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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유도소년', 땀과 파스로 빚은 무대판 '응칠'

연극 '유도소년', 땀과 파스로 빚은 무대판 '응칠'

발행 :

안이슬 기자
사진

한때는 유망주였던 고교 유도선수 박경찬. 지금은 아픈 것이 싫고, 버티다 지는 것이 싫어 지레 경기를 포기하는 겁쟁이가 됐다. 기가 막힌 사건으로 유도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이를 막을 방법은 전국체전에서 메달을 따는 것. 이런 상황에서 첫 눈에 마음을 빼앗은 소녀가 나타나고, 그녀의 곁에는 멋진 남자가 떡 하니 맴돌고 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이 이야기가 '유도소년'의 골조다.


'나와 할아버지', '올모스트메인' 등을 만든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지난 달 26일 '유도소년'을 내놓았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이 이야기가 간다의 손을 거치며 일 년치 웃음과 왠지 모를 뭉클함을 선사하는 코믹청춘물로 재탄생했다.


마치 어린 시절 보던 명랑만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유도소년'은 뻔한 이야기를 개성 강한 캐릭터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사,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적재적소에서 활용되는 소품들로 보기 좋게 비틀었다. 극을 이끄는 여섯 명의 캐릭터를 팔딱팔딱 살아 있고, 좁은 매트 위에서는 실제 유도경기를 방불케 하는 리얼한 경기와 얼차려가 이어진다. '유도소년'이 공연되는 아트원씨어터 3관은 들어서는 순간 파스 냄새가 느껴진다.


홍우진과 박훈이 연기하는 주인공 경찬은 얄밉고 철없지만 어딘지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맛깔스러운 군산 사투리와 날 티 나는 패션, 귀여운 허세가 어우러져 유쾌하게 극을 이끈다. 한때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유도 유망주였지만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찬의 모습은 어린 시절 큰 꿈을 꿨지만 현실의 벽을 부딪치고 좌절하곤 했던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그의 마음에 들어온 화영(정연, 박민정)은 내숭9단의 청순한 여성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다. 화영을 짝사랑하는 민욱(차용학, 박성훈)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소위 '오그라드는' 면모로 의외의 웃음을 준다. 두 배우의 조각 같은 몸매도 여성 관객들에게는 작은 즐거움이다.


경찬을 우상으로 삼은 유도부 후배 조태구(윤여진, 조현식)와 요셉(박정민, 오의식)은 최고의 콤비다. 특히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요셉이 툭툭 던지는 의외의 말들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실제 요셉의 모델이 됐다는 박정민은 미국에서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된 교포의 느낌이 사실적으로 살아있고, 오의식의 요셉은 귀여움이 매력이다. 극을 본 후에는 '셉셉이'를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걸릴 것.


대체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배우들의 합은 쫀쫀하다. 연기의 합은 물론이고 얼마나 연습 했을지 싶은 유도 경기의 합도 상당하다. 공연장이 쿵쿵 울리고 바닥에 땀이 흥건해질 정도로 격렬한 유도 경기와 훈련을 이들은 매 공연마다 소화하고 있다. 유도 신 뿐 아니라 복싱선부로 등장하는 민욱의 훈련, 배드민턴 선수인 화영의 경기 모습도 꽤 각이 나온다. 코치와 교장, 경찬 아버지 역할 등을 멀티로 소화하는 우상욱과 양경원은 각각 다른 디테일로 웃음을 준다.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로 이어진 복고 코드까지 적절히 녹아들어 의외의 향수를 불러온다. 브릿지 음악,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는 UP의 '뿌요뿌요', 벅의 '맨발의 청춘', H.O.T.의 '캔디' 등 그때 그 노래들과 경찬의 가방에서 쏟아지는 영챔프와 야한 잡지까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들이 극 사이사이를 메운다. '본부, 본부'를 외치면 전화가 간다는 바로 그 휴대폰과 많은 이들을 공중전화 앞에서 서성이게 했던 삐삐까지. 적재적소에 녹아있는 1990년대의 흔적이 반갑다.


그간 간다의 극들이 그러했듯 '유도소년'의 무대도 간결하다. 때로는 체육관으로, 때로는 경기장으로 활용되는 마룻바닥과 캐비닛, 의자 몇 개, 샌드백이 전부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상황을 상상하는 데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도록 극을 구성했다. 자신이 중심이 된 장면이 아닐 때에도 무대 구석에서 항상 움직이고 있는 배우들도 좋은 소품이 된다.


대단한 감동과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작품은 아니지만 정신없이 두 시간을 웃다보면 어느 새 그 시절 내 모습이, 내 꿈이 마음에 차오른다. 경찬이 외치는 "끝났다고 허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랑께!"라는 흔한 대사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13세 이상 관람가로 남녀노소 누구와 보아도 손색이 없다. 오는 6월 29일까지 공연.


안이슬 기자 drunken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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