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아가씨'는 홍길동일까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처럼, 퀴어영화를 퀴어영화라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흥행몰이 중입니다. 1일 개봉한 이래 17일까지 350만명을 동원했죠. 알려졌다시피 '아가씨'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스릴러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일제시대로 무대를 옮겨와 막대한 유산의 상속녀를 꼬드겨 재산을 빼돌리려는 사기꾼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던 중 사기꾼 일행인 하녀가 그만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습니다.
칸국제영화제에서부터 김민희와 김태리의 레즈비언 베드신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여성의 사랑과 연대가 이야기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추악한 남성들이 쌓아올린 거짓 세계를, 두 여성이 사랑과 연대로 부수고 탈출하면서 해방을 맛본다는 이야기죠.
원작부터 영화 만듦새, 의도까지 퀴어영화의 모범이라 할 만합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기획부터 영화를 선보이고, 400만 관객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여전히 퀴어영화란 소리를 좀처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민희와 김태리가 애정을 담아 서로 바라보는 사진 한 장조차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멜로영화라도 그랬을까요?
퀴어영화란 뭘까요? 원래 퀴어는 이상하다, 기괴하다란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그렇게 묘사하자, 아예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흑인이 자신들을 비하하는 용어인 '니거'를 스스로 사용하면서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죠.
퀴어영화는 동성애를 소재로 하거나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말합니다.
한국에선 1994년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이 퀴어영화란 이름으로 최초로 개봉했습니다. 이후 '후회하지 않아' 등 몇 편의 퀴어영화들이 한국에서 개봉해 잔잔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퀴어영화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는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대체로 저예산영화로 만들어집니다. 한국에선 '왕의 남자' '쌍화점' 등이 상업영화 안에서 동성애 코드를 넣긴 했습니다만 본격적인 퀴어영화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아가씨'는 퀴어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20억원이란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돼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첫 한국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가씨'는 퀴어영화로 불리지 않고 있습니다.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최고 흥행속도를 내고 있다고는 자랑을 해도, 정작 역대 한국에서 개봉한 퀴어영화 흥행 1위라는 건 숨기고 있습니다. 역대 한국 퀴어영화 흥행 1위는 '후회하지 않아' 였습니다. 4만 3348명을 동원했었죠. 지난 2월 개봉한 '캐롤'은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로 상당한 화제를 모았었습니다. 그래도 관객수는 31만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아가씨' 흥행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 그렇기 때문일 것입니다. 퀴어영화에는 분명 선입견이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도 있을뿐더러, 상업적으로 흥행이 어렵다는 편견도 있습니다. 때문에 '아가씨' 쪽에선 퀴어영화라는 포장을 애써 피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아가씨'는 퀴어영화입니다. 스릴러를 스릴러라고 부르고, 코미디를 코미디라고 부르고, 멜로를 멜로라고 부르는 것처럼, 퀴어도 퀴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지난 11일 퀴어퍼레이드가 서울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상당했습니다. 이튿날, '아가씨'가 300만명을 넘었습니다. 우연입니다. 그래도 우연이 겹치면 필연입니다.
'아가씨' 흥행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있는 어떤 현상입니다.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이 됩니다. 면을 합치면 입체가 되죠. '아가씨' 흥행은 점 입니다. 이런 점들이 모이면 분명 선이 될 것입니다.
'아가씨'가 퀴어영화라는 점, 그런 '아가씨'를 4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봤다는 점,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을 때 300만명을 넘어서고 있었다는 점, 이런 점들은 이어집니다.
이런 이어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제대로 지켜보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그게 지금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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