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빅쇼트'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의 가운데 거액을 벌어들인 괴짜 투자가들의 이야기다. 대담하고도 흥미롭다. 자연히 서프라임모기지, 부채담보부증권(CDO),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한번 들어 되뇌기 힘든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경제용어에 대한 막연함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도 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2005년 미국, 주택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집을 담보로 한 각종 파생상품을 팔아제낀 대형 투자은행들은 전에 없는 호황을 누린다. 캐피탈 회사를 운영하는 마이클 버리(크리스천 베일)는 어느 날 이 은행들의 밑천인 CDO의 위험성을 간파한다. 그는 골드만삭스를 찾아가 부동산 시장 폭락에 베팅하는 신용부도스와프 계약을 맺는다. 이 소식을 전해듣고 돈냄새를 맡은 도이치은행의 왕따 뱅커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은 은행에 역행하는 사품을 소수 투자자들에게 권한다. 불같은 성격의 염세주의자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은 베넷의 주장에 반신반의하지만, 직접 현장을 누비며 주택시장의 허상을 목격하곤 그와 손을 잡는다. 세계가 곧 망할 것이라 믿는 전직 트레이더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는 젊은 자산관리사들이 세계경제 붕괴에 투자하도록 다리를 놔 준다. 그리고 예정된 경제위기의 시간이 다가온다.
영화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년도별 미국의 단상을 보여주는 몽타주들과 함께 월스트리트의 괴짜들이 대세에 역행해 성공시킨 우여곡절 많은 투자기를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세계 경제 폭락의 와중에 떼돈을 벌어들인다. 거부의 탄생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지만, '빅쇼트'가 주목하는 곳은 조금 다르다. 영화는 일확천금을 거머쥔 승부사들의 성공기를 그리는 대신 도덕성이라곤 찾을 수 없는 뻔뻔한 은행의 작태, 그 때문에 벌어진 되돌리기 힘든 비극을 과감하고 재기발랄하게 포착한다. 눈돌릴 새 없는 '빅쇼트'의 2시간이 지나고 남는 건 도덕관념이라곤 없는 월 스트리트 돈잔치에 대한 환멸이다.
버리의 투자금을 눈먼 돈이라 생각하고 낼름 삼키는가 하면, 주택시장 붕괴가 눈에 보이는데도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CDO 가격을 오히려 올리고, 신용평가사마저 그에 휘둘려 제 역할을 못하는 은행가의 작태는 영화 속 디테일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을 알고 보는데도 '진짜 저 지경이었나' 싶을 만큼 뻔뻔하기 그지없다. 눈돌릴 틈 없는 2시간이 지나고 남는 건 가늠도 되지 않는 액수가 오가는 모습을 그저 황홀하게 지켜봤던 월 스트리트 돈 잔치에 대한 환멸이다.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해 무책임했으며 심지어 위선과 범법까지도 개의치 않았던 은행을 기어이 국민의 세금으로 살려놓은 대목에 이르면 십수년 전 우리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SNL 메인 작가로 활동했던 코미디언 출신의 아담 맥케이 감독은 속사포같은 설명과 묘사 속에 거침없는 풍자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인물들은 때로 관객을 향해 말을 걸며 세태를 비아냥대고,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대목에서도 재기발랄함을 잃지 않는다. 거품 목욕 중인 마고 로비, 룰렛 게임 중인 셀레나 고메즈, 세계적 셰프 안소니 브루댕을 뜬금포 카메오로 등장시켜 막막한 경제용어들을 적절히 비유해 풀어내는 센스 또한 돋보인다. 이 가운데서도 평범한 다수의 비극을 환기시키는 순간들은 재기발랄한 풍자극의 또 다른 미덕이다. 마지막 순간 '나 또한 저들과 똑같은 놈이 되는 게 아니냐' 고민하는 바크 바움의 옆모습, 떼돈 벌 생각에 들뜬 젊은이들에게 네가 어디에 돈을 걸었었는지 돌아보라는 벤 리커트의 일갈은 두고두고 여운으로 남는다.
환상적인 캐스트들은 서로 만나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받지 않는데도 각자 제 몫을 확실하게 해 낸다. 스타 이름값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나사풀린 듯한 행색의 사회부적응자이자 천재 투자가 크리스천 베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폭스캐처' 이후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선 스티브 카렐이 단연 돋보인다. 참 '빅 쇼트'(Big Short)란 가치하락에 투자하는 것을 뜻하는 주식 용어다.
15세관람가. 러닝타임 1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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