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 좋은 상사일 것 같은 모습. 그래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형이더라"며 너스레를 떠는 양반. 이성민. 올해로 한국나이 50세다. 오랜 무명배우 시절을 거쳐 '미생'으로 대중에 각인된 뒤 넉넉한 모습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고 있다.
그런 그가 영화 주인공을 맡았다. 데뷔 이래 이성민이 상업영화 주인공을 맡는 건, 사실상 '보안관'이 처음이다. 3일 개봉하는 '보안관'은 과잉수사로 기장으로 낙향한 전직 형사 대호가 서울에서 비치타운 건설을 위해 내려온 사업가 종진을 마약사범으로 의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이성민이 대호를, 조진웅이 종진 역을 맡았다.
이성민은 '보안관'에서 조진웅을 비롯해 김성균, 임현성, 조우진, 배정남 등 거무튀튀한 동생들을 이끌며 영화를 책임졌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경상도 꼰대 아재지만, 현실에선 다정다감하게 영화를 이끌었다.
-'보안관'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군도' 당시 조감독이었던 김형주 감독이 '보안관'을 연출한다고 해서 제안을 받았다. 이야기가 큰 부담이 없어 첫 인사를 다시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쾌한 영화라 나한테도 힐링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첫 인사를 다시 올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나이가 있으니깐 다이나믹한 역할을 더 늦게 하기에는 부담이 있으니깐. 이런 역할로 관객에게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보안관'이 코미디나 수사물이라고 생각 안했다. 40대 남자들의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보안관' 시작은 제작자인 윤종빈 감독이 부산에서 밥 먹으로 가는 길에 대호 같은 사람을 보면서 시작됐다. 중년에 런닝셔츠에 근육 우락부락 있는 아저씨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 일까란 궁금증에서부터 출발했다더라. 그런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내 몸으로 새롭게 표현한다는 게 새로웠다.
-영화 속 대호는 상당히 마초적인 인물인데.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걸 드러내야 하는 역할이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아무래도 배우라는 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공식적으로 살아 볼 수 있는 것이니깐. 현실의 나는 '보안관' 속 대호처럼 아내가 김장하는데 그렇게 큰 소리를 못친다. 칠수도 없고, 쳐서도 안 될 일이고.
-'보안관'의 대호는 전형적인 꼰대 인데. 어느 정도 공감했는지.
▶글쎄, 나도 꼰대 일 수 있다. 나이도 있는데다 아무래도 꼰대라는 건 상대적이니깐. 상대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으니깐. 그렇지 않으려 하는데 본의 아니게 참견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 같다. 현장에서도 내가 불안해서 유리창에 매달린 스태프들에게 조심하라고 외치게 된다. 반성을 하는데 내 그런 모습이, 우리 부모님이 내게 했던 것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닮아가나 싶기도 하고.
-대호 역을 맡아서 육체를 상당히 단련했는데.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유도도 연습을 했다. 태닝도 많이 했고. 아예 집 베란다에서 팬티만 입고 태닝을 하기도 했다. 근육이 좀 생기니 왜 몸 좋은 친구들이 민소매를 입고 다니는 줄 알겠더라.(웃음) 이제 내 근육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보안관'에서 대호가 과거에 인연이 있던 종진을 보자마자 마약사범으로 의심하는데. 뜬금없지 않나.
▶글쎄, 그게 형사의 감이랄지, 촉이 아닐까 싶다. 또 수컷의 본능일 수도 있다. 자기보다 화려한 수컷이 등장한 것에 대한 경계랄지.

-오랜 인연이 있는 조진웅과 상업영화에서 투톱으로 서게 됐는데. 감회가 있었는지.
▶조진웅과 2009년 드라마 '열혈장사꾼'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러고 난 뒤 서로 각자의 길을 걷다가 '군도'를 같이 했다. 그 때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그 뒤에 자동차CF를 찍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조진웅이 "형, 우리 잘 가고 있는거지"라고 하는데 부산에서 같이 올라와 무명생활을 오래 하는 등 여러 공통점이 서로 있었다. 그러니 둘의 관계도 돌아보게 되고, 나 스스로도 돌아보게 되더라.
