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최무성을 '응답하라 1988' 택이 아빠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악마를 보았다'에 인육 먹는 살인마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슬기로운 감빵생활' 장기수로 알고 있다. 누군가는 연극 연출가 최무성으로 기억한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션샤인'의 장포수로 그를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를 본 관객이라면, 아이 잃은 아빠 진사장을 잊지 못할 것 같다. 30일 개봉한 '살아남은 아이'(감독 신동석)는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가 아이가 목숨을 걸고 구한 아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최무성은 아이를 잃은 아빠 진사장 역을 맡았다. 아이를 의사자로 만들려 노력하다가 그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는 역할이다.
최무성은 '살아남은 아이'로 관객의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스며든다. 이 배우를 좀 더 많은 작품에서, 좀 더 오래 보고 싶게 만든다. 이제 막 '미스터 션샤인' 모든 촬영을 마친 최무성을 만나 '살아남은 아이'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남은 아이'는 어떻게 하게 됐나.
▶프로듀서와 원래 친분이 있다. 어느 날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며 시나리오를 줬다. 그리고 감독과 두 번 만났다. 사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하고 싶었는데 다른 영화와 촬영 일정이 겹쳤다. 일정상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회사에서도 일정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했고. 그래서 신동석 감독을 다시 만났다. 거절하기가 힘들더라. 글과 사람이 같은 느낌이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고, 배려와 존중이 있다고 할까. 그래서 힘들더라도 하자고 결심했다. 마침 원래 하려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일정상 어려움은 없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끝날 때쯤 '살아남은 아이' 촬영에 들어가고 끝나자마자 '미스터 션샤인'에 들어갔다.
-어떤 점이 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었나.
▶일단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던 건 물론이다. 무엇보다 감독님과 프로듀서, 두 사람에게 감화된 게 컸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 공감도 컸고.
-쉽지 않은 역에 쉽지 않은 이야기인데.
▶외아들을 잃은 부모 입장이란 게 아무리 내가 자식을 키운다 한들 감히 연기 기술로 표현할 수가 없는 고통이 아니겠나. 너무 큰 고통을 안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그래서 특별히 연기 기술로 뭔가를 더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그 때 리액션에 충실하려 했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감정이 터져 나오도록 하고.
-리액션에 충실하려 했다는 건 아내 역의 김여정과 살아남은 아이 역의 성유빈, 둘의 액팅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건데. 어땠나.
▶김여정은 워낙 감정이 풍부하고 너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깐. 영화 마지막 김여정의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처음 봤을 때는 아, 이런 식의 감정으로 연기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봤더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다.
성유빈은 해석이 너무 좋다. 감정 표현이 정말 풍부하다. 그건 연기 기술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 것이다. 성유빈이 '미스터 션샤인'에서 내 아역을 맡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정말 인연이 남다른 것 같다.
-원래 일정상 인터뷰 같은 홍보 일정을 못할 뻔 했다. 그런데 드라마 촬영이 끝나자마자 곧장 일정을 잡았는데.
▶되는 만큼 홍보하는 건 당연하다. 그것도 그렇지만 기대 이상으로 호평을 해주셔서 좀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메시지가 강하면 지루하거나 난해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살아남은 아이'는 전혀 그렇지 않지 않나. 이 영화를 보고 당시 출연을 반대했던 소속사 대표가 안했으면 큰 일 난 뻔 했다고 하더라.

-악역으로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해서 점점 더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응답하라 1988'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시고,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좀 더 알아봐주시더라. '미스터 션샤인'으로 더 그런 것 같고.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는 것 같다. '악마를 보았다' 했을 때는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폭력적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은 그런 게 많이 좋아졌다.
한 이미지로 고정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비교적 잘 넘어가고 있는 것 같고. 악역은 나랑 전혀 성격이 안 맞아서 사실 할 때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많다. 물론 악역은 악역대로 인간 심리를 깊이 파고들어가서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인물들을 연기할 때 내 속에 있는 걸 더 잘 꺼내쓸 수 있어서 편하긴 하다. 이해도 잘 되고.
-'살아남은 아이'에선 자신의 어떤 부분을 꺼내썼나.
▶평소 정말 화가 나거나 낙담할 때는 그냥 자버린다.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달 뒤에 울었다. 그런 내 모습이 이번 영화에 뭍어 난 것 같다.
-이 결말은 용서인가.
▶글쎄 나는 나가 떨어진 것 같고, 김여진씨는 이제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 따라 해석이 다 다를 것 같다. 이런 영화는 처음이다. 영화 결말 그 뒤의 인생은, 글쎄 최소한 거짓은 없는 관계로 좀 더 나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미스터 션샤인' 촬영이 모두 끝났는데.
▶원래 의병들의 이야기라 마지막에 의병들 이야기가 장쾌하게 벌어질 것이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겠지만 그걸 이야기할 수는 없고. '응답하라 1988' 때도 주변에서 누구랑 결혼하느냐고 사람들이 많이 물었다. 모른다고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이야기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호흡을 맞춘 김태리와는 어땠나.
▶우리 태리는 참 잘한다. 내가 낯을 가리는 편인데 연극을 하던 친구여서 그런지 좀 더 살가웠다. 무뚝뚝한 스승과 제멋대로지만 속깊은 제자라는 이해도 서로 딱맞았고. 현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바로 케미도 맞았다. 첫 촬영하자마자 감독님이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하시더라.
우리 태리라고 하는 건, 현장에서 김태리가 워낙 스태프들에게 잘 한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우리 태리, 어딨냐'는 말을 많이 해서 그 말이 입에 붙었다. 힘들고 그럴 텐데도 항상 밝고 먼저 잘하는 친구다.
-점점 더 작품 속에서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비중에 대한 욕심이 있나.
▶있다. 비중에 대한 욕심이라기 보다 아쉬움이다. 아무래도 표현할 수 있는 게 적으니깐. 좀 더 그 안에서 놀 수 있으면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무래도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깐. 그래서 사건의 중심에 있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다.
-'살아남은 아이'는 그런 점에선 즐거웠나.
▶그렇다. 무거운 이야기와 무거운 캐릭터지만. 오히려 '응답하라 1988' 같은 이야기에서 갑자기 슬퍼하라고 하면 힘들다. 그런데 '살아남은 아이'처럼 너무 고통스런 역이면 더 담담해진다. 마비가 되면 통증을 못 느끼듯이. 오히려 그 경계선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다.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 사회에서 아이가 죽는다는 게 더군다나 물에서 죽는다는 이야기는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데.
▶최근에 영화를 보신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 그런데 찍으면서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잃는다는 건 워낙 크고 보편적인 아픔이니깐.

-다음 작품은. 어떤 역할을 주로 제안받는가.
▶아직 논의 중이긴 한데 예전보다 사극이든 현대물이든 좀 더 직급이 높아진 것 같다. 난 더 평범한 사람을 하고 싶긴 한데.
-'살아남은 아이'는 저예산영화다. 상업영화 틈새에서 바람이 있다면.
▶어떤 한 부분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영화를 더 많은 보는 건 당연하다. 다만 저예산 영화도 재밌을 수 있다. 의미를 강조하다보면 지루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재밌는 영화들이 많다. 좋은 주제와 재미를 전달하는 영화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게 한국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살아남은 아이'도 거기에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점에서 인연을 맺은 조감독들이 데뷔할 때 가능한 한 참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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