7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연거푸 한국 멜로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썼다. 이유진 대표가 제작한 '내 아내의 모든 것'은 458만 관객을 넘긴 성공한 로맨틱코미디였다. 이들 여성 제작자가 단 4편의 영화로 끌어모은 관객수만 단순 합산해도 얼추 30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입 떡 벌어지는 관객수와 흥행수입만으로 이들의 활약을 평가하는 것은 부족한 감이 있다. 올해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상은 기성 남성 영화인들과 비교해 '다른' 영화, '다른' 시각의 작품은 거푸 선보이며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더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컸다. 감정선에 민감하고 더 섬세하게 이를 조율하는 여성들의 차이 또한 그들이 만든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006년 이후 산업화를 겪으며 부각된 여성 영화 제작자들의 활약 또한 올해 들어 폭발한 모습이었다.
'도둑들'은 최동훈이란 흥행 감독과 톱스타들을 한 데 모아 신나고 재밌는 오락 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만으로 달려간 대찬 기획이었다. '건축학개론'은 1990년대의 감성을 2012년에 되살리며 '첫사랑 신드롬'을 이끌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주류 관객층인 20대가 아닌 30대를 겨냥해 작품을 성공시키며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판타지멜로의 새 장을 열며 순수를 자극한 '늑대소년' 역시 여성 제작자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었다.
어디 여성 제작자들 뿐인가.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극한의 자본주의, 피폐해진 여성의 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내며 새로운 스릴러의 길을 열었고, 방은진 감독은 영화 '용의자X'로 원작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결의 감성을 포착해 냈다. 두 작품은 각각 200만, 150만 관객을 넘기는 등 흥행 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며 관객과 호흡했다.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은 주류 영화계에서 그치지 않았다. 맹활약한 김일란 홍지유 감독, 신아가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다양성영화들이 점유율 1%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와중에서도 용산 참사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묵직한 문제의식과 무시무시한 폭발력으로 깊은 잔향을 남겼다. 그 연출자인 김일란 홍지유 감독은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보여온 여성 감독들이다. '밍크코트'의 신아가 감독은 이상철 감독과 함께한 첫 장편영화에서 가족과 종교의 문제를 신랄하게 짚었다.
여배우들 또한 빛났다. '화차'를 홀로 이끌다시피 한 김민희,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남다른 아내 임수정, '도둑들'의 세대별 여성 도둑 김혜수 김해숙 전지현, '건축학개론'의 첫사랑 아이콘 수지 한가인, '늑대소년'의 순수 소녀 박보영 등등. 스크린의 꽃에 그치지 않은, 살아 펄떡이는 여성 캐릭터들이 유난히 돋보였던 2012년이었다.
안수현, 이유진, 심재명, 김수진 등 여성 영화제작자들이 밝혔듯 영화계는 비교적 여성의 진입이 자유로운 분야다. 관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여성의 다른 시각, 투명성과 섬세함이 영화 제작 과정과 그 결과물에 또 다른 미덕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영화인들의 활약 또한 그 밑거름이 됐다. 동시에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 감독들을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성 영화감독은 영화계의 주류가 아닌 게 이 바닥의 현실이기도 하다. '여배우들이 할 영화가 없다'는 말이 쏟아져나올 만큼 남성 캐릭터 위주의 영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한국 관객들이 유난히 한국 영화들을 사랑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이 같은 경향이 이어질 것인가를 쉽사리 장담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다. 내년 임순례 감독의 새 작품이 나오고 여성 제작자들의 신작이 개봉할 예정이지만 올해 들어 돋보인 여성영화인들의 활약상이 내년에도 이어질 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2012년이 여성영화인들의 성장과 활약을 이야기하는 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는 한국 영화가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는 데에도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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