-김성균, 배정남 등 후배들과 친분이 두텁게 쌓인 것 같은데. MBC '라디오스타'에 깜짝 출연하기도 하고.
▶조진웅은 술을 좋아하고 나는 잘 못한다. 송강호와 이선균도 술을 좋아하는데 나는 잘 못하고. 술 못하는 사람이 술자리에 있으면 힘드니, 살갑게 연락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조진웅은 가족들끼리 친하다. 배정남은 툭하면 연락와서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 가곤 한다. '라디오스타'에는 내가 예능 울렁증이 있어서 못 나겠더라. 내가 나오면 MC들이 힘들어하기도 하고. 단답형으로 이야기하곤 하니깐. 그래서 촬영장에서 예능을 하게 되면 현장 마스코트인 배정남이 꼭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김성균이 총대를 매고 같이 나갔다. 난 당시 '바람바람바람'이란 영화 일정이 있어서 출연이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 신하균이 다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라디오스타' 제작진에게 부탁해서 몰래카메라처럼 등장하기로 했다. 방송을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내가 앞장을 서야 했는데 후배들에게 책임을 넘긴 것 같더라. MC들에게 특히 감사했다. 후배들을 정말 편하게 해줘서 이야기를 잘 끌어냈더라.
-'보안관'은 부산색이 상당히 강한데.
▶나는 경북 봉화 출신이라 부산 사투리와 차이가 있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잡아줬다. 다른 친구들 대부분이 경상도라 사투리는 문제가 없었는데 임현성만 서울 사람이라 힘들어했다. 말을 하면 티가 나니깐 애드리브를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바다 사나이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기장을 주무대로 택한 것 같다. 경상도의 한 지방 이야기지만 어쩌면 한국 전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지점이 '보안관'의 특징이라고 봤다.
-아재들의 이야기인데. 요즘 영화 주류와는 사뭇 떨어져 있는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나이(53세)를 검색해봤다. 나보다 한참 형님이더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아재라고 하지는 않지 않느냐. '보안관'은 아재들의 이야기지만, 기장 어벤져스라고 봤다. 여성주의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글쎄 아재라는 말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웃사람을 좋게 표현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그냥 꼰대라고 했지 않나. 아재라는 말 속에 존중이라는 뜻이 있는 것 같다.

-극 중 '영웅본색'을 보면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주윤발과 장국영, 적룡 중 누구랑 닮았다고 생각하나.
▶적룡이다. 실제로 셋 중 적룡을 가장 좋아했다.
-화려한 수컷이 등장하면 견제하는 게 수컷의 생리라고 했는데. 배우 활동을 오래 하면서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동료에게 질투한 적은 없나.
▶물론 있다. 지금도 있다. 어려서 연극을 할 때는 오히려 겁이 없었다. 다 나보다 밑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을 보다가 재미 없으면 나온 적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후배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 감탄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인정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멋있고 잘하는 동료들을 보면 여전히 질투가 난다. 그렇지만 난 내 한계를 잘 안다.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내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 하자고 생각하게 됐다. 조용필이 정말 훌륭한 가수지만 세상에 조용필 노래만 있으면 재미가 없지 않나. 각자가 자기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난 짠맛을 내는데 단 맛을 내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어렸을 때는 내가 단맛을 내는지, 짠맛을 내는지 모르고 다 낼 줄 알았다. 20대 때 어느 연출가 선생님이 "너는 너를 본 적이 있냐"고 하셨다. 그 말의 뜻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더라.
-그럼 이성민은 무슨 맛을 내는가.
▶조미료다. 내 딜레마다. 메인 재료가 되고 싶은데 조미료니깐. 그런 점에서 '보안관'은 기로에 서 있는 작품이다. 다음 작품인 '공작'은 윤종빈 감독이란 셰프에 황정민이란 주재료가 있다. 거기선 내가 조미료여도 상관없다. 그런데 '보안관'은 메인 재료가 돼야 하니 많은 고민이 됐다.
-여러 작품에서 좋은 리더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마침 대선인데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나.
▶룰을 잘 지키는 리더. 원칙을 잘 지키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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